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 - 포르투갈의 높은 산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고,
글 입력 2021.12.12 19:3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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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며,



소설은 총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1904년 리스본에서 학예사의 조수로 일하는 토마스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1939년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인근 지역에서 사는 병리 학자 에우제비우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1981년 캐나다의 상원의원 피터다.

 

사는 시대도 사는 곳도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 토마스의 경우, - 토마스는 일주일 새에 아내와 아들과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토마스가 어릴 적 먼저 돌아가셨으니, 그에게 남은 가족은 부유한 숙부가 유일하다. 그 이후 토마스는 아내가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신에게 반항하기 위해 뒤로 걷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토마스는 자신이 일하던 박물관에서 율리시스라는 신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율리시스 신부는 노예들을 해방하고자 노예무역선이 지나는 앙골라에 자진해서 부임한다. 그러나 그 소망은 현실의 장벽 앞에 처참히 무너진다. 동료 신부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노예들마저도 율리우스 신부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천주교회에서도 쫓겨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결국 자신을 방 안에 가두고, 십자고상을 만든다.

 

일기를 모두 읽은 토마스는 고향 리스본을 떠나 율리시스 신부의 십자고상이 있다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 떠난다. 이때, 그의 숙부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혈육인 조카에게 자신의 자동차와 귀중품을 빌려준다.

   

◆ 에우제비우의 경우, - 2부 “집으로”에서는 부검하는 장면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된다. 평소 비위가 약한 나는 샅샅이 읽지 못했다. 이 글을 읽는 데에 참고하길 바란다.

 

아내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인근에 살던 에우제비우에게 두 명의 마리아가 찾아온다. 한 명은 그의 죽은 아내 “마리아”였으며, 한 명은 죽은 남편을 여행 가방에 넣어 온 노인 “마리아”이다.

 

에우제비우는 아내 마리아와 평소처럼 대화한다. 둘은 독실한 신자이자 추리 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팬이었으므로 둘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때, 마리아는 ‘성서’와 ‘추리 소설’이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며, 둘은 모두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덧붙인다. 예전처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가지 말라는 에우제비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 사라진다.

 

그리고 또 다른 마리아가 왔다. 새로운 마리아는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에게 자신의 남편이 어떻게 살았는지 밝혀달라고 말한다. 다소 특이한 질문에 에우제비우는 압도됐고, 본래의 부검 과정과는 반대로 신체의 말단부터 하나씩 분석해나간다.

   

◆ 피터의 경우, - 피터는 40년 동안 함께 산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있던 그는 동료들의 권유로 오클라호마로 휴가를 떠났다가, 우연히 영장류연구소에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랍도록 차분한 눈빛을 한 침팬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 침팬지를 어마어마한 가격에 충동적으로 사드린 이후 그에게 오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는 도심의 저택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오도와 함께 지낼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그의 부모님의 고향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인근으로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인간과 침팬지 그 차이에 대하여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라니. 우스운 질문이다. 둘을 직접 비교한다면, 그것은 얼굴도 더 길고 못생겼고, 팔은 길고 다리는 짧아서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혹은 인간보다 지적으로 수준이 낮고, 우매하다.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얀 마텔은 침팬지를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로 그려낸다.

 

침팬지는 각각의 이야기들에 한 번 이상 등장한다.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마스는 운전미숙으로 어린아이를 차로 치고, 아이는 결국 죽는다.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여,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들어간 교회에서 발견한다. 포르투갈의 전역을 떠돌며 그토록 찾아 헤맨. 율리우스 신부의 석고상을. 그러나, 그것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침팬지였기 때문이다.

 

2부에서 발끝부터 시작된 부검이 막바지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마리아 남편의 몸을 연 순간, 그곳에는 많은 물건과 침팬지가 들었으며,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그것이 주인공이 된다.

 

침팬지는 현실에 충실하다. 그것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눈앞에 닥쳐있는 것들을 헤쳐나가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다. 이러한 특성은 당연하게도 3부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피터와 오도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는 길에서 지대한 유대를 나눈다. 오도는 때때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내려와 밥을 먹었다. 일정이 늦어지므로 화가 나야 당연하겠지만, 피터는 침착하게 오도를 기다려준다.

 

그리고, 그들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다다르고, 오도는 좋아하는 바위가 생겼다. 여느 날처럼 오도는 그 바위 위로 올라가 어딘가를 빤히 보았고, 피터는 그런 그를 지키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오도가 피터에게 이리 오라는 듯이 손짓한다. 진정한 소통이었다. 그리고 피터가 도착한 곳에는 코뿔소가 있었다. 그리고 피터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뛴 나머지 오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오도는 피터를 뉘어놓고 슬퍼한다. 그리고 뒤를 몇 번 돌아보다가 다시 계속해서 나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시점에서 침팬지인 오도의 행동은 소름이 끼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은 언젠가 맞이해야 할 것이고, 자연의 순리이다.

 

즉, 얀 마텔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통해서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누구에게나 슬픈 경험이다. 그러나 그것에 매몰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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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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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가브리엘
    • 인간 모든이가  추구하며  살아가야 겠죠
      무지무지 힘들겠지만~~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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