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 서사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이유 - 여자들의 사회 [도서]

글 입력 2022.01.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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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등장하는 문화 콘텐츠들이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여성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극이 무대에 많이 올려지고 공연계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심지어 예능 콘텐츠 등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사람들의 흥미를 사로잡는 단순한 유행 소비로 지나가는 게 아니다. 그 이유를 담은 책이자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들의 사회를 쉽게 풀어낸 책 <여성들의 사회>를 읽게 되었다.

 

책은 여성이 등장한 문화 콘텐츠들을 대표적으로 하나씩 챕터별로 나누어 다루면서, 여성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방향성을 녹였다. 나조차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현주소에 대해서 자세히 사유하는 경험이 부족했고, 올바른 정체성 확립을 위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대중문화 콘텐츠를 함께 다뤄 이해하기 쉽게, 더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끔 만든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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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사회에 대한 해석과

재해석이 넘쳐나는 책 <여자들의 사회>

 

 


책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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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웹툰, 유명 고전, 영화, 티비 프로그램,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통해 소주제를 말하고 작가가 생각하는 해석들을 만나볼 수 있다.

 

 

1. 너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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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하며 꿈꿔온 여자들의 사회는 남자 없는 사회가 아니라 남자가 필요 이상 중요해지지 않는 사회다. 또한 여자들 간 관계의 의미가 과소평가되지 않는 사회고,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공유한 사회며, 여자라는 동질성 아래 같은 구호를 외치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각각의 고유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고, 바로 그 점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기에 함께 있는 것이 의미 있는 그런 사회다. p.23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바와 그리는 세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을 때까지 필요했을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직 나도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사회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적지 못하겠지만, 작가가 말하는 그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 거부당한 정체성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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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에 대한 글로, 영화는 자식을 홀로 키우고 있는 윤희의 20년 전 부인되고 좌절된 사랑을 그린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단지 동성을 사랑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과정 전반에 걸친 연속적인 문제라는 점을 잘 드러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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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작가는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동성 간 사랑을 억압하고 금지했던 주변 인물들로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소외시켰던 20년 전 세상, 그리고 서로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주변 인물들이 생겨난 지금, 각자는 자기 자신을 더는 스스로 소외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삶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은데, 청춘의 나이에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당한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고, 사랑하며 나 자신으로 나를 살게 하는 그 사랑의 힘을 깨닫게 해준 캡터였다.

 

 

7. 이토록 다른 우리가 친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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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춘 시대>에 대한 챕터로, 고등학생이었을 때 이 드라마를 잠깐 본 적이 있어서 나도 대학생이 되어 저런 하우스 메이트를 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기도 했다.

 

셰어하우스에 있는 5명의 여자들은 정말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각자에게 놓인 고난을 함께 해결해가는지 보는 맛이 있었는데 작가도 이에 대해 분석하면서 서로에게 존재하는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며 친구가 되어가는 것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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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이성간 사랑에 대해 많이 다룰 줄 알았지만, 현실적인 여자들의 고민을, 아픔들을 그려서 다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드라마였는데, 어른이 된 내가 보게 된 이 드라마에 대한 감상평이 다를지 궁금해져 다시 보고 후기를 남기기로 했다.

 

 

8. 외롭지 않냐고? 고양이와 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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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신기하게도 내 주변엔 그리 결혼을 꿈꾸는 사람이 많지 않다. 굳이 계산해보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친구들보다 차라리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나만의 삶을 즐기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 흉흉한 기사들이 계속 전해지는 요즘이니, 신기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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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정말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여성에게 놓인 유리천장, 어쩌면 유리도 아니고 검게 칠해진, '대놓고 천장'인 한계들에 대해서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낸다.

 

