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영화는 사라질 언어인가? - 2024 전주국제영화제 ①

글 입력 2024.05.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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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1일 개막해 5월 10일 성황리에 행사를 끝마쳤다. 올해 개막작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9),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 등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새벽의 모든>이다. 폐막작은 카직 라드완스키 감독의 <맷과 마라>. 해당 영화에 출연한 배우 맷 존슨이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또 다른 영화 <블랙베리>의 감독이기도 하다는 점은 재미있는 우연이다.


2024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2)을 비롯한 두 편의 연출작과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도쿄 이야기>(1953), 그리고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를 상영작으로 선택했다. 이와 함께 특별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다시 보다: 25+50’ 섹션에서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 50주년을 기념해 <미망인>(1955), <피아골>(1955)을 비롯한 1950년대 한국 고전 영화와 더불어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2000) - <플란다스의 개>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었으며 <오! 수정>은 당해 개막작이었다 - 그리고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16) 등이 함께 상영되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을 통해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을 비롯한 다큐멘터리 5편이 상영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누구나 명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고 원인에 대한 해명과 구조 과정의 문제점이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침몰 10년, 제로썸>과 팽목항을 지키는 유가족들의 삶을 기록한 <남쪽 항구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앞서 4월 개봉한 <바람의 세월>과 3월 개봉한 <세월: 라이프 고즈 온>, 3개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묶은 옴니버스 프로젝트 <세 가지 안부>까지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희생자들의 억울함, 유가족들의 눈물, 그리고 책임자도 시스템도 없는 이 사회의 실체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들은 지난 10년의 기억을 반추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길을 찾자고 제안한다.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6편의 작품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거나 10주기를 맞아 소규모로 개봉한 영화들이다. 프로그래머 문석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상처를 같이 치유하며 밝은 내일을 이야기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며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의 의의를 밝혔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자유, 독립, 소통을 중시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비주류 작품이나 독립영화를 중점적으로 상영해온 바 있다. 올해 역시 고전과 현대, 신작과 구작 사이를 넘나들며 여러 편의 빛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올해의 주목할 만한 작품을 소개한다.

 

 

 

<룸 666>, Room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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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가 1982년 연출한 <룸 666>은 1시간이 채 안 되는 중편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벤더스가 할리우드에 진출한 뒤 찍은 영화 <해밋>의 칸 영화제 진출을 계기로 기획되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도시의 여름>(1971)으로 데뷔, 이듬해 페터 한트케의 동명 소설 <페널티킥을 맞이하는 골키퍼의 불안>(1972)을 영화화하고 ‘로드 무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시간의 흐름 속으로>(1976)를 통해 이미 칸 영화제 국제비평상을 수상한 바 있는 벤더스는 그토록 동경해 마지 않던 할리우드로 진출해 영화를 찍는다. 그러나 동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의 의견 차이로 오랫동안 제작되지 못하다가 1982년에야 비로소 완성된 필름 누아르 <해밋>은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디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벤더스는 영화 산업의 위기를 목도한다.


그래서 벤더스는 파리 공항에서 멀지 않은, 칸 영화제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마르티네즈 호텔의 666호로 16인의 감독을 초대해 질문한다. “영화는 곧 사라질 언어, 죽을 예술인가?” 질문지를 받은 동시대 감독들,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 장 뤽 고다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 로맹 구필, 베르너 헤어조크는 한 사람씩 방에 남겨져 질문에 답한다. 주어진 시간은 11분. 시간을 꽉 채워 답하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고다르), 짧게 생각을 전하고 카메라를 끄는 감독도 있고(파스빈더), “이런 질문에는 응당 신발부터 벗고 답해야 한다”며 맨발로 영화의 존립을 외치는 조크 넘치는(..) 감독도 있다(헤어조크).


감독들의 답변을 듣기에 앞서 우선 벤더스가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1980년대는 비디오 시장이 급성장을 이루던 시기로 VHS가 널리 보급되었다. VHS는 ‘비디오 홈 시스템(Video Home System)’의 줄임말로 집에서 영상을 녹화하고 재감상할 수 있는, 일종의 비디오테이프를 말한다. 때마침 VHS가 유행하던 시기 할리우드에 몸담고 있던 벤더스는 이러한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사회적 변화를 실시간으로 체험한다. 동경의 대상이던 할리우드에 입성해 만든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고 비디오 시장의 부상으로 영화 산업의 존폐가 논의되던 시기, 이중의 실패를 겪은 벤더스는 깊은 고민과 좌절에 빠진다. 그래서 벤더스는 카메라를 들고 동시대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칸의 길목에서 묻는다.

