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 사랑

치사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
글 입력 2021.12.3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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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고한 대로 첫 번째로 기다리고 있는 언어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도 변명 비슷한 것들을 먼저 늘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호기롭게 첫 번째로 배치한 단어가 왜 하필 ‘사랑’인지에 대해 말입니다.

 

사실 사랑에 대해 쓰는 것이 자신이 있어 그것으로 포문을 연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첫 단추를 사랑으로 꿰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꽤나 멋없는 속담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 떼려야 뗄 수 없고 서로 닮은 세 단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풀리지 않는 평생의 숙제일 것이라고 예상하는데요. 저 역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삶과 사람이 살아 숨 쉬는 언어의 정원에 사랑이 등장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지금도 모르지만 나중에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쓰게 될 이야기 같아서, 그럴 바에는 그냥 시원하게 나의 밑천을 드러내며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에 대해 쓴다는 것은 예방주사를 맞는 것과 비슷합니다. 쉽지 않을 것 같은 주제에 냅다 도전하여 따끔하게 정신을 차리고, 마냥 즐겁지 만은 않을 앞으로의 글쓰기에 앞서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왕이면 사랑을 맨 앞으로 이끌어오는 삶을 살고 싶다는 조그마한 욕심 때문입니다. 과거의 저는 사랑이란 단어의 사용을 기피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요. 조금은 진부한 이유겠지만 저 역시 그것은 다른 감정과는 차별화 되어야 하며, 자신을 다 내어주는 희생적인 태도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겨서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꾹 누르면 같은 말만 반복해서 외치는 자동응답인형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남발합니다. 더 알고 싶고, 더 잘 하고 싶은 마음, 더 많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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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다보면 언젠가는 더 나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씨앗을 심습니다.

 

 

언어의 정원

 

<언어의 정원>은 문화예술 작품에서 얻은 사유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여러 단어들의 의미를 저만의 언어로 재정립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각 문화예술작품이 지나간 자리에는 생각의 씨앗을 심습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조그마한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글의 말미에는 열매로 맺힐 것입니다. 혹 열매가 되지 않더라도, 메말라있던 땅에 생동하는 힘을 느끼게 해준 씨앗들에게 감사하며 계속해서 심어나갈 예정입니다.

 

 

 

치사함의 대척점을 찾아서



저는 종종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대서사시의 포문을 여는 것 마냥 거창한 척 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걸고, 꿈꾸는 듯 시선을 멀리 보내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못된) 버릇을 갖게 된 이유는 한 아티스트의 영향이 큽니다.

 

줏대가 없는 저는 누군가의 ‘인생영화’라든지 ‘인생의 한 줄’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자주 솔깃해지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방송에서 가수 아이유님이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의 명대사를 외며 인생의 한 줄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생, 왜 이렇게 치사할까?”라는 대사에 “사랑하지 않으니까 치사한 거지.”라고 답하는 대화 장면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배경음악으로 <백만 송이 장미>음악이 주욱 깔렸는데, 그녀는 그 순간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살면 ‘별나라도 가게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그동안의 많은 고민들에서 답을 찾게 되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이웃을 사랑하세요. 서로 양보하고 사랑하면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렸을 적 교회에 갔을 때나, 동생과 다툴 때면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이었으며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마치 ‘1+1=2’라는 참인 명제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이야기를 ‘인생의 한줄’이라며 환상의 세계를 거니는 듯 젖은 눈빛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눈빛에 설득 당해버린 걸까요.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면 갈 수 있는 별나라가 정말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이후로 저는 세상의 치사한 구석구석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뻔한 말이지만, 정말로 사랑밖에는 답이 없었어요. 사랑하면 치사하지 않을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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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설레는 기쁨만이 가득했다면 좋았겠지만, 사랑은 웃는 표정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치사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열심히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슬픔과 행복, 분노와 지리멸렬 등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모습의 사랑은 백지 앞에서의 막막함에 몸부림치는 누군가의 키보드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였고, 과거의 폭력적인 한 장면을 스크린에 재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저)이자 애도하는 작업이었으며 때로는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기 위한 광장의 뜨거운 외침이 되기도 했습니다. 달관하지 않고 도통하지 않으며, 자주 배고파하고, 배고파서 우는 일(최승자, 「올여름의 인생 공부)이었습니다.


