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저 노래를 들었을 뿐인데 왜 제가 상처받은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일까요? [음악]

글 입력 2022.03.0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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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구상에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에 그 플레이리스트의 형태는 제각각일 테다. 때문에 나는 타인의 플레이리스트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람이 직접 추가하고 묶어두었을 플레이리스트는 일종의 취향 꾸러미이니 말이다. 노래 취향뿐 아니라 플레이리스트를 어떻게 정리해두었는지 보면 그의 성격 또한 왠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지 않은가.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나는 직접 만들어둔 플레이리스트가 꽤 많은 편이다.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분류한 다섯 개의 메인 플레이리스트와 분위기, 날씨, 상황 등에 따라 분류한 플레이리스트 열여덟 개가 나의 음악 앱을 가득 채우고 있다(한 번도 세본 적이 없기에 이 정도로 많은 줄은 글을 쓰면서 알았다).


분위기, 날씨, 상황에 대해 조금만 예를 들자면, ‘햇빛이 쨍쨍한 날 듣는 음악’, ‘코끝이 시린 날 듣는 음악’, ‘축축한 비 냄새가 가득한 음악’부터 ‘언제 들어도, 몇 년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 등 내 취향으로 점철된 온갖 플레이리스트가 있다(물론 실제 플레이리스트 이름은 앞서 이야기한 것보다 훨씬 단순하다).


여하튼 이 열여덟 개의 플레이리스트 중 최근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곳은 ‘분위기 있는 음악’ 목록이다. 여기 담긴 곡들의 이미지를 몽땅 나열해보자면, ‘고급스러운, 웅장한, 처연한, 퇴폐적인, 무거운, 분노에 휩싸인, 절망적인, 처절한, 강렬한, 호소력 짙은, 애절한, 휘몰아치는, 몽환적인’과 같은 것들이다.


오늘은 이 플레이리스트를 채운 약 50개의 곡 중 세 곡을 골라 이야기해보려 한다.

 

 

 

Mercy


 

 

 

‘Mercy’는 몬스타엑스의 미니 10집 ‘NO LIMIT’에 수록된 곡으로, 멤버 형원이 작ㆍ편곡 및 작사에 참여하였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Mercy’는 관계 속에서 을의 간절함과 애절함을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포인트는 형원이 곡을 만들 때 참고했다는 ‘리플리’를 보기 전과 후의 내 감상이 꽤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리플리’의 내용보다는 색감과 분위기를 이 곡에 담아내고자 했다는데, ‘Mercy’를 들으면 묘하게 분노에 가득 찬 듯하며, 촛불이 일렁이는 성당 이미지가 생각난다는 점에서 이는 성공적인 듯하다.


그런데 ‘I change my clothes, my hair, my face, my name’과 같은 파트나 ‘붉게 물든 강’, ‘이곳에서 날 꺼내 줘’, ‘그대 안에서 살길 비로소’ 등과 가사를 보면 영화의 내용과도 묘하게 연결되는 듯한 지점이 꽤 있는 것 같아 무척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건조한’, ‘버석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기현의 분노 섞인 보컬과 물기 어린 듯한 목소리 덕에 몽환적이고 애절한 느낌을 내는 형원, 민혁의 대비가 돋보인다. 주헌과 아이엠은 이 사이를 빠른 호흡의 랩으로 채워 넣으며 어떤 대상을 갈망하는 듯한 느낌을 짙게 풍긴다.

 

 

 

Psycho


 

 

 

‘Psycho’는 백현의 첫 번째 미니 앨범 ‘City Lights’에 수록된 곡으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감정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자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백현은 이러한 가사를 가성과 진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웅장한 사운드와 어두운 분위기가 더해져, 듣고 있자면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

 

후렴의 비트가 워낙 강렬해서 백현 또한 강렬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잘 들어보면 그는 의외로 무덤덤하게 '내 안에 날 지배하는 다른 누군가가 있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왠지 가사 그대로 그에게 굴복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다시피 위태로워

가까이 와줘 난 네가 필요해

깨질 듯해 머릿속이

어서 물러서 거리를 둬

 

 

특히 두 번째 프리코러스 부분에서 얼굴을 휙휙 바꿔가며 화자를 괴롭히는 내면이 가장 돋보인다. 백현은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연기해 마음이 약한 피터 파커를 속이려 한 그린 고블린처럼 무척이나 간절하게 ‘너’를 부르다, 한순간에 고음을 내지르며 본인에게서 물러나라며 화를 낸다.


곡의 주제 덕에 백현이 속한 그룹인 엑소의 '지킬(Jekyll)'이라는 곡이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날 버린 이유


 

 

 

‘내가 날 버린 이유’는 1995년 발매된 베이시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앨범 ‘RE_vive’에 수록된 곡이다.


곡 내내 웅웅대며 깔리는 저음 위에 하나둘 얹어지는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무척이나 황홀하다. 특히 곡이 고조되며 악기뿐 아니라 멤버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이는 걸 들을 때마다 발끝에서부터 쭉 소름이 돋는다.


 

너의 사랑을 받은 이유로

나는 나를 버려야 했어

내 모든 것을 다 가진 네가

남은 게 없는 날 버렸기에

 

 

위 파트를 모든 보컬 멤버가 돌아가며 부르는데, 각각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점이 좋다. 나르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처연한 느낌, 가인은 이제 다 포기한 것처럼 차가운 느낌, 제아는 상대에 대한 분노가 섞인 느낌처럼 들렸다.


리메이크를 하며 원곡에는 없는 랩 파트가 추가되었는데, 앞서 나오던 대부분의 악기가 빠지고 피아노만 남은 곡 위에 읊조리듯 내뱉는 랩을 시작으로 기타 선율 위에서 터지려는 감정을 애써 꾹꾹 누르는 듯한 미료의 랩이 곡과 무척 잘 어울린다.


특히 곡의 후반부에 제아와 가인이 가사를 주고받는 파트는 꼭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끼고 듣기를 추천한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다른 화음이 더 잘 들리도록 패닝을 해두어 정말 큰 옛 성당에서 듣는 듯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편곡할 때에 웅장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공간감을 살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고 하는데, 이 효과 덕에 곡의 처절한 느낌이 더욱 살아나는 듯하다.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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