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싱그러운 시작, 아쉽게 저문 청춘의 이야기 -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04.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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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달콤한 주말이지만, 이 봄엔 더욱더 열렬히 주말이 되길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찬란한 청춘을 그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언제 어디서든 보기 편한 OTT 플랫폼이 쏟아지면서, 드라마 본 방송을 챙겨보는 일은 드물어져 갔다. 하지만 좋아하는 김태리 배우가 나온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첫 방송 시간과 채널을 확인했다. 시작한 지 10분이 채 안 되었을 때 소리쳤다. 기다리던 드라마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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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김태리와 남주혁 두 사람을 중심으로 청춘의 무모함과 도전, 사랑과 우정, 좌절과 포기, 다양한 그 시절의 빛나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다. 무엇보다 펜싱을 사랑해 매일 훈련에 몰두하고 그날의 기록을 빼곡히 다이어리에 적는 나희도 (김태리 배우). 나희도는 꿈에 대한 타는 듯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이다. 꿈도 사랑도 우정도 늘 넘치게 마음을 쏟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전할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하는 백이진(남주혁 배우)은 부잣집 도련님이었으나 IMF로 아버지 사업에 부도가 나 당장의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행을 원망으로 돌리지 않는다.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 신문배달, 만화방 아르바이트부터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삶을 다시 살아간다. 나희도와 백이진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의 삶이 펼쳐진다.

 

 


청춘의 뒤편에서


 

 

왜일까.

청춘이 매력적인 근본은, 남아도는 체력에 있다.


무언가를 좋아할 체력,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 체력, 

뛰어들었다가 실패하고 좌절할 체력, 

그 와중에 친구가 부르면 나가 놀 체력,

그래놓고 나는 쓰레기라며 자책할 체력.


유한한 체력을 중요한 일들에 신경 써서

분배할 필요가 없는 시절,

감정도 체력이란 걸 모르던 시절,

그리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 아파할 수 있는 시절.

그 시절의 우정은 언제나 과했고,

사랑은 속수무책이었으며, 좌절은 뜨거웠다.

불안과 한숨으로 얼룩지더라도, 속절없이 반짝였다. 


-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 소개 中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이야기는 나희도와 친구들이 열여덟, 백이진이 스물둘의 봄을 지날 때 시작된다. 티 없이 맑아서 부럽고 그리운 시절 같아도, 언제나 그랬든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슬픔과 고민, 청춘이란 이름 뒤에 숨은 이야기가 있다.

 

 

[꾸미기][크기변환]1.jpg

@tvN/연합뉴스

 

 

나희도는 펜싱을 계속하지 못하리란 절망이 있었다. IMF로 나희도가 다니던 고등학교 펜싱부가 해체되고, 유명 방송국 UBS의 앵커인 엄마, 늘 일에 바빠 희도가 갈증을 느끼는 엄마는 마침 잘 못하던 펜싱인데 잘 되었다며 그만두라는 말을 쉽게 던지기만 한다. 언제나 희도의 편이던 아빠는 어린 시절 먼저 세상을 떠났고, 펜싱부가 있는 태양고로 전학을 가기 위해 갖은 전략을 짜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백이진은 갑자기 찾아온 생활고에 좌절한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나서도 집안의 빚을 갚기는 턱도 없어 보인다. 중학생인 어린 동생은 아직 철이 없고, 가족의 짐을 어깨 가득 진 백이진의 하루하루는 쉽게 흐르지 않는다.


한 동네에서 살아가던 나희도와 백이진은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삶을 공유하는 특별한 사이가 된다. 티격태격 대던 말싸움과 오해는 고마움과 응원으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것도 흥미진진했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더 넓은 차원의 사랑이었다. 남모를 이야기를 공유하고 의지하는 나의 편, 언제 어디에 있든 나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고 꿈이 이루어지길 함께 소원해 주는 사람. 그런 존재는 상상 속에 있는 것만 같기도,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힘내라는 말을 이해한 순간


 

 

그냥 네가 노력하면 나도 노력하고 싶어져. 네가 해내면 나도 해내고 싶어져. 너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해. 내 응원은 그런 너에게 보내는 찬사야. 그러니까 마음껏 가져.

