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린 왕자'들과 나 [음악]

몇 년 뒤에 돌아보면 다르게 보이는 노래들
글 입력 2023.06.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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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뽑히는 이야기다. 어릴 적에나 읽을 법한 이 동화가 성년이 지난 어른들 사이에서도 빛나는 이유는 뭘까? ‘나이가 들고 보면 다르게 보이는’ 이야기여서 그렇다.

 

어렸을 적엔 소꿉놀이 같은 그림에 가까웠던 빨간 장미, 여우, 그리고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나면 조금 더 깊은 책이 된다. 누군가를 길들이고 또 그에게 길드는 것의 어려움을 알게 된,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리는 까칠한 장미가 되어본 나에게 <어린 왕자>라는 소꿉놀이가 나의 거울로 다가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커가면서 좋아했던 것 중 <어린 왕자>들이 참 많았다. 한때는 아주 얄팍하게 좋아했던 모양들이 알고 보니 오랜 시간을 들여 빚어낸 도자기와 같은, 산을 깎아내는 바다와 같은 것들이었던 경우가 셀 수 없이 많다. 찰박찰박 둘러보던 어릴 때의 추억 어딘가, 갑자기 나를 끌어당기는 깊은 웅덩이 속으로 풍덩 빠지는 건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다. 문득 내 추억의 개울을 돌아봤다. 오랜만에 잊고 있던 시절로 돌아가 MP3를 꺼내 들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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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한 어린이와 체리필터


 

어렸을 때의 나는 흔히 말하는 ‘중2병,’ 다시 말해 사춘기가 조금 일찍 왔던 어린이였다. 아직도 진행형인 것만 같은 사춘기가 뭐 그리 일찍 왔는지,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주창했던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다. 당시의 나는 군중으로부터 자신을 어떻게든 독립시키고자 아등바등하는 아이였는데, 대부분의 ‘아등바등’은 MP3에 이어폰을 꽂고서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거였다. 지금까지도 미묘하게 큰 소리에 익숙한 것의 태반은 MP3의 덕이다.

 

특히 밴드 ‘체리필터’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가장 대중적인 명곡 ‘체리필터’부터 Head up, Fake, Dr. Faust같이 비교적 어두운 노래들까지 가리지 않고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 이야기다. 12살이 헤비락을 좋아했다니! 물론 체리필터는 지금도 사랑해 마지않는 밴드고 앞서 이야기한 노래들도 내가 자주 듣는 명곡들이지만, 가사를 펼쳐보면 ‘그땐 뭘 알고서 들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가 도살당한 희망폐기당한 꿈들(체리필터의 곡, 엑스트라 출동기의 가사)을 생각할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속이 깊어 이것저것 고민하는 어린이였을지도 모르겠다.

 

 

 

훌쩍 지나간 세월과 Halsey


 

중학교에 올라오고서부터는 팝 음악도 좋아하게 되었다. 한창 가수 Halsey의 음악을 매일 들었었는데, 그중 몇 곡은 아직도 내 여행 플레이리스트 안에 굳건히 남아있다. 영어도 잘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더듬더듬 블로그에 올라온 가사 해석을 보고, 시원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영어 사전을 뒤적였다. 가사를 딱 들었을 때 바로 해석이 떠오르는 게 그렇게 뿌듯했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가장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가 중학생 시절이다.

 

우리말 해석을 안다고 가사를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걸 최근 들어서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의 릴스에서 Halsey가 참여했던 노래 Eastside를 다시 마주쳤는데, 가사를 읽는 순간 그제야 툭 하고 다가오는 무거운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Seventeen and we got a dream to have a family,

a house and everything in between

And then, oh, suddenly we turned twenty-three

Now we got pressure for taking our life more seriously

We got our dead-end jobs and got bills to pay

Have old friends and know our enemies

 

빠르게 지나가는 부분이라 제대로 해석도 하지 않고 넘겼던, 중얼거림에 가까운 노래가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이런 식의 노래에서 나는 언제나 ‘과거의 어린 나’였지, 절대 ‘낡고 지쳐버린 어른’인 쪽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별로 자라지도 않은 내가 어른이 된 거다. 순간 헛헛해진 감정을 달랠 길이 없어 그 릴스를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다.

 

 

 

어리다고 기죽지 말아요


 

오랜 기억 속 노래들을 다시 꺼내어 보며 느낀 점은, 난 아직도 어리다는 것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 머리가 자란 지금의 나도 지금 듣는 음악의 가사와 감정을 전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듣기엔 너무 ‘성숙한 어른의’ 노래들이 아직도 이만큼 쌓여 있고, 또래라면 거의 다 경험한다고 할 만한 감정들도 스스로 100%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성숙해져도 내가 누리는 모든 문화와 예술의 맥락을 다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매번 내가 미숙한 감상자임을 깨닫고, 남의 감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얕고 어림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배우고 더 보고 더 듣지 못한 과거의 자신이 가끔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나만의 <어린 왕자>들을 만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에게 성큼 다가오는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감탄할 것이다. 짜릿한 감동이 식어갈 때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기억을 들춰내어 그들과 다시 마주할 것이다. 그렇게 매번, 매일, 매년 새로운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어른이 되고 싶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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