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시들지 않는 생기를 쓰는 사람 [셀프 큐레이션]

글쓴이 박주은을 소개합니다
글 입력 2024.05.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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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주은은 국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으로 2023년 2월부터 아트인사이트의 28기 에디터가 되었으며, 현재 아트인사이트에 약 50편의 글을 게시한 컬쳐리스트이다.

 

글쓴이는 자신을 아마추어 작품 변호사라 칭한다. 새내기 시절 들었던 글쓰기 교수님의 “비평은 무언갈 변호하고 싶을 때 쓰는 글입니다.”라는 조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직업, 작품 변호사는 ‘불타오르듯 차오르는 마음’으로 비평을 쓰는 사람이다.

 

오피니언 [너의 지금에 ‘가비지 타임’은 없다]로 활동을 시작한 그의 초기 게시글들은 여러 작품에 관한 감상문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소재가 보인다.

 

그는 현재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생활을 즐기고 있으며, 낯선 나라에서 겪는 일상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예술 찬가


 

글쓴이는 영상, 공연, 전시예술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에 관한 여러 감상문을 작성했다. 그는 영상예술이 가지는 기록성과 공연예술이 끝난 후의 여운 그리고 감상의 휘발, 전시예술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정체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언급한다.

   

[영화는 순간의 필름에 수백만의 영원을 담아내는 예술이다. 사라지지 않고 신기하게도 계속 무언가가 축적되는 예술이다. …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기억되지 않는다. 영화관을 박차고 나와서 바깥을 볼 때의 풍경,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앉아있던 사람들의 면면, 관람 도중 먹었던 팝콘의 달콤 고소함과 나초의 바삭함, 그리고 내가 영화와 만났던 그 ‘시대.’ 영화의 화룡점정은 영화 바깥에 있다. 아니, 그 바깥의 것조차 영화다.] - 순간에 영혼을 붙잡아 영원하기: 영화 <바빌론>과 앞으로도 영원할 영화 속의 우리

 

[아빠는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무엇이든 이야기해도 괜찮아. 소피가 없는 아버지 대신 캠코더를 돌리며 영화 속의 회상을 계속한 건 어쩌면 이 ‘이야기’의 대체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역시 캘럼은 계속해서 소피를 사랑하고 있는 게 맞다. 햇볕이 내리쬐던 튀르키예의 바닷가는 더 이상 둘에게 있을 수 없지만, 아빠의 사랑은 남아서 소피에게 애프터썬처럼, 마치 계속해서 덧바르는 선크림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 사랑에 또 한 번의 기회를: 명곡 Under Pressure와 영화 애프터썬(aftersun, 2023)

 

[우리가 보존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답을 내렸다. 우리는 흔적을 찾는 것이다. 어딘가, 무언가, 누군가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흔적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말이다. 삶 속에서는 종종 나 자신에게 확신을 줄 무언가가 필요한데, 우리는 무언갈 보존함으로써 그걸 얻는 것 같다. 누군가 남겨놓은 흔적을 보고 내게 필요한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어도 좋아 - 연극 보존과학자: 보존은 있는 그대로를 남기는 것


 

 

지나간 시간의 이야기


 

다양한 소재와 방식을 찾기 시작한 중기부터 현재까지, 글쓴이의 글 목록에서 문화 전반과 공간에 관한 글을 자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사랑했던 작품들을 나누고, 과거를 회상하며 지나친 공간들에서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는 글쓴이를 지켜보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우리말 해석을 안다고 가사를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걸 최근 들어서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의 릴스에서 Halsey가 참여했던 노래 Eastside를 다시 마주쳤는데, 가사를 읽는 순간 그제야 툭 하고 다가오는 무거운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 빠르게 지나가는 부분이라 제대로 해석도 하지 않고 넘겼던, 중얼거림에 가까운 노래가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이런 식의 노래에서 나는 언제나 ‘과거의 어린 나’였지, 절대 ‘낡고 지쳐버린 어른’인 쪽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별로 자라지도 않은 내가 어른이 된 거다. 순간 헛헛해진 감정을 달랠 길이 없어 그 릴스를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다.] - '어린 왕자'들과 나: 몇 년 뒤에 돌아보면 다르게 보이는 노래들

 

