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베토벤을 분석하다: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2

글 입력 2022.04.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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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목프로덕션의 기획공연 중 손꼽아 기다리는 시리즈의 두 번째 무대가 4월 6일 막을 올렸다. 바로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 두 번째 무대였다. 베토벤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두 연주자의 인상깊은 첫 번째 리사이틀을 보고 나니, 네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는 두 번째 공연은 어떨지 더더욱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봄 느낌이 완연한 4월 초에 맞이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라니, 이 얼마나 듣고 감상하기에 적합한 시기인가.


이번 무대에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4번, 8번 그리고 10번이 선곡되었다. 작곡연도 순으로 번호가 매겨진 네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셈이기도 하고, 1부와 2부의 길이감과 비중을 동일하게 쥐고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2번과 4번이 1부 그리고 8번과 10번이 2부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김영욱은 2번과 8번 소나타를 1부에 배치하고 4번과 10번 소나타를 2부로 배치했다. 작품의 길이감이 상대적으로 짧은 두 곡을 1부에 배치하고, 긴 두 곡을 2부로 안배해 2부에 더 비중을 둔 것일까? 물론 10번 소나타가 이번 무대의 마지막 작품으로 선곡되었으니 2부가 당연히 더 비중있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들을 이렇게 배치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공연에 가기에 앞서 작품들을 들어보면서 혼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민하다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프로그램 구성이 정말 탁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실제로 공연장에서도 들으면서 몰입도를 더 높여주는 곡 배치라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들이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치밀한 고민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 김영욱과 손정범의 듀오 리사이틀 두 번째 무대가 뛰어난 연주와 치밀한 분석력 그리고 세심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금상첨화였다는 뜻이다.


 



PROGRAM


Beethoven, Violin Sonata No. 2 in A Major, Op. 12, No. 2

I. Allegro vivace

II. Andante piu tosto allegretto

III. Allegro piacevole


Beethoven, Violin Sonata No. 8 in G Major, Op. 30, No. 3

I. Allegro assai

II. Tempo di minuetto, ma molto moderato e grazioso

III. Allegro vivace


INTERMISSION


Beethoven, Violin Sonata No. 4 in A Minor, Op. 23

I. Presto

II. Andante scherzoso, piu Allegretto

III. Allegro molto


Beethoven, Violin Sonata No. 10 in G Major, Op. 96

I. Allegro moderato

II. Adagio espressivo

III. Scherzo. Allegro

IV. Poco Allegretto 

 




이번 리사이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이었다. 번호로는 2번으로 불리지만, 이 작품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3번 중에 가장 먼저 작곡된 곡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초창기 형식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도 손꼽힌다. 길지 않은 길이감 속에 베토벤은 아름답고 경쾌한 선율과 약간의 장난스러움을 섞어 곡을 완성했다. 가볍고 즐거운 작품이다. 김영욱과 손정범 역시 산뜻하게 도입부부터 시작해주었다.


이 작품이 연주되는 중에 일관되어야 하는 것은 이 모든 연주가 과장되지 않고, 그 밝고 쾌활한 가벼움이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볍지만 한없이 가벼운 것이 아니고, 바흐나 모차르트의 유산까지 살짝 느껴볼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감과 공간감은 충분히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영욱과 손정범의 연주는 확실히 좋았다. 손정범은 밝고 경쾌하면서도 너무 깊지는 않게, 담백하면서도 탐구자적인 정신이 느껴지는 터치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응하는 김영욱의 보잉 역시 경쾌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전달해주고자 몰입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이었다. 1부 첫 곡인 2번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장조의 곡이지만 신기하게도 8번 소나타가 2번 소나타와 대비되는 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을 두고, 흔히들 이 작품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전원을 연상시키며 딱히 구성 상의 특징은 두드러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2번 소나타와 비교해서 들어보면 악상이 전개되는 방식이 또 다르게 느껴진다. 비슷한 분위기를 향유하면서 길이감 역시 비슷하다 하더라도, 2번 소나타에 비해 8번 소나타가 확실히 스케일이 확장된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기적으로는 4년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 베토벤이 자신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양식과 구성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넓혀왔는지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안배한 프로그램 구성임을 알 수 있다.


첫 곡이었던 2번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도 경쾌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2번 소나타와 비교한다면 바이올린과 피아노 모두 훨씬 다양하고 열정을 담아 연주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기교적으로 더 두드러지는 면모가 많아 밝은 장조의 작품인 데다 길이감도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2번 소나타보다 더 나름의 다이나믹이 느껴진다. 우아하고 귀족적이면서 잘 구성된 작품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연주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역시 첫 곡보다 8번 소나타에서 더욱 몰입한 연주를 선보였다. 두 연주자의 호흡이 하나로 맞물린 덕분에, 듣는 이도 하일리겐슈타트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듯하게 몰입하게 된 순간이었다. 지저귀는 듯한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연상되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1부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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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후, 2부는 1부와 또 다른 분위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2부의 첫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4번으로 1부의 두 곡과는 다르게 단조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확연히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4번 소나타는 베토벤의 비장하고 장엄한 정서가 드러나면서 그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스타일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2부의 첫 곡으로 선곡된 것은 1부의 첫 곡인 2번 소나타와 나름대로 대응을 이루는 선곡이라 볼 수 있겠다. 시작부터 프레스토로 몰입감 있게 포문을 여니, 1부의 여운이 사라지고 그야말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듯한 느낌으로 감상하게 되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4번의 진지하고 비장한 선율과 더불어 짜임새 있는 전개와 구성은 확연히 1부 작품들과 또 다른 의미로 듣는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선율뿐만이 아니라 대위법 그리고 푸가 등 다양한 구성을 내포해 들으면 관객들 입장에서도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더욱 피부로 와 닿게 전달해 준 김영욱과 손정범 듀오의 연주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특히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비중이 대등해져 김영욱과 손정범이 차분하면서도 힘 있게 서로 얽히는 패시지들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1부보다 더 하나의 유기체가 된 것 같은 듀오에게 객석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