특히 1997년 구제금융 위기 직후, 98년 1/4분기 경제활동인구는 여성이 4.1% 감소, 오히려 남성은 1% 증가했다는 수치를 보고 매우 놀랐다. 여성 우선 해고가 노동청의 특별 대책으로 나왔고, 이렇게 시작된 구조 조정으로 여성 청년의 실업률은 높아졌다. 이젠 무급 가족 종사자 비율에 많은 여성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러한 실업 문제에 관해선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많이 배우긴 했지만, 이렇게 영화를 통해 이를 느끼고 현실을 돌아본 건 처음이었다. 이 챕터가 책에서 가장 신선한 충격을 내게 주었고, 빨리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과 결혼 이야기를 하면 우스갯소리로 "고양이랑 살면 돼 괜찮아. "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게 여기서 나온 말임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10. 노블 골드 캐슬 아파트 부녀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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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방옥숙>은 전업주부 여성들이 적극적인 투자 행위부터 저축과 관리, 자녀 교육과 집안일, 간병, 돌봄 노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계층 상승의 핵심 키가 바로 이 투자, 관리, 생활 습관 등에서 나온다. 부녀회의 활동은 계층 상승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일이다. 전업주부의 이러한 경제 활동들은 대체로 집착에서 비롯된 과도한 수행성으로 이해되며, 매우 부적절한 방식으로만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부적절하고 부정적일지언정 이 과잉이 결국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의 허구적 성격을 폭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p.142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전업주부 여성에 대해서 다룬 이 글은 우리 가족의 형태를 돌아보게 했다. 우리 집 또한 엄마가 전업주부로 결혼할 때부터 계속 그렇게 이어져 왔다. 내가 어릴 때, 중국으로 장기 출장을 자주 갔던 아빠의 빈자리도 결국 엄마가 다 채워주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혼자 많은 자식들을 케어했을까 싶으면서 엄마의 대단함과 고마움을 크게 느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전업주부인 엄마가 고맙기도 했지만, 점점 머리가 크면서 엄마도 일하면서 자아실현이나 인생의 재미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많았다. 항상 학교를 끝마치고 돌아오면, 간식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날 반겨주었다. 그게 얼마나 큰 역할과 중요성을 지닌 지도 모르고, 엄마도 일해서 이것저것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서 새로운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아빠의 직업, 엄마의 직업을 적는 서류를 내야 했는데 항상 엄마의 직업명은 전업주부였다. 그때는 "전업주부라는 돈도 못 버는 직업이라니, 내 모든 업이 '주부'라는 게 엄마는 싫지도 않을까?" 어리석고도 짧은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는 "전업주부"라는 단어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작가의 글을 읽고 나서, 전업주부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다. 월급 노예로 살다가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직장을 그만뒀다는 전업 투자자보다 멋진 직업이다.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정의되지 않는 모든 일을 해내는, 억척스럽게라도 해내야 하는 여성들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진가를 알아주지 않고 부적절한 밈만 떠돌고 비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그런 전업주부 모두에게 그녀의 딸인 나조차도 갖고 있었던 부정적 인식과 생각들에 대해 사과를 건네고 싶다. 나아가 그들을 누구보다 유쾌하게 그 진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대하고 싶어졌다.

 

*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모든 소수자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 위치에서 나온다고 했다.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수자로 존재할 수 있지만, 여자들의 사회에서는 소수자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실이었다.

 

 

가부장제는 선택과 인정의 권력을 일부 남자가 독점하도록 만든 체제다. 그런 사회에서 여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지지하 고 응원하는 관계로 지내는 것은 쉽지도 않고 당연하지도 않다. 똑같은 위치에 있을 때에만 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고, 조금이라도 튀거나 부족하면 원 바깥으로 내치면서 그 집단의 수준을 관리하는 것 역시 여성들에게 주어진 성 역할 중 하나였다. 페미니스트가 만든 사회라고 해서 완전히 해방적인 것은 당연히 아니고, 동등한 것과 동일한 것을 착각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언제나 가부장제 사회에 완전 히 포섭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 동성 사회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증거들을 대중문화 속에서 찾아내는 이번 작업은 아주 즐거웠다. p.195 작가 에필로그

 

 

존재로서 사회의 일원인 여자들이 만들어내고 경험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내게 굉장히 긴 여운을 주었다. 성인이 되어 다양한 집단에서 일해가면서, 성 평등을 강인하게 표방하는 주변인들을 보아도 현실의 행동은 결국 가부장제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 중 하나를 하는 어항 속 갇힌 붕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너무 그들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지 나도 가부장제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버린 차별주의적 여자가 되어버린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분명해졌다. 내가 추구하는 세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아직 내 글로 표현할 수 없지만, 가부장제 사회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 동성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 중 하나를 내가 생각해오고 있던 것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실천해오고 있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잠재적으로 가진 내 생각들을 바꾸는 노력 자체가 그러한 사회로 가도록 만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식 속 자리 잡고 있는 차별 어린 생각들을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어 무척이나 감사했다. 앞으로도 여자들이 어떻게 여자들의 사회를 꾸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 다양한 사회 모습 자체와 정체성을 조명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한 콘텐츠를 알려주는 책을 읽게 되어 단순히 여성서사 콘텐츠들을 유행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더욱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다양한 콘텐츠들을 색다른 시야로 바라보고 현실에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따질 수 있는 재량을 얻고자 노력하자고 다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여성들의 사회에선 '사회가 원하는 여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본질이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각종 TV 콘텐츠, 공연, 문학, 예술계에서 여성 서사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책과 여성 서사를 다룬 대중문화 콘텐츠가 보통 흔히들 말하는 사회가 원하는 여성성에 던지는 돌이 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뜻깊고 새로운 발견이다. 앞으로도 여성 서사가 단순한 유행으로 지나버리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여자들의 사회에 호응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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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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