[Review]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 - 연극 '돌아온다'

그리움과 만남이 한 데 모이는 곳, '돌아온다'
글 입력 2022.05.0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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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이 있나요?"

 

먼저 이 글을 읽기 전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살면서 한번쯤 그리워한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도 되묻고 싶다. 그리움에 사무쳐본 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간절히 기도하고 바랄테니 그리운 그 이를 한번만 다시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을. 너무도 간절히 그리워한 나머지 꿈에서까지 생생히 등장하는 수많은 '그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 연극을 바치고 싶다.

 

 

 

감동 연극 '돌아온다' 리뷰 :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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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을 하루 앞 둔 화창한 5월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와 처음으로 발레 공연을 보았던 곳, 흥이 넘치는 뮤지컬의 세계로 입문했던 곳인 예술의전당을 다시 함께 찾았다. 가정의 달이라는 산뜻한 시기와 햇살 좋은 날이 완벽한 콜라보를 맺은 이 날, 감동과 웃음이 넘치는 연극 <돌아온다>의 첫 공연을 보았다.

 

2015년 제36회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과 연출상, 2017년에 영화로 개봉해 제41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연극 <돌아온다>이다. 기대는 꽤나 컸다. 배우 강성진, 김수로, 홍은희 등 다채롭고도 깊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유명인들을 한 자리에 볼 수 있다는 설렘도 한 몫 더 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다시금 깨달았다. '예술의전당은 예술의전당이다' 라는 것을. 물론 수많은 연극의 장이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과 특별함이 있지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이 선사하는 웅장함과 크기는 남달랐다.

 

필자는 2층 중앙 좌석에서 관람하였는데, 1층에서 배우들의 시선을 가까이 따라가진 못해도 무대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구조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거의 한 편의 뮤지컬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공연장 규모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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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허름하고 작은, '돌아온다'라는 식당을 배경으로 했다. 한편 소소한 배경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은 잔잔하면서도 톡톡 튀는 개성과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심한듯 보이지만 오는 사람들에게 꼭 막걸리 한 그릇을 나눠주는 정많은 가게 주인, 이유는 모르지만 "소새끼"라는 욕을 반복하는 욕쟁이 할머니,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교사, 집 나간 처를 구슬피 기다리는 남자, 작은 절로 새로이 온 주지 스님이 등장한다.

 

어떤 인연으로, 어떤 사연으로 이 곳에 모였는지도 모를 이들이 한 데 모인 식당 '돌아온다'. 사람들은 막걸리를 앞에 두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 각각의 사연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르면서도 결국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사람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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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극을 통해 '그리움'의 감정을 어떻게 꺼내어 풀어나가는지에 주목했다. 다양한 사연들 속에서 과연 어떤 계기로 각자의 그리움 주머니를 내놓는가. 그리고 포착할 수 있었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모두들 가슴 한 켠에 무겁게 내려앉은 가장 깊은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담담하게, 누군가는 허탈하게, 누군가는 호탕하게 그것을 소환한다. 그리고 의문의 아득한 종소리가 들릴 때면 사람들은 막걸리 한 그릇을 들이킨다.

 

극을 보면서 문득 이들이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남은 여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물음이 생겼다. 그리운 대상이 살아있는 유무를 떠나서 말이다. 식당의 한구석 높은 벽에 걸려있는 문구인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를 보며 막걸리를 들이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그러고보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고일 때를 떠올려보면 십중팔구 그리움이나 후회였다. 꼭 우리의 삶의 시작과 끝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사람에 의해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기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겐 그리움이 쌓인다.

 

외할머니와 할머니의 이야기도 그랬다. 외할머니는 당신의 할아버지께서 그렇게도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예뻐하셨다고 마르고 닳도록 말씀하신다. 장장 93년의 생을 사신 외할머니는 헤아릴 수 없이 수없이 많은 날을 지내오셨으면서도 결국 내게 전해주시는 최고의 행복한 기억은 '그리운 할아버지의 사랑'이었다. 할머니도 다르시지 않다. 할머니의 외할머니도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셨다고 전해주신다. 아직도 꿈에 종종 나오실 정도로 할머니의 외할머니는 하늘에서도 우리 할머니를 지켜주고 계신다.

 

나도 외할머니와 할머니를 내 생애 마지막날까지 함께 뵐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연의 섭리는 꽤 단호하고, 삶의 법칙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하게 만들어두었다. 언젠가 막걸리를 마시게 되는 날이면, 나는 외할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겠지. 그리움은 현재 내 곁에 대상이 부재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두 분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지금 이 순간을 꽉 붙잡아두어야겠다. '후회없이 사랑을 드리고, 사랑하고,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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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끝나고 나서는 감동과 향수에 젖어 이미 눈물을 두 방울쯤 떨어트리고 나왔다. 공연 내내 극강의 리얼리티와 공감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배우들 덕분에 잠시 '돌아온다' 식당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바람에 막걸리와 파전 조합이 그렇게 절실할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주최 측에서 공연이 끝난 후 국순당의 캔 막걸리를 나눠줬다. 예술의전당 뒷편 숲 속에서 시원하게 한 캔을 따 여한없이 막걸리를 즐기고 왔다.


연극 <돌아온다>는 사람의 가치와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잔잔하게 이야기한 공연이었다. 사람보다 물질을 숭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삶과 사람들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기술과 사물로 인해 인간 소외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이 시대에 삶의 속성을 진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돌아온다>를 방문하길!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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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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