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키워드 인터뷰] 이제야 마주 볼 수 있는 그리움 ‘바다의 얼굴들’ - 김목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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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상실 #바다 #용기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로 연필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김목요입니다. 최근 출간된 ‘바다의 얼굴들’을 쓰고 그렸어요.
연필로 그린 그림들이 정말 아름다워요. 그림 재료로 연필을 주로 사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그림을 전공하지 못했고 서른이 넘어 그림책 학교에서 처음 그림을 배웠어요. 그곳에서 여러 가지 그림 재료와 기법들에 대해 배웠는데 어느 시점에 가서는 제 마음에 가까운 재료를 선택해야 했어요. 저는 색연필도 수채화도 과슈도 좋아했지만, 그 어떤 것보다 연필이 저와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늘 조금 우울한 사람이었고 말보다는 생각이 많은 편인데, 연필이 사람이었다면 나의 이런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말이 없는 듯 말을 하는 재료라고요.
‘바다의 얼굴들'은 작가님의 첫 그림책이에요. 출간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책 학교 졸업 작품으로 완성한 더미 북을 몇몇 좋아하는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그중 한 곳이 엣눈북스였어요. 출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요.
그 이후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지 못한 채 홀로 그림을 쌓아나가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그렸던 그림들 주제가 바다였어요. 바다 연작이 열 장 정도 쌓였을 즈음 엣눈북스로부터 정식으로 출간 제의를 받게 되었죠. 그때부터 그림책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고요. 원래 글이 없는 일러스트북을 생각하며 그리던 그림들이었는데 편집자분이 그 그림들에 이야기를 붙여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일러스트북과 이야기 그림책은 비슷한 것 같지만 방향은 아예 다르잖아요. 이야기를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엣눈북스 편집자분이 저에게 바다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물으셨을 때, 제가 ‘바닷가에서 몇 년을 살다 다시 서울로 오게 되었는데 바다를 떠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바다를 그리워하게 됐다’는 답변을 한 적 있어요. 그때 편집자분이 제 안에 뭔가 이야기가 있다는 걸 느끼셨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글을 쓰는 경험은 처음이어서, 제 안에 있는 무엇을 꺼내고 수정하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처음에 제가 만든 이야기는 아무래도 날것 그대로였지만, 출판사와 여러 번 회의를 거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그림책을 완성했습니다.
Keyword 1. 상실
첫 번째 키워드가 ‘바다'일 줄 알았어요.
이 키워드를 빼놓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상실'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키워드니까요. 그림책 초반에 주인공은 계속 같은 꿈을 꿔요. 근본적인 이유가 자신이 살던 집에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예감 때문이거든요. 중요한 물건을 두고 온 것도 아닌데, 그저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느낌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태예요.
꿈이 왜 반복될까요?
주인공이 바다를 떠나옴으로써 잃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직시하는 것을 피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데도, 직감적으로 자꾸 생각이 나는 거죠.
바다와 관련된 상실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그림책과 거의 똑같은 의미에서 잃어버린 것, 그리운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와서 한편으론 작가님이 직접 겪으신 일인지도 궁금하더라고요.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5년 정도 살았던 경험과 상황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어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에서 살을 더하고 빼며 그림책을 완성했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해요. 독자분들이 이 그림책을 저에게 국한된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림책을 보면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되면서도 저는 저만의 경험도 떠올릴 수 있었어요.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의 적정한 선이 잘 지켜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다른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지나온 그때 그 시간이 그립나요?
그립죠.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때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다른 것 같아요. 그리워도, 돌아갈 수 없는 기억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요. 그 시간에 남아있는 그대로. 소중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부분도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떠올릴 때마다 슬퍼지더라도 말이죠.
그림책을 보면서 마음의 표면은 잔잔한데, 깊은 곳에서는 큰 감정이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대로 슬퍼하는 일은 힘든 일일 수밖에 없어요. 감정이 소진되니까요. 그래도 슬픔을 마주했을 때,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거나 잊어버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바라보고 싶어요.