마지막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을 시작하기에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가다듬는 모습을 보였다. 당일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중에 유일하게 보인 모습이어서 눈에 더욱 들어왔던 것 같다. 아마도 당일 프로그램 중 가장 대곡이기도 하고, 김영욱 본인이 아끼는 작품인 만큼 의미있는 순간이기에 연주 직전에 더욱 몰입할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짧지만 인상 깊은 김영욱의 쉼표에, 마지막 작품을 기다리는 내 마음도 덩달아 고조되었다. 인생 중기에 접어든 베토벤의 성숙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자 이번 공연의 마지막이어서, 도입부의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까지의 그 찰나가 영원같이 길게 느껴졌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부터 9번까지가 작곡되는 데에 4년 가량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베토벤은 자신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스타일을 구축했고, 그 지평을 점차 확장시켜나갔다. 그런 베토벤은 9번 소나타를 완성한 후 9년이 지난 시점에 새로운, 그리고 마지막인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을 작곡하면서 여기서 또 다른 변화를 주었다. 여태 3악장으로만 구성해오던 바이올린 소나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악장으로 구성한 것이다. 절대 안주하지 않았던 베토벤의 면모를 작품 구성에서부터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안주하지 않고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인생의 중반기를 맞이한 베토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따뜻함과 안온함을 10번 소나타에 가득 담았다.


10번 소나타의 1악장이 시작되자, 이 순간을 위해 오늘을 기다려왔다는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힘을 가득 실어 보여주려는 악상이 아니라 힘을 빼고 여유롭게,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베토벤의 완숙함이 가득한 이 작품.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전율을 느낄 정도로 아끼는 10번 소나타를, 이 젊은 비르투오소들이 여유롭게 그렇지만 결단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의 몰입이 관객의 몰입을 이끌었고, 완숙을 넘어 완성된 베토벤의 경지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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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가 확실히 1부보다 더 격렬하고 치밀했던 듯하다. 2부의 두 곡을 연주하는 동안, 두 곡의 말미에 이르러 김영욱의 활 털이 두 번 다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뜨겁고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준 김영욱과 손정범에게 관객들은 손바닥에 불이 일 듯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렬한 마음을 보낸 관객들에게 김영욱과 손정범은 마지막으로 앵콜 무대를 선보였다. 바흐의 바이올린과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 나단조 BWV1014의 3악장, 안단테였다. 다시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관객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감싸 안는 앵콜이었다.


*


공연을 보러 가기에 앞서 프로그램 구성을 왜 이렇게 했을까가 유독 많이 궁금했는데, 공연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말없이 연주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1부에선 오늘 선곡된 작품들 중 상대적으로 양식이 자유로운 두 작품을 배치시키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초반부와 후반부 작품을 대비시켜 관객들이 베토벤이 바이올린 소나타의 스케일을 얼마나 놀랍도록 확장시켜나갔는지 유사한 분위기 속에서 직접적으로 차이를 느껴볼 수 있도록 안배해 주었다.


2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스타일이 확립된 시점의 작품 두 곡을 들려주되, 이마저도 작곡 초반부와 후반부 작품을 대조시켰다. 특히 2부는 단조와 장조의 대비도 이뤘고, 젊은 날 의욕 가득한 베토벤과 성숙의 경지에 접어들어 힘을 덜 들이고도 완숙함을 보여주는 중년의 베토벤이 대조되어 듣는 입장에서 매우 즐거웠다. 악장 하나하나의 전개와 발전을 듣는 것도 좋지만, 공연 전반에 걸쳐 연주자가 기획한 바가 무엇인지를 상상하며 들으면 더더욱 즐거울 수밖에 없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세심한 안배가 느껴지는 프로그램 구성과 연주여서, 듣는 내내 행복한 기분이었다.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의 첫 무대는 두 연주자가 베토벤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는지를 보여준 무대였다. 4월 6일에 김영욱과 손정범이 선보인 두 번째 듀오 리사이틀 무대는 베토벤이 어떤 음악가였는지를 탐구하고, 이를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풀어 전해주는 자리였다. 모험가처럼 탐구하는 동시에 연구자 같이 진지한 연주를 들려주면서, 관객들이 더욱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무대였다. 이들이 보여줄 베토벤의 마지막 얼굴은 또 어떤 모습일까. 8월에 있을 마지막 리사이틀도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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