 

- <스물다섯 스물하나> 中

 


어렸을 적, 드라마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응원의 말을 다이어리 가득 적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말들이 왜 필요하지 궁금했다. 왜 힘내라는 말, 기운 내라는 이야기가 필요할까? 신기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주인공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의 나를 위해 조금 덜 지친 날의 내가 보내는 응원이, 대단할 것 없는 메시지가 아주 커다란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닌데, 남들도 무수히도 피곤한 일과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평범한 하루하루가 왜 이리 힘겨울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넓은 마음으로 억울하고 속상한 수많은 사연을 안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그런 어깨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었으면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인물들이 하는 대사를 나에게 건네는 것처럼 받아 품을 수도 있었고, 서로 서로에게 잠시 쉬어갈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데에 희미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힘내, 할 수 있어. 그런데 과연 우린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다는 말이,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못해도 되고 실패해도 괜찮을 세상을 우린 아직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봅시다. 최선은 다해봅시다. 다만 바랍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기를.

 

- <스물다섯 스물하나> 中

 


그래, 그렇게 기대어 살면 되지 싶었다. 꼭 주위의 가족, 친구, 다른 누군가가 아니어도. 드라마 속에서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현실에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의 말에, 길을 걷다 우연히 들려온 노래의 한 구절에, 조용히 집어 든 책의 문장에 기대어 살 수도 있잖아, 그런 마음이 들었다.

 

 

꿈은 꿈대로 살지 않는다고 실패한 인생도 아닌 것 같고, 꿈꾸는 대로 산다고 성공한 인생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저는 지금 저한테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습니다. 그게 현재 제 꿈입니다.

 

- <스물다섯 스물하나> 中

 

 

근래의 내 마음과 너무 같은 대사들도 있었다. 정확히 꿈꾸었던 일은 아니지만, 어느새 기자가 된 백이진이 선배에게 답하는 말이었다. 다른 누군가도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같이 이야기하면 소망과 의지는 더 단단해지는 것만 같아서. 대사를 따라 적으며 다시 읽어 보았다. 가끔은 유치해도 청춘을 말하는 드라마, 또래들이 각자의 고민을 펼치는 드라마를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닿는 곳


 

두 달 동안 많은 위로와 기쁨을 선물받은 <스물다섯 스물하나>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아쉬운 면을 보기도 했다.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이어간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의 한 회를 가득 채우던 긴장감과 흥미도가 사그라드는 듯했다.


우선 고유림 캐릭터가 겪는 가족사와 불행이 너무 반복하여 지속되는 데 지루함이 느껴졌다. 어려운 형편에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긋나지 않고 펜싱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부터 그동안 많이 봐온 설정이었고, 무엇보다 불행에 불행이 겹치면서 보는 사람의 속이 갑갑해졌다.


아쉬운 이야기 전개의 정점은 나희도와 백이진의 러브라인이었다. 연인이 되기 전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는데, 시청자들이 내내 기대하던 연인이 된 후 사랑을 표현하는 분량은 너무 짧았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납득하긴 어려웠다. 드라마 소개에서부터 내비쳤던 이별이라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 시절의 첫사랑으로 이야기를 잘 덮을 수 있도록, 둘 사이에 생긴 사건과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좀 더 정교하게 그렸어야 했다. 앞 부분에 힘을 가득 쏟다 중요한 마무리가 흐려진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3_MBN.png

@tvN/MBN

 

 

또 한 가지 아쉬움은 소재의 선택에 있었다. 후반부에는 9.11 테러를 배경으로 백이진이 뉴욕으로 떠나 취재를 하는 모습이 담긴다. 백이진은 잔혹한 테러 현장을 취재하며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한다. 한국에 있는 나희도는 백이진이 테러 현장을 취재하는 모습을 손꼽아 기다리며 원거리 연애를 하는 모습이 담긴다.

 

백이진이 9.11 테러를 보도하는 장면을 보고 웃음을 가득 보이는 나희도의 모습, 나희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쁜 옷을 고르곤 했다는 백이진의 말에 시청자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수 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고는 연인 간 애틋하고 달달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한 소재로 쓰이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과거의 사고를 주제로 다룬 영화를 만들 때에도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과연 가벼운 소재로 담길 수 있는 이야기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드라마는 흰 바탕에 어떤 이야기이든 담을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가상일지 몰라도 세상에 나온 이 이야기가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 선택에 영향을 끼칠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고민해야 한다.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을 다룰 때에는 훨씬 더 그 영향력이 커진다. 이와 같은 소재를 선택할 때에는 과연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다루는 것이 적절한 방법인지에 대한 오랜 고민이 필요하다.


마음을 가득 차게 하는 좋은 점도, 걱정되는 아쉬움도 많았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였다.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들은 흡수하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사려 깊게 편집해 만들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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