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제는 용산 시대, 마천루 뒤의 그림자 [공간]

글 입력 2022.04.2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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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을 타고 용산역에 내렸다. 쇼핑몰과 영화관으로 향하는 인파를 뚫고 역사를 나서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고층 빌딩들이 시야를 가득 매운다. 빽빽이 들어선 대기업 소유의 건물들과 그 안에 자리잡은 세련 된 복합문화공간들은 몇년 새에 용산을 별천지로 만들었다. 오늘날 용산은 자본과 예술의 흘러드는 서울의 새로운 심장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간판갈이에 한창이다.

 

이처럼 대기업의 자본에 힘입어 탈바꿈 중인 현재의 용산은 사실 과거의 용산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동의 세월을 견뎌온 용산은 한국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도시 곳곳에 아로새겼고, 그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독특하고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용산의 지역성과 특수성이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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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개관한 용산역사박물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올해 문을 연 용산역사박물관은 도심을 뒤덮은 매끈한 빌딩 표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용산의 도시역사를 본격적으로 가시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박물관의 외관은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근대건축물인 옛 용산철도병원 건물을 최대한 살려 재탄생했고, 내부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용산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용산, 격동의 근현대사


 

조선시대 용산은 도성 서쪽의 무악산, 오늘날의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아울렀다. 구불구불한 능선이 한강에 이르러 봉우리를 형성하는데, 그 전체적인 형세가 용을 연상시킨다 하여 ‘용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양의 길목에 자리 잡은 한적한 강변 마을이었던 용산은 물길을 따라 포구가 발달하며 자연히 교통과 물류의 거점으로 거듭났다. 특히 18세기 수상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용산 일대의 상권이 크게 성장했고, 이는 용산의 토착민들이 한때 조선의 시장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은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대한제국에게 용산 일대의 부지를 군용지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고, 용산 일대는 군사 기지로 새로운 지형을 그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주민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기지 밖 동쪽으로 강제 이주하게 된 반면, 기지 서쪽 용산역을 중심으로는 신시가지가 개발되어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형성되었다.

 

1945년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비로소 해방을 맞았으나,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조선군사령부 청사는 미 7사단이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용산에 상시 주둔하게 된 주한 미군은 이전보다 큰 규모로 용산기지를 정비하기 위해 용산기지 재건을 추진했는데, 이후 용산은 한국 내 작은 미국으로 서구 대중문화가 국내에 유입되는 창구이자 냉전식민주의의 표상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태원 일지에 기지촌이 형성되었고, 미군 기지에서 반출된 물품들은 남대문 도깨비시장을 통해 유통되며 인기를 끌었다. 해방 이후 이북에서 월남하였거나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들이 용산기지 인근 남산 자락에 마을을 형성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해방과 함께 형성된 동네라 하여 ‘해방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군 주둔을 계기로 용산에 거주하게 된 외국인 수는 급속도로 늘어났고, 이후 외국인 거주자들을 위한 인프라가 형성됨에 따라 용산은 외국인들이 정착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1976년에는 이태원에 서울중앙성원이 개원하여 이슬람교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주도 증가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치며 용산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 각양각색의 외지인들이 더불어 살아가며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터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 용산역사박물관 상설전 및 특별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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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뒤의 그림자


 

지리적 장점에 기대어 조선의 군사 요충지이자 교통 중심지로 역할해왔던 용산은 외국군의 오랜 주둔으로 점차 서울 한복판에서 인적 · 물적 흐름을 막는 섬이 되어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지 이전을 합의했고, 비로소 100여년 간 외국군이 차지했던 용산기지 반환이 결정되었다. 이제 용산은 “세계의 중심, 이제는 용산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용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대를 천명하고 있다.


그와 같은 야심찬 포부 하에 놓인 용산은 현재 각종 재개발과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하며 서울의 그 어떤 자치구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물론 향후 서울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첫번째 국가공원인 용산공원 조성도 앞두고 있다. 이에 더해 용산구는 2021년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로 지정되어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움직임도 선보이고 있다.

 

올해 개관한 용산역사박물관 역시 용산을 역사문화도시로 새롭게 브랜딩하려는 목표와 무관하지 않다. 용산구는 앞으로 용산역사박물관 일대를 박물관 특화 거리로 조성해 “뮤지엄 시티(museum city)”를 탈바꿈하고, 그와 관련한 역사문화 콘텐츠 사업을 기획하여 ‘보고, 사고, 체험할 수 있는 테마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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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필자는 그 화려한 마천루 뒤의 그림자를 유심히 들여볼 것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용산을 역사문화도시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도시 연구자 샤론 주킨(Sharon L. Zukin)은 도시의 문화 자본을 축적하려는 시도가 필연적으로 부동산의 가치 상승과 사회적 차별성의 강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주킨이 뉴욕의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도출해 낸 위의 논의는 오늘날 용산의 사례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와 같은 듣기 좋은 수식어 아래, 도시는 일회성의 체험으로 소비되고 기존의 거주민들이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장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2009년의 ‘용산참사’ 이후 대다수의 철거민들은 용산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날 용산 일대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빌딩으로부터는 당시의 참혹했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용산이 진정한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이 때의 참사를 결코 지워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결국 반복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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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용산 시대”, 기대와 우려


 

건국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용산이다.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용산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새로운 도시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용산구청장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역사, 문화가 먹을 것이 되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반드시 된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의 횡포 아래 갈 곳 없고 터전 잃은 이들이 모여 일구어낸 것이 오늘날의 용산임을 기억한다. 앞으로 용산의 선보이게 될 지역 문화 콘텐츠들을 단순히 ‘용산의 이색적인 매력’이라는 이름 하에 가볍게 소비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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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용산 시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새롭게 탄생할 용산이 내세우는 ‘역사’와 ‘문화’가 표피적인 미학적 표현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문화도시는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용산의 역사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온 몸으로 일구어 온 것이며, 용산의 문화도 앞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부디 용산이 꿈꾸는 새로운 청사진 안에 시민들의 평범한 삶과 노동의 현장,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매일의 일상도 공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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