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마음속 안식처 : Kings of Convenience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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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월의 절반이 지났다. 새해의 출발선 1월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특별하기 마련이다.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작년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새롭게 달라진 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신발 끈을 고쳐맨 후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작년보다 고작 한 살이 더해졌을 뿐인데, 쌓여야 할 여유는 사라지고 조급함만 늘어간다. 내 나이쯤 되면 응당 이루었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올해는 해내야지', '올해는 꼭...' 마음속으로 되뇌곤 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은 열정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초조함을 더 쉽게 불러온다. 이러다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고 과거와 똑같은 후회를 반복할까 봐, 혹은 올해 목표한 꿈을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렵고 불안하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한다. 숨차게 달리기만 하면 금방 지치기 때문에 걷기도 하고 잠깐 쉬어가기도 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습관처럼 찾아 듣는 노래들이 있다. 그들의 음악은 내 마음속 안식처를 더 넓고 평화롭게 만들어 준다.
Kings of Convenience는 2000년에 데뷔한 노르웨이 베르겐 출신의 어쿠스틱 포크 팝 듀오로, 1975년 동갑내기 친구인 얼렌드 오여(왼쪽), 아이릭 글람벡 뵈(오른쪽)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편리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들의 음악은 'convenient'보다 'comfortable'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함께 어우러진 그들의 화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분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안온함과 평온함이 어떠한 것인지, 노래 하나로 이해시켜주는 느낌이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음악은 사계절을 아우른다. 자극적이지 않고 꾸밈이 없는, 마치 잔잔한 호수 같은 매력이 내가 그들의 노래를 1년 내내 듣도록 이끌었다. 따스한 봄, 무더운 여름, 선선한 가을, 추운 겨울, 사계절의 어디서 듣든 이질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새해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사계절을 닮아 있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노래를 전해주고 싶다. 이들의 음악을 통해 사라진 여유를 되찾고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봄 : Rocky Trail
작년 여름,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무려 12년 만에 정규 앨범 [Peace or Love]로 돌아와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을 놀라게 하고 열광케 했다. 그들의 컴백을 두고, 혹자의 표현을 빌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And when the world needed them the most, they returned."
팬데믹으로 2년이 넘도록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많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걱정 없는 편안한 일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신보는 37분 동안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긴 공백기 끝에 나타난 그들의 음악은 10년이 넘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대로였다. 내가 좋아한 그들의 매력, 특유의 평화롭고 포근한 음악적 색깔은 여전했다.
'Rocky Trail'은 바이올린, 비브라폰 등 다른 수록곡에 비해 다양한 악기가 구성되어 풍성함이 더해졌는데, 경쾌하고 산뜻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래서인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학생의 신분으로 보냈기 때문에 나에게 봄은 새로운 시작의 다른 말인데, 이 음악과 함께라면 그 출발이 즐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사도 그러한 봄과 어울리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Seeing what you can do with your hands and feet, I feel there is no question about it. Almost anything you can imagine, Almost any goal, You will get there' 겨우내 움츠리고 있었던, 혹은 지난 계절 내내 생각만 하고 망설이고 있던 무언가를 도전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 I'd Rather Dance With You
여름 하면, 숨 막히는 무더위가 생각나기보다는 밝고 푸르른 한여름 낮과 기분 좋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청량한 여름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I'd Rather Dance With You'이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 [Riot On An Empty Street]은 대부분의 수록곡이 국내의 광고 음악으로 쓰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앨범의 여덟 번째 수록곡인 이 곡은, 들으면 리듬을 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신나고 경쾌한 흐름이 특징이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고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과 시원하고 고소하면서 씁쓰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연신 생각나는 어느 평범한 여름날, 이 노래를 만났다. 그때부터 매년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플레이리스트에 이 곡을 추가하는 것이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발매된 그해, 노래만큼 이목을 집중시켰다고 한다. 뮤직비디오 속 어린아이들이 딱딱한 분위기에서 배운 정형화된 춤이 아닌, 자유롭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에서 전해지는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어설프고 엉성하지만 어쩐지 나름대로 매력적(?)이어서 빠져들게 되는 얼렌드 오여의 춤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무더위에 지쳐 기운이 쭉 빠져 있을 때에도 손이나 발 둘 중 하나는 꼭 움직여 리듬을 타게 만드는 이 곡의 깜찍한 매력에 빠져보자.
가을 : Homesick
'Homesick'은 가을을 닮았다. 노래를 들을 때면 예쁘게 물든 낙엽이 소복이 쌓인 어느 한적한 공원이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날의 노을 지는 하늘이 그려지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흔히들 가을은 외롭고 고독한 계절이라고 말한다. 이 노래 또한 어딘가를, 언젠가를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그리움과 쓸쓸함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듣기에 잔잔하고 편안하지만, 사람을 매우 감성적으로 만든다.
잔잔한 멜로디 위에 수 놓아진 가사는 마음을 울린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나 따뜻하게 반겨주는 누군가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어느 날에 들으면 나도 모르게 울컥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시에 위로를 전해준다. 후렴구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평온한 선율과 음색 때문인지,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Every day there's a boy in the mirror
Asking me what are you doing here
Finding all my previous motives
Growing increasingly unclear
...
A song for someone who needs somewhere to long for
Homesick
Because I no longer know where home is
겨울 : Cayman Islands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Cayman Islands'라고 답할 수 있다. 어떤 노래를 듣는 순간, '이 노래는 내가 평생 찾아 듣겠구나'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 때가 있는데, 이 음악이 그랬다.
하지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어...', '음...'만 반복할 것 같은, 좋아하는 만큼 그 이유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곡이기도 하다. 설명하기 어려울 만도 하다.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나를 일관성 없이 이리저리 매번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놓기 때문이다.
보통 음악이 타임머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과거에 한창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인데, 'Cayman Islands'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난 추억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하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은 나에게 사색의 계절이 되었다. 겨울의 차가움과 따뜻함, 연말과 연초, 그리고 끝과 시작. 겨울이 가지고 오는 상반되고 모순된 의미 때문인지, 찬 바람이 불어올 때면 늘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그리고 그 사색에 정점을 이루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음악이다. 입김이 날 정도로 차가운 겨울바람, 하얀 눈꽃이 피어난 나뭇가지, 시린 손을 외투 주머니에 꼭꼭 숨기고 걸어가는 사람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바깥 풍경을 감상할 때. 겨울스러운 모든 것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노래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Cayman Islands'와 겨울.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누구든 깊은 사색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지난 과거가 되기도, 현재가 되기도, 앞으로의 미래가 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나'와 '나의 시간'을 되새기고 헤아리는 시간 자체가 참 소중하다.
* * *
이 밖에 다양한 Kings of Convenience의 음악과 함께
사계절을 만끽하고 각자의 마음속 안식처를 소중히 가꾸어 나가기를 바란다.
[임정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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