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지구가 흔들려도 내 옆에 있어줄 거지?

네게 처음으로 선물하는 내 글
글 입력 2022.04.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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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H에게.


나는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모순적이게도, 매번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당신을 둘러싼 감정의 폭은 넓고도 깊다. 그러나 당신에게 가 닿는 말은 겨우 사랑해, 한 마디뿐이다.

 

얼마 전 귀엽다는 말의 어원을 생각하다가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일어나며 혼란스러워했던 걸 기억할까. 귀엽다는 말을 해당 단어로 규정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귀엽다는 말은 어쩌다 그런 발음이 됐는지를 헤아렸었지. 얼마 전 유행했던 ‘하찮고 소중해’라는 말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그 단어로 떨어지지 않으려나. 아니, 어쩐지 부족한 것 같다. 그 안에는 좀 더 많은 감정과 의미들이 함축돼 있는데 그것들을 형용하기에 귀엽다는 말은 너무 빈약하고 좁다.

 

그랬던 내가, 당신을 사랑하면서 언어가 풍부해지는 경험을 한다. 당신과의 기억들이 삶에 너무도 깊이 침투해 있어서, 당신과의 추억들을 곱씹는 게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서, 그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감정의 폭도 넓어져서, 자연히 단어의 스펙트럼도 확장되어간다.

 

심곡천, 바나나, 산책, 다정함, 을왕리, 노래, 드라이브, 여행, 편지, 아일랜드, 밤하늘의 별을, 느껴, 팔베개, 맥주, 공원, 흔들의자, 장난, 유머, 웃음

 

그저 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 그쳤던 단어들은 당신을 경유하면서 색다르게 변모한다. 허수경 시인이 기억을 자연에 비유하며 자연이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처럼, 내 자연도 크기를 키워간다. 우리의 교집합이 늘어난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닮아간다는 어떤 노래의 가사도 이제야 제대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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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좋은 소식은 당신에게 가장 먼저 알리는 나다. 내가 쓴 글이 인터넷에 처음 게재된 날에도 나는 들뜬 표정으로 당신에게 가장 먼저 달려갔다. 당신은 내 글을 보고 싶다고 했었지. 나는 안 된다며 극구 말렸다. 당신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난 말투로 이유를 물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거냐고.

 

그러니까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늘 반절쯤의 진심을 내보이고 반절쯤은 속에 감춰두며 살아가는 나니까. 발화되지 못한 말들을 속으로 눌러 삼키다가 마음속에 화석처럼 남으면 그대로 오랜 시간을 끌어안는 나니까. 그래서 몇십 년이 지나도 누군가 해주었던 말을 기억하는 나니까. 그것들을 치졸하게 글로써만 담아내는 나니까. 내가 가진 치부나 단상들을, 당신만은 알 수 없었으면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속으로 이런 부분들을 감춰 왔구나. 그렇게 생각할까 두려워서. 혹시 겉과는 다른 나를 알고 실망할까 봐.

 

그런데 당신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다 괜찮다고 했다. 내가 힘들거나 괴로워하는 게 있으면 당신이 옆에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더라도 그게 나니까, 또 지금은 내 옆에 당신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안심시켜줬다. 배려 가득한 당신의 말들이 새삼 고마웠다. 언젠가 치부가 담긴 글을 들키더라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에게 기꺼이 들키고 싶어졌다.

 

*

 

매번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근심 걱정에 둘러싸이는 나는 늘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당신의 말 한마디에 신나서 마음이 붕 떴다가도, 다시금 생각에 잠겨 불안해하기를 반복한다. 얼마 전에는 곁에서 잠든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넘쳐나는 행복감을 느꼈다가도, 문득 두려워졌다. 그래서 속으로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이런 마음은 때로 이상하고 서툰 방식으로 표출된다. 괜히 입을 다문다거나, 속마음과는 다른 거친 문장들을 내뱉는 식으로.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못 견디게 미웠던 것 같다. 그렇게 돌아선 뒤에야 내가 한 행동이 후회되고 너무 미안해서, 당신에게 문자를 건네는 식의 구차한 방식으로 진심을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내 감정을 헤아리고 이해해주는 당신에게 고맙다. 말을 하지 않아도 공백 사이에 깃든 속내를 알아주는 당신이 좋다. 전에 겪은 상황을 떠올려본다. 나는 당신에게 말을 하기가 어려워 분절된 형태로 발화했다. 아니, 우리, 그, 어제 말했던, 울 집, 그…, 친구… 당신은 내가 문장을 끌어낼 수 있도록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주어도, 목적어도 부재한 완성되지 않은 형태의 문장을 내뱉었다. 당신이 알 만한 정도의 힌트와 함께.

