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섹스 심벌 그 이상의 마릴린 먼로 [미술/전시]

전시 <메모리즈 오브 마릴린 MM 2022> 그리고 미완의 자서전
글 입력 2022.01.2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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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는 195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이다. <신사를 금발을 좋아해>, <7년만의 외출>을 비롯한 약 30여 개의 작품에 출연했다. 먼로의 대중적 이미지는 짙은 눈과 화려한 금발 등 외적인 요소에 국한된다. 나 또한 그의 매혹적인 외관에 시선이 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마릴린 먼로의 매력은 그의 외모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릴린 먼로가 누구인지는 어릴 적부터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직접 그의 작품을 본 건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라는 영화가 고음질과 고화질로 남아있음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작품 속 먼로의 캐릭터는 예상외였다. 먼로의 캐릭터가 당연히 멍청하고 순진할 거라고 예상했다. 모든 매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속 먼로의 캐릭터 ‘로렐라이 리’는 다분히 현실적이었으며 자신의 몫을 챙길 만큼 똑똑한 인물이었다.

 

 

“Say, they told me you are stupid. You don’t sound stupid to me.”

사람들이 너를 멍청하다고 하던데 대화를 해보니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I can be smart when it’s important. But most men don’t like it.”

중요한 순간에는 똑똑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똑똑하게 구는 걸 좋아하지 않죠.

 


로렐라이 리가 약혼자의 아버지를 처음 마주한 장면의 대사이다. 아들의 약혼자인 로렐라이를 처음 만난 그는 그를 탐탁지 않아 한다. 로렐라이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당신이 볼품없는 내 아들을 사랑해서 결혼할 리가 없다는 자조적인 발언도 한다.


그는 로렐라이를 몰아붙인다. 그러나 이내 로렐라이의 언변과 논리에 놀라며 ‘사람들이 너를 멍청하다고 하던데 대화를 해보니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에 로렐라이는 ‘중요한 순간에는 똑똑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똑똑하게 구는 걸 좋아하지 않죠’라며 순진한 척 굴었던 이유를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로렐라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먼로가 이 대사를 즉석에서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실이 어떻든, 먼로라는 배우의 삶은 이 대사와 상당 부분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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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시작으로 먼로의 출연작을 연달아 시청했다. 그리고 먼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자 전시를 관람하기로 했다.


전시 <메모리즈 오브 마릴린 MM 2022> 현장에는 먼로와 관련된 숱한 기록이 있다. 글은 적고, 사진은 많다고 느꼈다. 평면 이미지에 담긴 먼로는 대부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모습이었다. 카메라와 관중에 둘러싸여 매혹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간간이 있는 먼로에 대한 기록은 그 자신보다는 그를 둘러싼 상황 서술이 더 많았다. 먼로를 캐스팅한 사진작가, 먼로의 남편, 그리고 먼로의 밝혀지지 않은 죽음까지. 온통 먼로의 사진이 붙어있는 공간이었지만, 정작 먼로의 입을 빌린 기록은 많지 않았다.


그런 아쉬움에 집에 돌아와 먼로의 작품과 인터뷰를 살폈다. 외모만 봐도 외마디 감탄이 나오는 배우였지만, 하나둘 그의 생각을 읽으니 먼로라는 인간 자체가 자꾸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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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거의 완독한 사진이 남아있고, 사후 공개된 집 사진에서 벽을 빼곡하게 채운 책과 책장이 먼저 눈에 띌 정도다. 각종 인터뷰에서도 먼로의 지식수준과 생각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먼로의 지적인 면모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오히려 똑똑하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기도 했다.


먼로와 그의 고용주들은 먼로를 향한 대중의 기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먼로의 지적인 이미지가 수익 창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런 이유로 먼로는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다수 맡았다. 아름다운 배우의 순진한 연기는 예상대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먼로의 이미지는 점차 외적인 아름다움과 특징에 한정되어 굳어져 갔다.


 

I want to learn everything that is to be learned about acting.

연기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건 전부 배우고 싶다.

 

- Screenland Magazine (1952)

 

 

The best way for me to find myself as a person is to prove to myself that I am an actress.

