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The next spot is, Dreamer - The Color Spot: 꿈속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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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or Spot: 꿈속의 자연
‘꿈’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친숙하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하기엔 어렵다. 상상을 현실처럼 느끼게 해주는 미디어아트의 특징은 꿈을 보다 더 직관적으로 표현해 준다. 꿈. 무엇이 떠오를까? 대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꿈은 생각해 보면 참 양가적이다. 전시의 목적은 꿈을 꾸고 찾는 모두를 응원하는 것이지만 회피하고 싶은 꿈도 있다. 악몽이 그렇다. 그리고 잠자기 전 드는 오만가지 걱정과 고민이 그렇다. 전시의 출발은 이런 걱정과 고민에서 시작된다. 악몽으로 표현되는 현실의 걱정과 고민에서 시작하고, 중간에 꿈에서 깼을 때의 혼란과 보이지 않는 억압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꿈을 꾸고 깬 그 다음날, 새로운 하늘을 바라볼 때의 희망을 전시는 보여준다. 꿈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은 나와 희망을 연결하는 무지개가 된다. 미디어아트와 함께 벽에 비친 나의 모습들을 보며 꿈속을 헤매고 찾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길고 긴 밤, 꿈을 꾸고 깨는 불안전한 밤을 끝으로 맞는 새벽은 그래도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나의 숲, 그리고 혼란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작품이다. 하얀 벽에는 나무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그리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는 우리가 생각한 평범한 나무들이 아니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 뿌리가 없는 나무, 엉성한 나무. 사람도 마찬가지다. 실 뭉텅이로 뭉쳐진 듯한, 누군가가 끌어당겨 억지로 걸어가고 기어가는, 주체를 잃은 자들이다.
내일이 두려워 겨우 잠이 들었다.
꿈속은 어두웠고,
나는 지쳐 보였다.
어두움은 숲이 되었다.
꿈이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누군가에겐 꿈속이 현실의 고난의 연장선이 될 수도 있다. 길이 보이지 않고 나아갈 방향이 보이지 않는 숲 안에 갇혀 미아가 된다. 이는 후의 작품 ‘혼란’과 연결이 된다.
작품 중 ‘고요하고 싶다’라는 말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와 참 어울리는 말이다.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다. 떠나고 싶다.’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전혀 다르다. 후자는 주체를 이동시키는 것이고 전자는 주체는 가만히 있고 주변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주변은 늘 시끄럽다. 시끄러운 하루를 보내고 조용해지는 순간, 바로 잠에 들기 전이다. ‘혼잡’에서 ‘고요’로 넘어올 때, 주변은 조용해질지라도 이제는 내 머리가 시끄러울 때다. 많은 생각과 고민들이 나를 잡아먹으며 쩝쩝대는 소리, 어쩌면 고요는 주변이 아닌 내 머리에서 필요한 게 아닐까.
꿈 속에서의 유영(斿泳)
꿈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꿈으로 치료한다. 전시를 보고 이런 느낌을 받았다. 전시를 보는 모든 과정은 꿈속을 유영하는 듯하다. 직접 꿈을 돌아다니며 꿈을 통한 치료를 받고 희망을 받는다. 혼란의 숲을 나오면 ‘꽃의 시간’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꽃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조급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계절을 기다린다.
봄에만 발아하지 않는다. 여름에만 푸르지 않다. 가을에만 풍족한 게 아니다. 추운 겨울에도 의미를 다하는 꽃도 있다. 그렇듯이 우리의 계절은 저마다 다 다른 법.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모든 걱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그러면 꿈속에서라도 좀 더 자유롭지 않을까?
한 번 여행한 경험으로 말하자면 자유로울 것 같다. 넓은 우주를 넘고,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넓은 사막을 걷고. 미디어아트로 표현되는 넓은 꿈속 공간에서 유영하며 우리는 자유를 만끽한다.
‘다시, 꿈’, ‘나의 그림자’와 같은 전시공간은 직접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꿈’은 뒤척이며 깬 꿈에서 다시 희망을 주는 꿈속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특정 위치에 서면 벽에 자신이 비치고 마치 꿈속을 여행하는 경험을 준다. ‘나의 그림자’는 보다 주체적인 체험을 제공한다.
손전등을 들고 돌아다니면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가 바뀌어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다. ‘다시, 꿈’이 컬러풀하고 감각적인 공간이라면 ‘나의 그림자’는 어두운 공간이다. 이 두 공간에서 꿈의 양가적인 면이 드러난다.
꿈을 깨고 난 후, 내일을 향한 해방
하루의 시작은 모두 다르다. 꿈에서 깨고 눈을 떴을 때를 시작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때 바라보는 하늘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어두운 남색이 섞인 새벽하늘을, 누군가는 흰 구름이 파란 하늘을 이동하는 아침 하늘을, 또 누군가는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본다.
모두의 계절이 다르듯 모두의 하늘도 다르다. 꿈에서 깨고 처음으로 본 게 하늘이라면 어쩌면 그 순간은 꿈의 연장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꿈속에서 넓은 하늘을 유영하고 현실에서 넓은 하늘을 바라볼 때, 구름이 천천히 이동하듯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마지막 작품 ‘해몽’은 처음 ‘나의 숲’과 상반되는 느낌이다. 모든 걱정과 어려움에서 벗어난 해방의 상태 같다. 물 위에 있는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 숲에 갇혀 방황하는 것과 다르다.
벽에 붙어있는 커튼은 이제 열리고 있을까 닫히고 있을까? 전시의 끝, 꿈의 끝을 생각하면 닫히는 것 같지만 꿈을 깨고 맞이하는 새로운 하루라고 생각하면 이제 커튼이 열리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꿈을 찾는 자, 꾸는 자, 잃어가는 자, 꾸지 않는 자, 회피하는 자 모두에게 전하는 행복한 꿈으로의 이정표와 같은 전시다.
[박성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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