 

거기까지 얘기하고 입을 다물자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당신은 나를 꼭 안았다. 그 뒤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이 다 안다는 뜻인 것만 같았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안다고, 떠오르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 당신은 단 한 번의 포옹으로 깊은 마음을 내게 전이시켰다.

 

어쩌면 나는 평소처럼 거기에 중언부언 덧붙이면서,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몇 번이고 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넘어갔다. 침묵 속에서 백 마디 말이 오간 것만 같았다. 단 한 번의 온기로 서로를 관통하고 어루만지는 우리가 좋았다.

 

앞선 문장을 조금 수정해본다. 공백 사이에 깃든 속내를 알아줘서 좋은 게 아니라, 공백을 공백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당신이 좋다. 결국 이렇게 된 우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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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법 따위는 모르는, 고지식하며 늘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누가 어떤 것을 가르쳐주면 그대로 기억해뒀다가 해당 방식으로만 해결할 줄 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변주되면 쉬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만큼 꽉 막혀 있어서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 내가 공고히 쳐둔 바리케이드를 누군가 넘어오거나 신념을 뒤흔드는 상황도 싫어한다.

 

나는 거짓말을 죽도록 싫어했던 것도 같다. 글을 짓는 것도 거짓말과 유사하니까, 극작을 전공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모순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릴 적 함께 살았던 친할머니가 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셨다고 했었지.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어릴 적부터 늘 주입 받았기 때문인지 나는 거짓말이 싫었다. 내가 거짓을 고했을 때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가책을 느끼는 상황에 시달리게 될 것도 두려웠다. 만약 누가 거짓말 탐지기를 내밀었는데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 박동이 빨라진 탓에 나온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랬던 내가 당신으로 인해 달라졌다. 당신은 꽉 막히고, 골방에만 갇혀 사는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기꺼이 유연해지게 도왔다. 말하자면 당신은 내게 일종의 ‘변수’다.


2년 전에 관람한 뮤지컬 <용의자 x의 헌신>을 다시 보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할까. 잠시 당신에게 그 뮤지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용의자 x의 헌신>에는 상당히 똑똑하고 이성적인 주인공 ‘이시가미’가 나온다. 이시가미는 이미 증명된 수학 문제를 단지 ‘풀이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다시 증명하려고 할 정도로 치밀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한 번은 그가 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늘 엄격하게 계산하는 그의 성격과 달리, 살인죄가 끝내 발각되고 만다. 이시가미의 오래된 친구이자 물리학자인 ‘유카와’는 천재적인 이시가미가 어떻게 살인을 ‘들키는’ 실수를 저질렀는지 의아해한다.


알고 보니 이시가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사랑이라는 변수가 끼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 죄를 감춰주기 위해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는 방식으로 판을 설계한 거였다. 물리학자인 유카와는 그의 행위를 양자역학의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유카와는 ‘과학은 논리적이며 이성을 중요시하지만, 그 중 양자 역학은 비논리적이고 인과관계가 모호한 파트’라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공계를 전공한 당신이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랑은 이러한 '양자역학 파트'처럼 인과관계를 모호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단번에 납득시키기도 하는 일종의 오류였던 거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내게도 사랑은 그간 그토록 지켜왔던 것을 번복하고, 기꺼이 모험을 치르게 하는 오류와도 같다.


나는 너를 만나기 이전의 삶과 달리, 우리 사이에 흐르는 장난스러운 거짓말과 농담이 좋다. 마라탕을 먹으러 가서 내가 완자 좋아하는 것을 알고 당신이 “먹을래?” 물으면, 완자 대신 왕자를 넣어도 되냐며 당신을 집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가만히 웃어주는 당신이 좋다. 누군가 괴롭혔다고 하면 “오냐오냐하니까 오메기떡인 줄 아나” 하고 받아치는 당신이 좋다. 별거 아닌 대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게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습관처럼 오고 가는 언어유희들이, 강박관념이 심하고 고지식한 나를 자꾸만 흐트러뜨린다. 당신과 만나면 신나서 무장해제 되는 내 틈새 사이로, 유려한 당신이, 농담처럼, 자꾸만 틈입해온다. 내가 쌓아놓은 벽들을 마구 헤집어놓는다. 나는 이게 사랑인 것만 같다.