그림책이 주는 감정이 저는 책 분량과도 연관이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보통 2~30쪽을 기준으로 하는 그림책보다는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한 중단편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림책의 전체적인 분량은 글을 쓴 만큼 맞춰 그린 그림대로 결정되었어요. 이야기 방향이 정해지고 나서부터는, 출판사와 회의하며 글과 그림의 구성을 중간중간 조율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대부분 제가 원하는 방향이 반영되었고, 그래서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만큼 글과 그림을 넣을 수 있었어요. 어쩌면 제 이야기가 가진 호흡이 이만큼의 물리적인 분량과 같은 거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어요. 이 그림책을 독자분들이 단숨에 읽는다면 왠지 서운할 것 같기도 해요.
Keyword 2. 바다
바다를 그리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해요.
바닷가에 살 때는 오히려 별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아름답고 좋다. 하지만 너무 깊고 넓어 무섭다.’ 이런 단순한 느낌뿐이었어요.
그런데 그곳을 떠나오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자주 떠올리게 되었어요. 계속 보고 싶어지고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단지 바다를 다시 보고 싶더라고요. 예전의 제가 아닌 지금의 저인 상태로요. 뜻 모를 감정에 이끌려 가보지 못한 새로운 바다를 찾아다녔어요. 주로 동해를 보러 갔죠.
작가님의 SNS에서 ‘파도를 내가 어떻게 종이 위에 담는다지?'라고 기록하신 문구를 봤어요. 바로 이해가 되지는 않아서 몇 번 반복해 읽었어요. 작가님 그림 속 바다는 부족함 없이, 아름답게만 느껴졌거든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잘 만족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다양한 바다의 모습을 더 잘 구현하고 싶은데 막히는 기분이 자주 들었거든요. ‘바다의 얼굴들'은 바다를 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기 위해서 애를 쓴 작품이에요.
저는 불안이 많은 편이라 평소에도 되도록 그림은 정적이고 평화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 이 그림책을 작업하다 보니 바다가 가진 다양한 얼굴을 그리게 되더라고요. 가령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도 있지만 태풍으로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도 있는 것처럼, 맑은 하늘도 있지만 먹구름이 잔뜩 낀 검은 하늘도 있는 것처럼요. 바다 하나하나를 그리고 소화하는 일이 저에게는 도전하는 시간이었어요. 작업이 끝나고 나니까 꼭 감당해야 했던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모습의 바다가 다양한 비율로, 다양한 색과 결로 그림책에 실려 있잖아요. 선택이나 배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움직이는 바다를 보면서 그림을 바로 그리는 건 힘들기 때문에, 우선은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며 바다를 많이 관찰했어요. 프레임 단위로 캡쳐해서 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바다 사진을 모아놓고 보기도 하면서, 여러 자료 중에서 이야기에 맞는 바다를 골라냈어요. 그림책에 어울리는 바다를 고민하고 연습하며 그리고 또 그렸어요.
그림책을 손에 드니까, 마치 내 손 안에 작은 바다 묶음을 간직한 기분이 들어요. 보통 그림책보다 작은 책에서 레이아웃이 변화하는 흐름이 단번에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판형이나 흐름을 어떻게 기획하셨는지 궁금해요.
처음엔 정사각형 판형으로 펼치면 길게 한 장이 완성되는 그림을 생각했었는데, 회의하며 기획 방향이 바뀌었어요. 판형이 바뀌면서, 그럼 누군가의 일기장을 넘겨보는 느낌을 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그래서 즉흥적으로 메모한 노트를 모은 콜라주 페이지를 비롯해 페이지 흐름에 자연스러운 변주를 주는 쪽으로 기획했죠. 컷의 크기와 위치 등을 다양하게 만들었어요. 페이지를 넘길 때 변화를 생각하는 동시에, 글과도 어울릴 수 있게 그림을 그렸어요.
아주 얇은 종이에 그려진 페이지를 두 군데서 발견했어요. 바다를 추억하다가 현재의 도시로 넘어오는 부분과 주인공이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이죠. 책의 물성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절묘했어요. 그림책은 독자가 손에 들고 직접 만지며 보는 매체라는 걸 다시금 깨닫기도 했고요.
