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포용과 치유를 통한 해방의 길 - 해방자들

글 입력 2024.09.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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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집념


 

이야기는 군사 독재 정권이었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각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3대에 걸쳐 보여준다. 그러나 당대의 참상 고발에만 초점화하지 않고, 그 시절을 온몸으로 맞으며 치열하게 살아낸 가족의 ‘삶’ 그 자체를 주목한다. 삶에 대한 집념은 특히 ‘요한’이 군부 정권 시절,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고문당하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요한은 고문관의 질문 세례에도 끊임없이 ‘삶’이라는 단어만을 고수한다. 이를 통해 자신은 공산주의자도 뭐도 아닌, 그저 삶을 지속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시민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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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위와 같이 실험적인 페이지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회적 참상을 다루면서도 인물의 서사를 독특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문학적 측면에서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단어를 천천히 음미하고 인물의 심리를 유추하면서, 그들의 삶에 깊이 침투된 기분을 느꼈다.

 

 

고문관은 요한에게 질문하고 반문하다, 삶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그에게 끝내 동화된다. 이내 그를 풀어달라고 명한다. (물론 소통 오류로 인해 요한은 결국 총살당하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되지만 말이다) 사실 그 내막엔 어떤 심정이 있었을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교도관 역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를 간첩으로, 거짓으로 몰아가는 데 짐짓 회의를 느꼈을지 모른다. 교도관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며, 요한에게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듯 말이다. 여기서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이념 대립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억압하는 실정이었지만, 사실 이러한 이분화는 절대적이지 않고 인간의 생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의미해짐을 보여준다. 그것은 평가하는 주체와 잣대,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갈리는 실체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광기라면 광기인 것이고, 희열이라면 희열이라는 요한의 발언처럼.

 

 

 

자기 해방의 길


 

그러한 맥락에서 이분법적 경계와 이념의 대립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인물이 있다. 미국에서 해방 신문을 창설한 ‘로버트’가 그렇다. 그는 “남북의 경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한국을 떠나서야 진정한 한국인이 되었다고 역설한다. 이에 로버트는 모두가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자기 해방’에 도달할 날을 꿈꾼다. 그는 남북통일을 통해 그것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통일이란 물리적 합일만이 아닌, 한 나라에 두 체제가 존재할지라도 서로 왕래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로버트의 외침은 실현 불가능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며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다. 누군가는 로버트의 실패 원인으로, 그가 한반도를 남과 북이 분단되기 이전의 호랑이 모양으로 그리길 고수하는 점과 연관된다고 본다. 분단은 엄연한 현실인데 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외려 과거를 지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와 달리 요한의 손자인 헨리는 그를 이념 대립의 틀 아래 그를 재단하지 않고 편견 없이, 평등하게 바라본다. 그는 로버트를 “자신을 추방시킨 나라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그저 ‘공존’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헨리는 이렇듯 사회가 정한 틀을 넘어서서 타인을 공평하게 바라보고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분투한다. 여자친구인 제니가 헨리를, “헨리는 너무나도 사라지고 싶은 듯했다. 아무도 아니게 되어도, 그 무엇도 아니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웠다”라고 평가했듯이. 그리고 그는 로버트가 끝내 실패한 자기 해방을 기어이 실현해낸다. 이는 개인을 어떤 틀에 가두지 않고 자기의 실존과 정체성을 자유로이 찾아 나설 때, 또 그러한 자유로의 투쟁을 존중할 때 비로소 자기 해방에 이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용서와 화해, 치유


 

이야기는 점차로 희망찬 미래를 암시하는 국면으로 치닫는다. 이는 앙숙이었던 ‘인숙’과 시어머니 ‘후란’의 변화하는 관계성에서 드러난다. 인숙은 아버지 요한이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하루아침에 주검이 되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후란’은 남편이 방랑벽이 있어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끝내 사라졌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숙은 요한이 살아있었다면 시어머니의 등쌀이 이렇게 심하진 않았을 거란 점에서 통탄한다. 후란은 자기 남편처럼 인숙과 성훈 역시 언제든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극심한 불안 증세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둘의 이해관계는 부딪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그랬던 둘의 관계가 나아진 것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공통분모로 묶인 두 여성이 서로를 용서하면서다. 후란은 인숙에게 부활절 계란에 메아쿨파(내 탓이오)라고 적어 진심으로 사과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일만 하며 살아왔잖니, 너는 맥도날드도 한 번 못 먹어봤고.” 라며, 자기 행복보다는 가족의 생애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들의 처지를 동일시한다. 더불어 트라우마 속에서 발버둥 치며, 일종의 방어기제로서 서로에게 날을 세웠던 과거를 인정하며, 품어주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거의 후란의 임종에 이르러서야 인숙과 후란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나아가 과거를 부정,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저 직시하고 똑바로 바라보는 데서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도 나아간다. 이는 인숙과 그의 남편인 성훈과의 서사에서 드러난다. 인숙과 성훈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10년 동안 말한 기간을 다 합쳐봐도 겨우 한 달 정도에 그칠 정도로 데면데면하고 소원한 관계로 지내왔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인숙이 아버지를 잃었다는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성훈을 그런 인숙의 아픔을 회피해버렸기 때문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랬던 둘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성훈이 자기 아들인 헨리가 요한을 닮지 않았냐는 물음을 던지면서였다. 이는 그가 요한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인숙으로부터 ‘자기말고는 다른 것에 관심 없지 않냐’는 지적을 들어왔듯 타인에 무관심했던 성훈은 그간 요한을 둘러싼 트라우마에 침묵했으나 이제는 똑바로 마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여기서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된다는 점에서, 결국 아픔과 트라우마는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수면 위로 끌어올릴 때 치유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희망찬 미래, 새로운 시작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숙은 아들 헨리의 여자친구 제니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물려준 초록색 드레스를 입히며 “이건 처음부터 네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과거 자신이 당했던 것과 다른 행동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시어머니 후란은 인숙이 결혼할 당시 초록색 드레스를 입으며 안 어울린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인숙은 그와 달리 자신의 가족으로 들어온 새로운 여성 제니에게 긍정적 기운을 심어주며 물려준다. 그것은 자기가 당한 고통과 아픔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 서로를 품고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동시에 사랑을 통해 희망찬 미래와 새로운 시작을 그려 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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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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