 

*

 

얼마 전 카페에서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함께 영화 <조제>를 봤었지. “내가 잠들어도 솔이는 영화 계속 봐, 알겠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화면에 집중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당신은 내 어깨에 기대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한창 집중하느라 미뤄뒀던 당신의 말을 곱씹으며 고마움을 느꼈다. 당장 영화를 보고 글을 써야 한다는 내 말에 다른 데이트도 뒤로 하고, “그럼 카페 가서 같이 볼까?”라고 제안해준 게 새삼 고마웠다. 졸린 눈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옆에 꼭 붙어 있어 줬을 당신에게서 한없이 온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메타버스 관련된 책에서 봤던 구절을 떠올렸다. “현재의 애인을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여행의 동반자로 바라보길 권유한다”라는 말. 서로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같은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 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야만, 관계를 건강하게 끌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그런 걸음을 함께 하는 것만 같다. 당신은 내 다름을 존중하고, 내 영역을 존중하며 무한정 지지해준다. 나 역시 그런 당신이 좋아서 자꾸만 닮으려고 한다. 우리의 이 온도가 좋다. 너무 뜨거워서 데이지 않을 정도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당신이 좋다. 다정함은 이렇듯 무한정 밀착돼야 한다는 강박 없이, 옆에서 계속 걷자고 말을 해주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당신은 그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가만히 나를 보다가, “지금처럼 그런 눈으로 나 계속 봐줘야 해” 하던 당신의 음성이 떠오른다. 나는 당신의 그런 섬세함을 사랑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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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을 전공했던 학부생 시절. 만약 우리가 드라마에 등장하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신을 생각하면 내부보다는 외부의 갈등을 떠올렸다. 우리의 내부는 흔들리지 않으니까. 어쩐지 재난 상황 속에 놓인 우리 둘이 그려졌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서로한테 의지하고 헤쳐 나가면서 돈독해지고, 끝내는 위기를 맞게 되더라도 마음만큼은 더 애틋해지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던 If The World Was Ending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당신은 이별 노래지만 가사가 예쁘다고 했었다. 나는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세상이 망한다면, 지구가 흔들린다면 내게 와줄 거지’라며 담담하게, 그러나 간절하게 묻는 가사였던 걸로 추측한다. 나는 그 가사를 빌려와 조금 다른 형태로 당신에게 묻는다. 지구가 흔들려도 내 옆에 있어 줄 거지?

 

나이가 들어가도 감정은 늙지 않는 거 같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함께 같은 궤적을 밟아가고, 그 과정에서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우리의 감정은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서로 조금씩 부딪치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감정과 감정 사이에서 길을 잃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걸려 넘어지더라도 결국은 그게 네게로 가닿기 위한 시도였음을 알게 되면서 포용하고, 포옹하는 귀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너무도 다른 사람 둘이 만난 거라서 가시를 세우더라도, 끝내 서로서로를 녹여주고 안아주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끝끝내 이어졌으면 좋겠다. 사계절을 함께 통과해왔지만, 우리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으니까.

 

그 어느 시에서 봤던 것처럼,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

널 사랑해

 

 

추신.

얼마 전 혜화동에서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

대뜸 장난으로 편지를 써달라던 네 말에 내가 웃었던 거 기억해?

이게 대답이 됐길 바라.

   

 

인용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김상균, 플랜비디자인, 2020.12.18

「근하신년-코끼리 군의 엽서」, 『정오의 희망곡』, 이장욱, 문학과 지성사, 2006.04.13.

*제목은 JP Saxe의 노래, If The World Was Ending의 가사를 변주하여 차용하였습니다.

 

 

 

추예솔 (1).jpg

 

   

[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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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잘 썼다는 말보다도 좋다는 말이 더 소중하게 와 닿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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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n감사합니다. 불쑥 던져주신 한 마디가 힘이 많이 되어요. 행복한 오늘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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