[나는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시기에 입학한 ‘코로나 학번,’ 일명 ‘코학번’이다. 신입생 환영회, MT, 개강총회 뒤풀이, 축제 등등 신입생들이 으레 거쳐 갈 만한 행사를 단 하나도 경험하지 못한 채 2학년으로 올라가야만 했던 비운아들 중의 하나다. 자연스레 내 대학 생활은 어딘가 정체되어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가깝게 지내는 동기들도 거의 없었다. 수업이 전부 온라인이었는데, 어디서 친구를 사귈 수 있었겠는가? 사실은 아직도 대학 생활이 조금 낯선 것 같다.] - 축제를 기다리며: 축제를 기다리는 나, 나를 기다리는 축제

 

[사람들은 일자리, 문화생활, 대학, 편리한 생활의 영위를 위해 서울에 모여든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짜내고 또 짜내어 새로운 일자리, 문화, 대학생들, 사회 기반이 다져진다. 서울뿐만이 아닌 우리나라 전부의 노동력이 집약된 도시, 서울은 그렇기에 크림과 같이 묽은 드레싱이 될 수 없다. 서울의 매력은 아주 꾸덕한 그릭 요거트 같은 도시의 집약성이다. … 지난 몇 년간 부단히 노력했지만, 나는 상대적인 서울 사람이 되었을 뿐, 서울은 아직 나의 진정한 터전이 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반절이 넘게 고향 사람이고, 서울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아직 나와 섞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민등록증을 보아도, 동네를 탐방해도,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아도 뿌리를 내렸다는 감각이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나에게서 서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 귀퉁이에 찔끔 그릭 요거트가 올라간 채소를 씹은 기분이다.] - 도시, 서울: 그릭 요거트같은 도시

 

 

 

찰나의 연대감


 

가끔 사람과의 연대가 그리워질 때 읽으면 좋을 글들을 추천한다. 글쓴이에게는 찰나의 연대감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버릇이 있다. 타인이 느꼈던 연대감의 흥분이 나에게 전해질 때, 우리는 위로받는다.

   

[영화제는 영화 제작자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축제다. … 일반 관객으로 방문했을 때는 실감 나지 않았던 사실을 지프지기로 활동하면서 눈에 새겼다. 호텔의 영화제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대기하며 오늘 본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같은 팀 지프지기들, 영화의 거리를 걸으며 스쳐 지나갔던 다홍색 넥스트랩의 게스트들,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주쳤던 영화제의 관객들과 홀린 듯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걸었던 길거리 공연의 음악가들까지. 이 모든 사람이 모여 영화제라는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머리가 붕 뜨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사실 아직도 그 흥분이 식지 않은 것 같다.] -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는 것: 전주국제영화제와 지프지기로서의 나

 

[오랫동안 좋아해 온 노래의 후렴에 맞추어 신나게 슬램 원 중앙으로 뛰어가 깔깔 웃으며 사람들과 힘껏 부딪히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다시 원을 만드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신났다. … 한 번은 본격적인 슬램 전에 몇몇 사람들이 원을 따라 돌며 다른 관객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기도 했는데, 나도 슬쩍 껴서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했다. 처음 접해보는 문화가 마냥 즐겁고 흥분됐다. … 공연이 끝난 후, 퇴장하는 길에 옆에서 같이 나가는 사람들과 인사했다.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서로 끌어안으며 ‘덕분에 재미있었다’라고 말하고, ‘다음에 또 보자’라는 기약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친한 친구가 수백 명은 더 생긴, 굉장히 뜨겁고 묘한 기분이었다.] - 영블러드와 젊은 피 가족들 - YUNGBLUD live in Seoul: 영원히 지속될 찰나의 연대감

 

*

 

글쓴이로서의 박주은은 그 행보를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어느 날에는 우울한 현실에 슬퍼하고, 또 어느 날에는 따뜻한 햇살에 기뻐하는 감정의 변화가 그의 글에 고스란히 나타나는 탓이다. 소재와 글의 분위기가 들쭉날쭉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글쓴이의 글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가 끊임없이 무언갈 써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추어 작품 변호사는 계속해서 그의 주위를 둘러싼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고 있다. 예술을 찬미하고, 과거를 되새기며 주어진 공간에서 최대한 사유한다. 타인과의 연대에 냉담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집단 안으로 편입한다. 그는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사람이지만, 경험을 나누는 것에 절대 인색하지 않은 글쓴이다. 자신을 설레게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그의 글에서는 시들지 않는 생기가 보인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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