얇은 종이를 중간에 넣는 아이디어는 출판사와 디자이너분들이 제안해 주셨어요. 간지로 잘 쓰이지 않는 종이를 디자이너분들이 골라주었고 두 군데 각각 주인공의 환경과 감정이 전환되는 장면에 넣었어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책은 아니지만, 내지 종이 종류를 살짝만 바꿔도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걸 저도 이번에 새롭게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가님께 바다는 어떤 존재인가요?
이 그림책을 만들기 전부터 바다를 보며 늘 그리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작게라도 꾸준히 그려왔던 것 같아요. 어떤 소재가 가진 다양한 모습을 구현하려면, 그릴 수 있어야 하잖아요. 바다가 저에게 그런 존재였어요. 그리고 싶고 그릴 수 있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무엇이요. 그림책 작업은 끝났지만, 바다에 관한 감정과 관심이 크게 변한 것 같진 않아요. 이 그림책과는 또 다른 바다를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Keyword 3. 용기
특히 언제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지시나요?
너무 많은 일에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가끔은 그저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해요.
공감해요. 저도 그럴 때가 종종 있어서 아예 침대 옆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어요. ‘가짜 기분' 이렇게요. 아침에 느끼는 기분은 가짜니까 그냥 일어나라는 의미로요.
그런데 이걸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누군가에게 이 얘길 했더니, 하고자 마음먹으면 그냥 하면 되지, 왜 못하냐 말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는데 조금 서러운 감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원래 잘 반박하지 않는 스타일임에도, 그때는 얘기해야했어요. “잘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의심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태도로 그림책을 만든다면, 그림책이 가진 목소리가 앞으로도 더 다양해질거예요.
그런데 어쩐지 주인공이 용기를 발휘한 결과는 작가님께서 아까 말씀하신 ‘그대로 슬퍼한다'는 결과와 다를 바 없어 보여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조금 덧붙여보자면 의지하던 누군가를 잃고 작은 바람에도 휘청이는 연약한 상태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 뒤늦은 작별인사를 건네기로 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을 거에요. 자신에게 새로운 바다를 만들어주려는 한 걸음이 주인공을 성장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표면적으로 변화한게 없어보일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의 인생에서는 모든 것이 변했을 수도 있죠. 다음에 작별인사를 건네야 할 때에는 도망치지 않고 다정하게 인사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생각해 보면 이 그림책을 작업하는 시간 전부가 매번 용기를 발휘하는 순간이었어요. 바다를 그리겠다고 결정한 일, 백지를 마주하는 일,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일. 그래도 그림을 그렸죠. 이렇게 용기를 내는 일을 연습하고 반복하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목요 작가
그림책 재료로 어떤 연필을 주로 사용하시나요?
미쯔비시 하이유니를 주로 사용하고 스케치할 때는 블랙윙을 쓰기도 해요.
그림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은요?
시작하는 장면과 끝나는 장면의 밤바다 그림이요. 저 혼자서는 두 장이 다른 그림이 아니라 이어지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늦은 밤 바닷가에 홀로 앉아 바라보던 고기잡이배의 불빛은 제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어요. 초점을 맞추고 바다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까지의 주인공의 여정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 같아요.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주로 걸으면서 저의 경험이나 감정, 생각에 대해 곱씹다가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해 둬요. 그리고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어 씁니다.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게 한다는 점이 좋은 점이기도 힘든 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너무 파고들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것의 비중을 잘 맞추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올해 안에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은 독립출판물을 만들어볼 계획이고요, 언젠가 졸업작품으로 그렸던 더미북 ‘내가 떨어질 때’를 좀 더 다듬어 세상에 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나에게 그림책이란?
고마운 존재예요. 아직도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을 처음 봤던 감동이 생생해요. 손을 뻗어 펼치면 풍부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곧장 눈앞에 펼쳐지고 언제든 보고 싶으면 다시 펼쳐볼 수 있죠. 제가 직접 페이지를 넘기고 바라보고 싶은 부분을 바라보고 싶은 만큼 제 속도로 볼 수 있어서 영화를 볼 때보다 더 깊이 와닿을 때가 있어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제 안에서 새로운 작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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