 

“Is cinema a language about to get lost, an art about to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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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은 몰락할 것이다, 라는 쪽으로 의견이 기우는 가운데 첫 번째 인터뷰이로 나선 장 뤽 고다르의 말은 유독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그가 제한 시간을 모두 채워 답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훗날 죽게 되는 것처럼 영화도 언젠가 죽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태평하고 침착해 보였기 때문이다. (연신 담배를 피워 더 그래 보였는지도······) 고다르는 “TV와 영화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가 성행하던 시기. 1980년대 영화 산업은 암흑계와 다름없었고 대중은 텔레비전과 비디오 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고다르는 상업 영화가 팽배하고 예술 영화의 자본과 수가 줄어가던 시기를 지나며 시네마의 몰락을 예고했던 것 같다. 어쩐지 그의 대답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다큐멘터리 <고다르 감독에게 묻다>를 떠올리게 한다. 심고우리 감독이 2002년 스위스에서 고다르를 인터뷰한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감독은 비슷한 말을 한다. 영화는 우리를 사유하게 하지만, TV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1973년 <엔디 워홀의 프랑켄슈타인>을 연출한 폴 모리세이 감독은 한층 단호하게 영화의 몰락을 예고한다. 영화는 곧 사라질 언어, 죽을 예술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점점 길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문학은 오랜 시간 소생되지 못하고 있고 시는 100년 전 고갈됐으며 연극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서 모리세이는 “영화가 죽어가는 이유는 문학계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 좋은 캐릭터는 살아남는다. 이제 영화는 더 이상 캐릭터를 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그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모리세이는 스스로가 “텔레비전을 선호한다”고 했는데 “텔레비전에는 사람이 ‘존재’하고 감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텔레비전 속 토크쇼, 시트콤, 코미디와 같은 프로그램에는 실제 사람들의 삶이 더 많이 묻어나며 감독의 개입(intrusion of the director)이 적다는 것이다. 모리세이는 “텔레비전도 언젠가 죽겠지만... 잘 모르겠다. (지금은) 비평가가 영화를 망쳤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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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티>의 프리미어 시사로 칸에 방문한 스필버그는 의견이 다르다. 그는 “영화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자신은 (아마도 이 산업에서 마지막으로 남았을) 낙관적인 사람”이라며 영화 산업이 계속 커질 것으로 본다. 그는 7년간의 격차를 두고 만들어진 <죠스>(1975)와 <이티>(1982)를 비교하면서 지속적인 – 그리고 필연적인 – 제작비의 상승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결국 “우리가 현재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최선의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스필버그가 영화 산업의 미래를 한없이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영화 산업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요컨대 스필버그는 영화 제작자나 프로듀서가 아닌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 즉 돈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영화 산업의 거물들이 - 많은 경우 - 잘못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모두가 만족할 만한 영화를 원하고 그것을 감독에게 요구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영화는 존재하지 않으므로(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 전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스필버그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원한다.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파벨만스>(2022)의 원제 ‘The Fabelmans’만 보더라도 그렇다. 자신을 ‘페이블 맨(Fable Man)’, 즉 우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빗댄 스필버그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이야기는 죽지 않을 터이니. 그는 영화가 ‘이야기’하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일말의 희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이 내게도 있다)

 

영화는 죽거나 계속되거나.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갈리는 가운데 앞으로 영화 산업에서의 성장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든지 오히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하나의 계기이자 동력이 되리라고 보는 감독도 있다. 몬테 헬만 감독은 “TV가 영화를 닮아가든, 영화가 TV를 닮아가든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 좋은 시기가 있고 나쁜 시기가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은 나쁜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지만.”이라고 말한다. VHS의 출현을 보고 미래의 영화 시장을 예견한 몇몇 감독의 예리한 통찰 역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한 감독은 “미래에는 집에서 터치 한 번으로 원하는 비디오를 마음껏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범람하는 현대의 미디어 시장을 아주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룸 999>, Room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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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999>에 출연한 빔 벤더스

 


빔 벤더스의 <룸 666>에 영감을 받아 2022년 <룸 999>라는 속편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루브나 플레이우스트가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의 설정은 40년 전 그것과 같다. 호텔 방에 동시대 감독들을 초대한 뒤 한 명씩 자유롭게 답하게 하는 것. 질문 역시 1982년 벤더스가 장 뤽 고다르, 스티븐 스필버그 등에게 던졌던 그것과 같다. “영화는 곧 사라질 언어, 죽을 예술인가?”(“Is cinema a language about to get lost, an art about to die?”)


<룸 666>이 1980년대 비디오 시장의 부흥에 맞서 ‘영화 vs. 텔레비전’이라는 평면적인 대립 구도에 초점을 맞췄다면, 2020년대 이르러 상황은 좀 더 복잡해졌다. 사람들은 전에 없이 미디어의 홍수에 쓸려 다니며 “집에서 터치 한 번으로 원하는 비디오를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고 숏폼, 릴스와 같은 몇 초 단위의 (극도로) 짧은 콘텐츠가 유행하게 되었다. 벤더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루브나 감독은 피에트로 마르첼로, 요아킴 트리에, 데이빗 크로넨버그, 제임스 그레이, 아스가르 파르하디, 알리체 로르바케르를 포함한 30명의 젊은 감독들에게 질문한다. 40년의 격차를 두고 있는 만큼 <룸 666>과 <룸 999>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 - “영화는 곧 사라질 언어, 죽을 예술인가?”는 1982년과 2022년의 감독들에게 사뭇 다른 전제로 다가간다. 이에 따라 두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 비록 질문은 같을지라도 – 감독들의 답변 양상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실감할 수 있다.


빔 벤더스는 <룸 666>에서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파리 공항에서 칸으로 가는 고속도로 인근의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촬영한다. <룸 999>에 이르러 이 나무는 병들어 잘려나간다. 이는 어쩐지 영화 산업의 몰락과 종말을 예고하는 하나의 메타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룸 666>과 <룸 999>는 40년 전 영화 산업의 위기를 감지한 감독들의 목소리와 오늘날의 그것이 얼마나 다른지 혹은 비슷한지 비교하고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전망할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뒤인 2060년대 영화 산업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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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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