이렇듯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기에 수시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힘차게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찜찜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오늘날의 사랑은 틈만 나면 연애라는 단어로 치환되곤 하니까요.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사랑을 여섯 가지로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앞으로 제가 문화예술작품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사랑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인생이 치사해지지 않기 위해 벌이는 모든 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별나라도 갈 수 있으리라 믿어보며, 꾸준히 이 이야기들을 하고 싶습니다.

 

 

 

형태가 없는 것



며칠 전에는 친구에게서 연락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연: 너 물 사랑해?

나: 갑자기 무슨 꿍꿍이야? (순화한 표현)

연: 아니…. 사랑한다고 해봐.

나: 물 사랑해. 없으면 죽지.

연: 그럼 적어도 너는 나를 70퍼센트는 사랑하는구나…! 내 몸은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거든…!


친구의 말 같지도 않은 답변에 짧은 한숨으로 끝맺은 대화에서, 저는 위협을 느꼈습니다. 이 하잘 것 없는 유머가 지나치게 흥미진진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주의 깊게 톺아보는 것. 이것은 글쓰기의 장점이자 (때로는)부작용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좌우간, 신체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물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사랑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예로부터 사랑과 물의 속성은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해왔는데요. 영어에서는 누군가에게 반했을 때 ‘Fall in love’이라며 ‘사랑에 빠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예상치 못한 순간에 흠뻑 젖어든다는 점에서 사랑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와도 닮았습니다.


사실 제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과 물, 이 두 가지를 함께 다루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르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 등장하는 사랑의 모양은 제가 그려본 그것과 가장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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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로 미국과 소련 사이의 우주경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입니다. 미국의 항구도시인 볼티모어에 살고 있던 일라이자라는 여성은 목 주변의 흉터로 인해 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말은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으로, 우주연구소에서 청소업무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일터에서 정체불명의 양서류 인간(크리처)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미 당국이 아마존에서 실험을 위해 생포해온 생명체였습니다.


일라이자는 어딘가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크리처에게 연민을 느끼고 소통해나갑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가 곧 해부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와 함께 탈출을 감행합니다.

 

영화는 크리처와 일라이자가 공격을 피해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고 입맞춤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물에 들어선 순간, 일라이자의 목 주변에 오래도록 새겨져 있던 흉터는 아가미로 변합니다. 일라이자에게 숨을 쉴 수 있었던 공간은 차별과 혐오가 팽배한 당시의 사회가 아닌 물이었던 것일까요. 물속에서 그 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사랑을 이어나갔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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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말미에는 오래된 시의 구절이 등장합니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I find you all around me.

내 곁에는 온통 그대 뿐.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It humbles my heart,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For you are everywhere...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The Shape Of Water. 영화의 제목은 물의 모양입니다. 물은 어느 잔에 담아도 그 잔의 모양 그대로 들어찹니다. 형태가 없죠. 영화의 부제는 ‘사랑의 모양’으로, 사랑은 곧 물과 등치됩니다. 사실 저는 이 부제는 없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영화는 물은 곧 사랑임을 있는 힘껏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앞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고 싶다는 호기로운 바람과는 모순되고 동떨어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사랑의 형태는 한가지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형태란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자리에는 사랑이 아닌 폭력이 들어섭니다. 사랑은 무정형이라는 사실을 전제조건에 둔다면 사랑이 담긴 모든 잔들을 존중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내 곁에는 온통 그대 뿐. 마지막 나레이션의 첫 번째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의 모양을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곁에 있다는 사실만을 감각할 뿐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게임 중에서는 '현미경 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상을 아주 높은 배율로 확대해서 보여주고 그것이 무엇인지 맞추는 게임입니다. 아무도 맞추지 못하면 조금씩 배율을 낮추는 식으로 게임은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너무 가까이 확대되어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모양인지 알 수 없지요.


