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o Die For [영화]

영화 <투 다이 포>, 구스 반 산트 감독, 1996년 작
글 입력 2022.01.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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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나오지 않으면 미국에선 알아주질 않아요. TV에 나와야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죠. 뭘 해도 아무도 안 봐주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사람들이 봐주면,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이 되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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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마레토는 미디어 업계 종사자를 꿈꾸는 젊고 유망한 여성이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TV와 유명인, 다큐멘터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길이 오직 그곳에 있다고 믿는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따라 신혼여행지를 결정하고, 그들이 언급한 요리를 저녁 만찬으로 내보이며 만족감을 얻는다.

 

목표 의식이 뚜렷한 만큼 그 실행력도 뛰어나다. 직접 지역 방송국에 찾아가 자신을 고용해달라고 어필하고, 여러 방송 기획안을 제출하며 방송 노출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자력으로 커리어를 개척해나가는 수잔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녀는 그런 여성이 되어가고 있다는 들뜬 감각에 취해 이미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이내는 지배당한다. 

 

대외적으로는 일도 사생활도 순조로워 보이지만 그녀의 삶은 비뚤어진 욕망과 불안감으로 점철돼있다. 화면에 비치는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성공에 대한 욕심에 짓눌려 주변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군다.

 

일례로 남편의 여동생이 코러스 단원으로 유명한 TV쇼에 살짝 등장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치자, 순식간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대화의 화제를 뺏어온다. 앞으로 WWEN 방송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밝히며 이전의 축하 분위기를 순식간에 자기중심으로 돌려버린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자신과 세상을 인식하는 그녀의 가치체계가 점점 왜곡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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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혼 생활에 대해, 더 정확히는 아이를 낳고 가정에 충실하기 바라는 남편에 대해 걷잡을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짚어드리는데, 그게 진짜 비극이에요. 전 항상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뭘 원하는지 알았거든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자신의 꿈에 그 어떤 보탬도 되지 않으면서 곁에 머물기만을 강요하는 남편을 비극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남편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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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은 자신을 옥죄는 갑갑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10대 펑크족들을 이용한다. <10대를 말하다>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출연에 동의한 세 명의 청소년(리디아, 제임스, 러셀)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며 원하는 것을 갈취한다.

 

수잔은 아이들의 결핍을 간파하고 그들이 듣고 싶은 말과 행동을 보여주며 호감을 얻는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방황하던 아이들은 수잔이 주는 "영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감각"에 빠져 무조건적인 순종을 나타낸다.

 

수잔은 리다아에겐 발찌와 향수, 옷 등을 선물하며 캘리포니아에 가게 되면 매니저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하고, 제임스에겐 목소리가 좋으니 스포츠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 거라 조언하며 잘못된 성관계를 가진다. 사랑과 관심이 고팠던 아이들은 수잔을 구원자처럼 여기게 되고, 그렇게 남편 래리를 살해해달라는 무리한 요구까지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총에 지문을 남기고, 바닥에 조개껍데기를 흘리고, 신발에 래리의 피를 남기는 등의 미숙한 수법으로 금방 목덜미를 잡힌다. 그에 수잔은 사실이 발각되기 무섭게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낸다.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면서, 법원은 '허름한 데서 자란 16살 먹은 루저들'이 아닌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단언하면서 아이들을 겁박하고 외면한다. 보호막 없는 청소년들은 그렇게 꼼짝없이 옥살이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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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남편 살해의 의문을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안 가 남편 가족들의 계획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시신은 빙하 속에 갇히게 된다.

 

수잔은 그토록 간절하게 열망했던 삶의 초입에서, 아무도 찾지 않을 차가운 얼음 속에 굳어 버린다.

 

 

[유여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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