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왜 '남성 창극'이었어야 했는가 - 창극 '살로메' [공연]

글 입력 2024.05.0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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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대학로에서 상연된 창극 <살로메>는 ‘한국 최초의 남성 창극’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웠으며, 이 공연에는 남성 창극 스타들이 총출동하며, 모든 회차가 매진되었다. 본 작품은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원작으로 하되, 극작을 맡은 고선웅이 결말을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바꾸어 욕망하던 모든 등장인물이 죽는 것으로 각색하였다. 결말을 제외하면 극 줄거리는 원작과 유사하기에 본고에서는 플롯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음악과 본 공연의 의의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남성 창극’이라는 단어는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여성 국극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여성 국극은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현재에도 간간이 공연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이 공연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지금 이 시기에 ‘남성 창극’이 필요한가? 그리고 ‘남성 창극’을 통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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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rko_salome 인스타그램

 

 

이 작품은 남자 배우가 여성을 맡는다. 즉, 배우의 몸은 남자이지만, 그의 신체 일부인 입을 통해 발화되는 것은 여성의 언어라는 것이다. 물론 본 공연을 살펴보면, 모든 인물이 상대 인물을 일방적으로 욕망하며, 젠더에 상관없이 ‘욕망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공연계에서 젠더벤딩(흔히 말하는 젠더프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이 작품이 시대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성 창극’이라는 존재적 당위성을 띠기 위해서는 단순히 남자 배우가 여성을 연기하는 것, 여장남자와 같은 모양새여서는 안 된다. 오페라의 바지 역할, 경극과 가부키에서 남자가 여성 역할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여성 역할을 남성이 연기함으로써 이 공연이 말하고자 했던 그로테스크한 미학을 완성했어야 했다. 그렇기에 본 공연에서는 무엇보다도 여성 역할을 맡은 배우의 책임감이 무거웠다.


이번 공연이 이러한 지점을 잘 보여주었는가에 있어서는 의문이 남는다. 한 명의 배우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한 명의 현존재로서 무대 위에 존재하고자 했으나, 다른 한 명의 배우는 마치 여장남자와 같은 제스처와 몸짓을 보였다. 이에 두 명의 배우 사이의 합(균형)이 맞지 않았으며, 이러한 통일되지 않은 연출로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점차 사라져갔다. 더불어 여성성이 부여된 역할의 경우 의상에 레이스, 시스루, 과한 어깨 퍼프 등을 사용해 배우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방해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남성 창극’이 의미를 가지려고 했다면, 모든 배우는 남자와 여장 남자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존재했어야 한다. “텍스트는 그대로이지만 배우의 젠더만 바뀐 상황에서 인물과 결합한 배우의 신체는 특수한 신체가 되고, 이 새로운 신체와 텍스트 사이의 관계에서 관객은 인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신체들이 서로를 일방적으로 욕망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면, 이러한 새로운 신체에서 오는 그로테스크함이 무엇보다 강조될 수 있었고, 원전과는 다른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음악은 이러한 서사적인 측면의 아쉬움을 보완하며 전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형성하여, 극의 전반적인 미감을 형성했다. 그러나 비슷한 멜로디의 반복, 전반적으로 지속되는 상청(높은음)으로 귀의 피로도가 높아져 갔다. 소리꾼마다 특화된 각각의 음역이 있는데, 이것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대개의 음악이 상청으로 구성되다 보니, 소리꾼 각자의 매력이 오히려 반감되었고, 가사 전달에 있어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상청의 사용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줄거리의 전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아쉬움은 있지만, 이 작품을 또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조명과 무대는 완성도 높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판소리를 듣다보면,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성악과 달리, 판소리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소리꾼의 소리가 어떨 때는 남성보다 강하고, 낮은음을 내기도 하는 한편, 남자 소리꾼의 소리가 여성의 목소리 보다 곱고 높을 때가 있다. 그렇기에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창극에서는 서양 음악극에서처럼 음역에 따라 배역이 나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창극은 어쩌면 젠더 벤딩에 있어 적절한 장르일지도, 또는 새로운 지점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였던 남성 창극 <살로메>가 보다 보완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한재은, 「크로스 젠더 공연의 효과 – 연극 <비평가>(2018)에 나타난 수행성을 중심으로-」, 『드라마 연구』 제66호, 한국드라마학회, 2022, p.161.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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