내게 인간으로서의 나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에게 내가 배우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 Redbook Magazine Interview (1962)

 


먼로의 성장을 향한 열망은 대단했다. 특히 연기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먼로는 1952년 한 인터뷰에서 ‘연기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건 전부 배우고 싶다’라고 말하며 연기와 배움을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1962년의 인터뷰에서도 ‘내게 인간으로서의 나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에게 내가 배우임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여전히 비슷한 태도를 드러냈다.


실제로 연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건 물론, UCLA Extension에서 문학 수업을 들으며 작품을 다채롭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1962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한 먼로는 자서전을 채 마무리하지 못했다. 공개된 미완의 자서전에서도 먼로의 연기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But, my God, how I wanted to learn! To change, to improve! I didn’t want anything else. Not men, not money, not love, but the ability to act.

얼마나 배우고 싶은지!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하고 싶은지!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어요. 남자도, 돈도, 사랑도 말이죠. 다만 연기를 할 능력만 원했습니다.

 

- 마릴린 먼로 미완의 자서전 "나의 이야기(My Story)"

 


현재에도 훌륭한 배우로 평가받는 먼로이지만, 정작 자신은 배우로서 성장할 여지가 더 있다고 판단하고 늘 발전을 원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Knowing what I know now, I wouldn’t accept River of No Return today. I think that I deserve a better deal than a Z cowboy movie.

새로운 걸 알게 되면서, 지금이라면 <돌아오지 않는 강>의 역할을 수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내가 B급의 카우보이 영화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Saturday Evening Post (1956)

 


먼로는 자신이 완벽한 배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높은 가치를 인지하고 행동했다. 1956년, 한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면 <돌아오지 않는 강>을 촬영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가치는 그런 B급의 영화보다 높다고 평가했다.


공공연히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약점을 드러내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사회는 쉽게 타인을 평가절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어기제처럼 부족함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먼로는 그런 두려움이 없는 듯 자신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완벽과 거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더불어 자신의 정당한 가치도 당당하게 주장했다. 저평가받지 않는 배우의 입지를 직접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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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maybe if other girls know how bad I was when I started they will be encouraged.

다른 여자아이들이 내가 처음에 얼마나 못했는지 안다면 그들이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거예요.

 

- The Scrantonian Sun (1951)

 

 

먼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았다. 1951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배우 생활 극초기를 언급하며 ‘다른 여자아이들이 내가 처음에 얼마나 못했는지 안다면 그들이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매체에 드러나는 먼로의 모습은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분명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먼로는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자각하고 그들의 도전을 응원했다.


할리우드에서 자본과 경력을 쌓은 먼로는 1957년 영화 제작사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1800년대부터 이어진 상업 영화의 역사에서 비로소 최초의 여성 영화 제작사 대표가 탄생한 것이다. 먼로의 이러한 행보는 여러 여성 배우들이 새로운 길에 눈뜰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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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는 집필하던 자서전을 출판하지 못하고 일찍 사망했다. 먼로가 직접 전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접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일부 공개된 먼로의 자서전에서 활달하고 생동감 넘치는 말투를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집필 과정에서 평소 표현하지 못한 바를 자유롭게 풀어내며 해방감을 느꼈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먼로의 인터뷰를 남긴다. 연기를 향한 진지한 태도와 성장을 향한 열망을 무시하고 비웃던 이들에게 먼로가 남긴 말이다. 먼로의 세계는 다채롭고 흥미롭다. 여전히 먼로의 외모에만 감탄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 손해라고 확신할 수 있다.

 

 

Some people have been unkind. If I say I want to grow as an actress, they look at my figure. If I say I want to develop, to learn my craft, they laugh. Somehow they don’t expect me to be serious about my work. I’m more serious about that than anything.

어떤 사람들은 불친절했어요. 제가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들은 제 몸매를 봤어요. 제가 발전을 원하고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그들은 웃었죠. 왜인지 그들은 제게 일에 있어서 진지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일에 대해 그 무엇보다 진지해요.

 

- Interview circa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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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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