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축제를 기다리며 [공간]

축제를 기다리는 나, 나를 기다리는 축제
글 입력 2023.04.19 13: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전주국제영화제가 돌아오는 4월 27일부터 5월 6일, 총 10일간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일반 관람객으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 작년에 관람객으로 다녀온 이후 좋은 기회를 통해 올해는 자원봉사자인 “지프지기”로 참여하게 되었다.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지만, 이제는 영화제를 색다르게 즐길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축제를 기다리며, 내가 경험했던 축제들과 축제가 나에게 주는 힘을 상기해 보았다.

 

 

 

전주국제영화제


 

줄여서 ‘전국제’로도 불리는 이 영화제는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명망 있던 축제다. 전라도 출신인 덕에 지역상으로도 가깝고,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영화들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다는 점이 학생인 우리에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전주 영화의 거리’가 전주에 사는 젊은층이 자주 방문하는 번화가, 통칭 ‘객사’와 겹쳐 있는 데다 전주의 대표적 관광지인 한옥마을과도 도보 10분 정도로 아주 가까워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타지역으로의 이동이 쉽지 않았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전주국제영화제에 발을 들이지 못했었다.

 

5월 여름, 드디어 전주국제영화제에, 영화의 거리에 발을 디뎠던 순간을 기억한다. 버킷 리스트에만 올려뒀던 곳을 드디어 보았을 때의 감격이란! 눈으로 마주한 전주국제영화제는 생각보다 더 생동감 넘쳤다. 이웃 도시의 행사라고만 생각했던 영화제는 ‘국제’ 영화제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다양한 프로그램이 쉴 새 없이 진행되었고, 거리는 노란 영화 티켓을 쥐고 다음 상영관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전에 방문했던 객사와 분명 같은 거리인데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무언가 달랐다.

 

첫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의 설렘과 보고 난 후의 흥분이 거리에 가득했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리를 걸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식당으로 이동하며, 다음 상영관으로 이동하며 나는 끊임없이 친구들과 ‘오늘 봤던 영화’와 ‘이따 볼 영화’에 대해 떠들었고, 그 순간은 영화와 같이 빛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프지기 면접에서 내가 가장 처음 한 말은 “안녕하세요, 누군가에게 영화와 같은 기억을 선물하고자 지프지기에 지원한 박주은입니다.”였다.

 

 

전국제.jpg

2022년 5월, 전주 영화의 거리

 

 

 

대학 축제


 

나는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시기에 입학한 ‘코로나 학번,’ 일명 ‘코학번’이다. 신입생 환영회, MT, 개강총회 뒤풀이, 축제 등등 신입생들이 으레 거쳐 갈 만한 행사를 단 하나도 경험하지 못한 채 2학년으로 올라가야만 했던 비운아들 중의 하나다. 자연스레 내 대학 생활은 어딘가 정체되어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가깝게 지내는 동기들도 거의 없었다. 수업이 전부 온라인이었는데, 어디서 친구를 사귈 수 있었겠는가? 사실은 아직도 대학 생활이 조금 낯선 것 같다.

 

그랬던 나이기에 대학 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딘가 망설여지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축제라면 응당 함께 웃고 떠들 친구가 있어야 할 텐데, 나는 그게 없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태산이던 찰나, 다행히 마지막 날에 있을 행사의 입장을 학과별로 진행한다고 하여 ‘그래, 친구는 가서 사귀면 되겠지!’라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말이 비장한 마음가짐이지, 사실은 반쯤 포기하고 연예인 공연이나 즐기려는 심산이었다.

 

내 소원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행사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처음 보는 동기들이 낯설어 긴장했지만, 공연이 진행되어 행사의 분위기가 뜨거워질수록 점점 낯가림이 녹아내렸다. 드디어 대학생이라는 집단에, 우리 학과에 소속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부터 조금씩 쌓이던 소속감은 완전한 밤이 되어 학교 응원을 다 함께 제창했을 때 뚜렷해졌다.

 

수많은 사람이 학교의 이름을 연호하며 어깨동무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우리 학과의 자리가 계단석이었던 덕에 완벽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파도타기가 내 가슴에도 일렁임을 불러온 듯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어딘가 붕 뜬 느낌을 이기지 못해 지쳐있던 나에게 그날의 파도가 위안이 되었음은 아직도 단단히 기억하고 있다.

 

 

 

축제는 늘 다르게 즐거우니까


 

축제는 즐겁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그 일을 하고자 모인 공간이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온갖 사람들이 부딪히고 또 어우러지는 이 세상에서, 그 모든 지난한 과정들을 가장 즐겁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곧 축제 아닐까? 축제에서 즐긴 한순간의 즐거움들은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나에게 힘을 준다. 사람들은 아마 그 즐거움에 매료되어 계속해서 축제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축제는 언젠가 끝난다. 매해 같은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다음 해의 그 축제가 나에게 똑같은 즐거움을 가져다줄 리는 없다. 기억은 단발성이고, 짧은 순간의 기억은 시간을 벽을 넘어 내 머릿속에 남기 힘들다. 이 아름다운 시간이 다시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끔은 속이 텅 빈 듯 허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언제나 새로운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축제가 넘쳐흐른다. 똑같은 경험은 할 수 없겠지만, 색다르게 재미있는 경험을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기억도 언젠간 휘발되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겠지. 그러면 그때, 못 이긴 척 다른 축제로 발길을 옮기면 될 일이다.

 

 

[박주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