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 여행자의 일기장 - 게티이미지 사진전

마침내 '워터마크를 벗고' 공개된 기록의 가치
글 입력 2022.02.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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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는 늘 주제 달성과 메시지 전달이라는 분명한 목적 달성의 의무를 갖고 있다. <게티이미지 사진전>은 프로모션용 메인 포스터 중 하나로 위 사진을 선택했다. 채도가 없고, 선명도가 떨어지고, 사진 속 남녀의 모습은 어딘지 빈티지스러운 것이, 과거의 영화배우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키스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제법 익숙하게 느껴진다. 내가 최근 2년간 지하철역에서, TV 예능 속 커플의 일상에서 목격한 순간과 오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면 사진 속 커플은 천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이 유일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위 포스터의 목적이었다. 위 사진은 1930년대, 독감이 유행할 시기 할리우드의 영화 속 모습이다. 90년이 넘게 지난 현재, 나는 자연스럽게 2022년의 모습을 연상했다. '세상을 연결하다'. 1995년 창립 이후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게티이미지사의 컬렉션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게티이미지 사진전>의 부제이다. <보호 마스크를 쓴 채 하는 영화 속 키스>는 1930년대와 2020년대를 연결했고, 독감으로 몸살을 앓던 당시 미국 할리우드와 현재 끝나지 않는 팬데믹에 시달리는 전 세계를 연결했다.

 

지나온 시간의 순간들과 우리는 또 어떤 사진을 통해 연결될 수 있으며,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 이제 나는 시간 여행자가 되어, 28년간 게티이미지사가 아카이빙해 둔 수많은 사진작가의 일기장을 엿보며 그 답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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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사의 기획 전시는 게티이미지 아카이브의 형성에 관해 이야기하며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1988년 런던의 게티이미지 아카이브에서 처음 만들어진 '게티이미지 암실', 이미지 원본이 가진 최상의 조건을 살릴 수 있도록 인쇄하고 보존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관한 설명이다. 전시장 벽면에 적힌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 첫 섹션 '아키비스트의 저장고' 앞에 서면, 내가 마주하게 될 긴 역사와 방대한 기록에 긴장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아키비스트의 저장고'에서는 '헐튼 아카이브', '픽처 포스트' 등 출간물 콘텐츠들과 '슬림 에런스', '에른스트 하스' 등 역사를 기록한 작가들의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첫 사진의 영광을 차지한 <그랜드센트럴역으로 들어오는 태양>은 헐튼 아카이브 소장 작품으로, 1930년 흑백 사진의 아름다움이 뚜렷하게 드러난 사진이다.

 

직선의 빛을 증명하듯 힘차게 뻗어나간 태양은 평범했던 역전을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열차의 창문은 언뜻 보면 조명이 비추는 전시장에 걸린 액자 같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시를 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 같아서 여러모로 첫 작품의 자리에 잘 어울리는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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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작, <경비원의 개>는 보자마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를 관람할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나를 예술의전당으로 이끌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의 장소는 런던의 피카딜리서커스호텔 앞. 경비원은 호텔에서 일하며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강아지와 눈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인 순간 찍힌 사진 한 장은 1938년 10월 22일의 살짝 쌀쌀한 공기 속 순간의 온기를 전달한다.

 

동시에 이 사진은 게티이미지 사진전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사진들도 다루지만, 이처럼 평범한 일상 역시 공유한다. 이는 사진 애호가들에게는 소소한 휴식이, 사진전과 아직 친분을 쌓지 못한 이들에게는 한 발짝 사진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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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섹션은 '현대르포의 세계'였다. 현대작들의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촬영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주로 전 세계에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혐오, 대립, 폭력의 순간들을 기록한 작품들이었다.

 

첫 번째 섹션, '아키비스트의 저장고'에서는 작품의 탄생 연도를 확인하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다. 흑백사진도 많았고, 1900년대 초반의 기록들은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번 섹션에서 연도를 확인하는 행위는 너무나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총성이 난무하는 사진 속 상황은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 사진들이 찍힌 날짜는 불과 몇 년 사이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프리카의 내전 상황 속에서 피란민들 뒤로 무지개가 떠 있는 사진이었다. 토속적인 특징이 돋보이는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머리 위로 떠 있는 무지개는 그들과 닿을 수 없이 유난히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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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3, '기록의 시대'는 자유, 인권 등 특정 주제를 놓고 역사 속 순간을 되돌아보고, 섹션 4 '연대의 연대기'는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는 순간들을 나란히 전시했다. '연대의 연대기'는 전시장의 한 면에 나열된 화면들에 불과했지만 나를 꽤 오래 붙잡아 두었다. 앞에 놓인 나무 벤치들은 전시회 반절 정도를 지나 온 관람객들에게 휴식할 공간이 되어 주기도 하고, 정면에 보이는 연대기를 찬찬히 바라보고 생각할 시간을 주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때로는 폭력과 전쟁, 피와 비명이 되풀이되는 비극적인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때로는 사랑과 사람의 온기가 만들어내는 희망의 불씨가 다시 피어오를 때도 있다. 벽면 한쪽에는 거울이 있고, 그 아래에는 'HISTORY REPEATS ITSELF'라고 적혀 있다. 연대기를 따라 걷다가 마주친 이 거울은, 우리를 계속 이 땅에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은 그 희망에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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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섹션 '일상으로의 초대'는 지난 2년간 새로운 아픔을 겪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다. 이전에도 이겨냈으니,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다독임. 접촉, 마스크, 일상 등의 키워드로 꾸려진 미디어월은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재생되고, 우리에게 남은 러닝 타임 속에는 아직 웃는 장면이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이로써 게티이미지 사진전은 에필로그를 맞이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우리는 각자 온전한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더없이 희망적이었다. 지금껏 봐 온 사진들 속 웃음은 머지않은 우리가 맞이할 웃음의 예고편 같았다.

 

오랜 세월을 건너 2022년의 나에게까지 전달된 일기장은 '우선' 이렇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슬쩍 더 넘겨본 일기장에는 남은 페이지가 수도 없이 많았고, 나는 일기장과 함께 펜과 카메라를 넘겨받았다. 이제는 내가 세상을 연결해 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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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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