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남과 헤어짐

매일 이별하는 영어 선생님
글 입력 2024.03.1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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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남에도 커가는 변화가 보일 때면 가슴 한 켠이 몽글하다. 키가 한 뼘 자란 학생, 수염 한 올 난 학생, 여드름 꽃 핀 학생도 있다. 자신에게 사춘기가 왔으니 건들지 말라고 하거나 몸만 컸을 뿐 아직 애라며 자신을 애 취급해달라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을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마 모를 거다. 내 눈에 너희가 얼마나 예쁜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영어 개념이 많지만, 나는 품사와 문장 구조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 여긴다. 기본 개념이 탄탄해야 중등 과정이 흔들리지 않고 고등 때 심화 학습을 할 수 있기에.

 

“품사가 뭘까?”

 

“명사, 동사, 부사 이런 것요.”

 

“그래, 네 말처럼 품사의 ‘이런 것’이야, 품사의 종류들이지. 품사란 뭘까?”

 

“음....”

 

영어를 오래 배웠다던 학생들이, 좀 한다는 학생들이 품사 질문에 일동 침묵한다.

 

“먼저 이렇게 생각해 볼까? 우리 반 xx는 활발하고 발표하는 걸 좋아해. 베이비 시절부터 그랬다지? yy는 조용하고 항상 그림을 그려. 노트에 직접 그린 예쁜 그림이 가득해. zz는 손재주가 있고 뭐든 직접 만드는 걸 좋아해. (학생들이 웅성댄다. 네가? 진짜? 서로 물어본다) 이렇게 우리는 각 사람마다 가진 기질과 성격이 있어. 단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따로 놓고 보면 각자 기질과 성격이 있어. 이들의 공통점대로 묶은 것을 품사라고 해. 이 문장에서 tall과 kind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인지 꾸며주고 있네? 영어는 이런 단어들의 공통점을 묶어 형용사라고 불러.”

 

질의응답이 오가고 몇 가지 예문을 살펴본다.

 

“이제 문장 구조를 살펴볼까? 쉽게 말해 역할이야. 예를 들어, 나 혼자 있을 때는 Y인데 집에 가면 딸이 되고, 친구랑 있으면 친구가 되고, 학원에 있으면 선생님이 돼. 누구랑 있느냐,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내 역할이 달라지듯 단어도 마찬가지야. 방금 본 kind를 볼까? kind 혼자 있을 때는 품사로 구분해서 형용사였는데 You are kind 문장으로 들어간 순간 You를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이 역할을 주격보어라고 해.”

 

자연스레 2형식 문장을 복습하고 다음 형식으로 넘어간다.

 

“선생님, 그럼 3형식은 뭐예요?”


“3형식이 뭘까? 예습해온 것을 네 말로 한번 설명해 봐.”

 

“주어, 동사, 목적어가 있는 문장이요.”

 

“맞아, 그럼 주동목이 있는 예문을 만들어 줄래?”

 

학생이 예문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데 어려운 듯하다.

 

“I love you. 이런 게 주동목이야. I란 주체가 love를 하는 대상이 you.”

 

몇몇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I love you라 말해줬다. 문장 설명하는 척하며 진심 전달하기. 자신의 이름이 불린 한 학생이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생전 처음 사랑을 받아본 사람인 것 마냥. 내심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바라며 미어캣이 된 학생들이 많다. 어른이건 아이건 사랑이 고픈 건 매한가지.

 

다음 날부터 한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 사정으로 곧 학원을 그만둘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인사할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 헤어짐은 갑작스럽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매번 새롭다. 유일하게 선생님의 안부를 궁금해하던, 우리들의 블루스를 좋아하던 학생.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그 학생의 숙제창에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행복하렴.

 

학생들에게 정을 주면 떠나간다.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이 있음은 당연한 건데 헤어짐에 의연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저마다 이유가 있지만 내 탓으로 느껴지기도 한지라. 다르게 지도했으면 더 나았을까, 더 오래 볼 수 있었을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다 자신을 해하지 말라고. 동료 선생님이 말했다. 돌아보는 자세가 이미 좋은 선생님이라고. 학생들이 말했다. 학교 담임으로 와주면 안 되냐고. 모두 나더러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출석부에 못 보던 이름이 생겼다. 새로 왔다고 한다. 입학시험을 거쳐서 들어왔지만 나의 촉으로 다듬은 질문을 던져본다. 이 학생 갈 길이 멀다. 배울 것이 산더미다.

 

“앞으로 잘 해보자.”

 

악수를 청했다. 얼떨떨하게 내 손을 잡는 뉴페이스.

 

“손에 힘 좀 줘볼래. 더, 더, 더. 그렇지, 그렇게.”

 

입술을 앙 물고 내 손을 힘껏 잡는다.

 

“영어 때문에 누구도 너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오렴. 환영해.”

 

만남처럼 헤어짐이 불쑥 찾아올 수 있으니

 

매일을 가르친다

 

이별하듯 더 큰 사랑으로.


 


김윤 컬쳐리스트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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