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하지 않음으로 말해지는 것 -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 [격주의 문학]

글 입력 2022.02.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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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김채원 작가의 단편소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이고, 이 작품은 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이다. 우선은 (조금 늦었지만) 우리 문단에 새로운 작가가 등단하게 된 것에 대해서 축하의 말과 감사의 말을 동시에 전해야 할 것 같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이 다른 매체들보다 영향력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꺼이 제도권 문학의 시스템에 참여하여 자신의 소중한 생각과 미적 감각을 독자들과 공유해 준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신춘문예에 등단한 것은 물론 기쁜 일이겠지만, 동시에 정보의 비대칭성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을 대하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작가가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는 것은 등단작을 읽고서 향후의 작품들을 기대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그녀의 등단작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를 소개하기로 한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는 소통의 방식에 대해서 의미있는 지점들을 짚고 있는 소설이다. 보통 사회 공동체 내에서 소통과 대화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겨진다―아트인사이트의 모토도 “문화는 소통이다”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도 관련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말로써 명확하게 표현을 할 때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언어라는 형식 속에서 전달하기 힘들어지는 메시지들도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나의 진실된 어떠한 마음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단어가 없거나 떠오르지 않는다든가, 혹은 어떤 대화 분위기 속에서 나의 말에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든가 하는 상황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의 인물들은 말을 하지 않거나 일부러 영 상관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것 같다. 오히려 대화를 왜곡시킴으로써 비로소 전달되는 진실. 이러한 역설적인 모습들을 이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감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경향신문의 신춘문예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고 지나가려고 한다.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서 현재까지 문단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소중한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기 때문이다. 2005년에 황정은 작가, 2011년에 백수린 작가, 2012년에 강화길 작가가 등단하여 오늘날까지 의미있는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2020년에는 이유리 작가가 등단하여 동화적, 설화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들로 작년과 재작년 우리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주었다.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에 당선된 김채원 작가도 올 한 해, 그리고 앞으로 쭉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기를 선사해 주었으면 좋겠다.

 

 

[크기변환]수국.jpg

보통 우리는 "수국이 현관 앞에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현관이 수국 뒤에 있다"라고 말할때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점들이 있을까. 늘 그곳에 위치하는 현관의 존재는 수국의 화려함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말하기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언어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말할 때 말해지지 않는 무언가는 그 뒤에 가려져 있지 않을까.

 

*


소설은 석용, 동우, 성아 세 사람이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자양동 거리를 함께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친구 유림의 자살 소식을 들은 세 사람은 유림의 집을 정리하기 위해서 모였다. 유림의 사건에 대해 연락을 받은 이들은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데, 그때는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이들이 만났을 때 석용은 평소처럼 아무말이나 하고 있었고 동우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평소와 같은 거리의 풍경들을 보고 길가에 보이는 평범한 백반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면서 유림의 집으로 향하기 전까지 시간을 보낸다.


그 중간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식자재마트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뙤약볕에 앉아서 동네의 집단폭력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더운 날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뿐,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림이네 아파트 단지에 진입한다. 유림의 옆집에 사는 노인의 모습이 보이고, 골목에 앉아서 숙제를 태우는 어린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말을 아끼고 유림이네 집으로 향한다.


*


소설의 한여름의 무더위를 배경으로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은 더운 날씨―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태양의 살인적인 자외선만 느껴지는 한여름의 날씨―에 대해서 한마디씩 내뱉으며 유림의 집으로 향한다. 유림의 죽음에 관한 어떠한 것도 입밖으로 발설되지 않는다. 석용은 시시콜콜한 농담들, 의미 없는 말들만을 내뱉고 동우는 혼자서 딴생각을 하느라 석용의 말을 듣지 않고, 성아는 석용과 동우의 사이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이따금씩 말을 건넬 뿐이다. 이것이 소설의 전부이다. 죽은 친구의 짐을 수습하러 가는 길이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동하는 이야기.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석용과 동우와 성아가 대화를 나누는 양상을 보면, 1)일단 대답을 할 수 있는 말을 잘 하지도 않거니와, 2)대답을 하더라도 어떠한 생산적인 결론도 유도할 수 없는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대화의 중간에 행인이나 주변의 장면에 의해서 대화가 쉽게 단절되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매 장면마다 이러한 이질적인 상황의 어색함은 부각되지 않고, 그들이 서로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나타난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가치가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의 층위에서는 이들이 어떠한 합의도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대화의 어긋남을 통해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표현과 소통의 문제는 많은 작품들이 다루고 있지만, 김채원 작가의 서술은 인물들에게 있어서 대화의 어긋남과 표면 아래의 유대감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묘하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에서는 서사가 진행될수록 인물간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주변의 풍경들 혹은 이질적이거나 폭력적인 성격의 장면이 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러한 장면들은 세 사람의 여정에 더욱 큰 유대감을 부여해주는 것 같다. 이러한 감각이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올 수 있는지는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러한 느낌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느껴진다.


일상적으로 의사소통이나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표현을 해야 안다’거나 ‘표현은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상용구들이 있는 것 같고, 사회적인 시스템을 보았을 때는 신문고 등의 기구를 통해서 구성원들의 의사제기와 표현을 더욱 적극적이게 하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말로써 표현하려고 할 때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감정과 관계성에 대한 것들은 온전하게 잘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일들이 반드시 언어의 방식과 같이 논리적인 형태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언어적인 표현들(눈빛이나 표정, 더 나아가 몸의 자세나 주변의 분위기)을 통해서 비로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감성들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김채원 작가의 인물들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실상으로는 그 경험 속에서 효과적으로 내면의 어떠한 마음을 주고받고 있는 것 같다. 표현을 아낌으로써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소통 방식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


언어는 사회적인 약속인데, 약속이라는 것은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어 인간에게 안심과 자신감을 준다. 그래서 언어를 통한 소통은 우리가 전하고 싶은 바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언어를 습득하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거대한 사회적인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그 약속을 수용하는 방식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 인한 오해들이나 분쟁들도 발생하는 것 같다.


사회 공동체 속에 스스로가 속해있음을 느낄수록, 말을 효과적으로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하게 되는 것 같다. 대화나 발표에 대한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그와는 별개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와 같은 책들이 대중의 호응을 받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을 상대로 항상 정답인 말하기 방식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의 마음도 존재한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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