사랑은 원경이 아닌 근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사랑에 참여한 사람들은 배율을 낮췄을 때 보이는 형태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목덜미 뒤에 있는 점, 따뜻한 다갈색 눈동자, 종아리에 길게 찢어진 흉터 등을 가까이서 세심하게 들여다볼 뿐입니다. 게임에서는 그것이 무슨 형태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랑은 게임이 아닙니다. 단지 가까이에 서서 그것의 면면을 관찰하고 존재를 감각하는 일입니다. 더 가까이서 보려고 노력하면서요.


생각해보면 점이나 눈동자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배율을 낮추고 낮춰 어떻게든 형태를 규정 지으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눈이 살짝만 더 나빠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가까이 다가올 테고 형태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정원사가 심은 씨앗]


사랑

 

알고 싶을 때는 잔속에 출렁이는 물을 바라보면 된다.

그것은 원경이 아닌 근거리에서 발생한다.

목덜미 뒤에 있는 점이나 따뜻한 다갈색 눈동자 등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일이다.

 

 


손잡고 하는 외줄타기



사랑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니 귀여운 저의 친구들은 각자가 느끼는 사랑을 정성스레 빚어서 툭하니 건네주었습니다. 역시나 대부분이 연애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별을 좀 해본 친구M은 말 한마디로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됐다가 말 한마디로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남이 되는 것이라고 했으며, 연애를 좀 해본 친구K는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분명 치사하지 않기 위해 벌이는 일이었는데, 종종 치사해지기도 하나 봅니다. 연애는 가끔 궤도를 이탈하는 경우가 있어서 열외로 쳐줘야한다고,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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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사랑을 관전할 때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들이 연상되곤 합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몇 분간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어떠한 과장도 편집도 없이 덤덤히 담아낸 영상을 다들 한번쯤은 스쳐가며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예술가는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 라는 작품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2010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인 모마(MoMA)의 회고전에서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 가까이를 의자에 앉아서 관람객의 눈을 마주하는 행위예술이었습니다. 유명한 해당 장면은 그녀가 22년 만에 연인이었던 올라이와 마주한 순간입니다. 마주 앉은 서로의 눈엔 슬픔과 당혹감을 넘어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일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보다도 인상적인 작품이 있었습니다. 죽음과 고통, 사랑과 이별 등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중에서도 <정지 에너지(Rest Energy)>는 사랑의 속성을 정확하게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화살이 놓여있고 활시위는 금방이라도 화살이 튕겨져 나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습니다. 둘 중 한명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화살은 상대방의 심장을 관통할 것입니다. 작품 속의 연인들은 서로가 잡고 있는 것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눈빛과 몸짓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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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둘은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둘 사이에는 활과 화살이 존재하니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은 비가시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확실한 사실의 영역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계속해서 서로를 믿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요. 사랑은 신뢰를 전제로 지속되는 것이지만 그것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믿음은 마치 팽팽한 활시위와도 같습니다. 각자가 쥔 것을 오래도록 놓지 않을 수 있을까요. 둘 중 하나가 놓거나, 혹은 삶의 장력에 못 이겨 균형을 잃고 서로가 함께 놓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한 명이 놓쳐도 다치는 쪽은 둘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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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함께 등장한 남성은 작가의 옛 연인이자 퍼포먼스 아트의 대부로 불리는 울라이(F. Ulay)입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만난 둘은 ‘다른 사람들(The Others)’이라는 그룹명으로 활동하면서 실험적인 공동 퍼포먼스들을 선보였고, 장기간의 연애를 끝내고 이 작품을 위해 몇 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이들은 이별하는 방법 또한 남달랐는데요.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들은 90일 동안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출발해 중간지점에서 악수와 포옹을 하고 각자의 길로 떠나는 퍼포먼스 <연인들(The Lovers)>(1988)을 통해 이별까지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정원사가 심은 씨앗]

 

사랑


외줄타기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균형감, 그리고 얼마간의 믿음.

사랑은 둘이서 손잡고 하는 외줄타기이다. 한명이 떨어지면 둘 다 떨어져니 주위 깊게 살피며 걸어야 한다.

 

 

*

 

전영록 선생님은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잉크자국을 넘어서 자판으로 새기고 말았네요. 분량 조절에 실패했지만 연필로 쓰지 않아서 이미 지우개로 지우기는 글렀고, 저는 하고 싶은 말이 훨씬 많이 남은 관계로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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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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