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영블러드와 젊은 피 가족들 - YUNGBLUD live in Seoul [공연]

영원히 지속될 찰나의 연대감
글 입력 2023.12.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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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를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가수의 노래를 6년간 들어왔다면 더더욱.

 

가수 YUNGBLUD(본명 Dominic Richard Harrison, 이하 영블러드)의 노래를 들은 지는 6년 정도가 됐다. Psychotic Kids(2018)라는 곡으로 시작해서 첫 정규 앨범인 [21st Century Liability], 이어 발매된 2020년의 [weird!], 최근에 발매된 [YUNGBLUD]. 닳을 정도로 돌려 듣던 노래도 있고, 딱 듣고 별로 끌리지 않아 슬쩍 재생목록에서 빼냈던 노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전곡이 내 플레이리스트에 안착한 것을 보니, 취향이 아닌 노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한 재생목록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가끔 각 노래들의 제목을 까먹곤 하는데, 영블러드 노래들은 대부분 그렇다. 샤워할 때, 화장실을 청소할 때, 운동할 때, 산책할 때 듣다 보면 노래는 곧잘 따라 불러도 제목을 재빨리 생각해 내기는 힘든 법이다. 콘서트에서 정신없이 떼창을 하면서도 머리 한쪽에서 제목을 계속 고민하던 이유다.

 

내가 사랑하던 밴드들의 수명은 짧다. 내 흥미가 식거나, 사건·사고가 터지거나, 혹은 가수 본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오래, 그리고 꾸준히 좋아한 가수가 몇 없다 보니, 다사다난한 내 플레이리스트 역사에서 영블러드는 제법 각별하다. 내한 공연 소식이 뜨자마자 예매를 준비하고,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감상을 적기 시작할 정도의 애정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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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믄피의 혈기


 

YUNGBLUD라는 활동명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소속사에서 가장 어린 그를 사람들이 ‘young blood(젊은 피)’라고 부르던 걸 변형해 가져온 것이라고들 하던데, 그 정보가 정확한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남에게 불리는 이름, 특히 예술가의 활동명은 본인이 어떻게 만들었는지보다 내가 그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술가의 이름부터 시작하여 쌓아 올리는 감상이 더 탄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남들의 감상을 읽을 때도 더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블러드를 생각할 때 항상 그 이름이 나에게 주었던 인상부터 떠올린다.

 

‘젊은 피(굳이 한국어로 만들어 보자면 ‘절믄피’ 정도로 번역될 것 같다)’라는 이름을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는 ‘혈기’다. 흔히들 젊은이의 패기 정도로 해석하는 혈기는 청춘의 성질을 뜻하는 멋진 말이기도 하지만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끌어올리는 섣부른 과격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을 생각나게 하는 이 단어가 영블러드의 음악과, 동시에 그 자신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영국에서도 young blood라는 단어를 비슷하게 사용하지 않을까? 평생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Cause my high hopes are getting low

Because these people are so old

The way they think about it all

If I tried, I would never know

 

왜냐면 내 기대가 낮아지고 있거든

이 인간들이 너무 늙어서 말이야

이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사고방식을

내가 노력한다 해도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

 


 

모든 노래는 정치적이다


 

영블러드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절망, 불만을 포착해 노래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칠고 사회 비판적인 록이 주를 이룬다. 청년과 청소년의 삶은 들여다보지 않는 정부를 비판한 데뷔곡 King Charles부터 타인의 불행을 바라며 손쉽게 남을 비난하는 이들을 풍자하는 최신곡 Hated까지, 영블러드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신랄히 비판해 왔다. 어떤 곡들은 노골적이고, 또 어떤 곡들은 은유적이다. 가끔 강한 정치성 때문에 듣기 버거운 곡들이 있지만, 끊임없이 사회를 관찰하고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영블러드의 날카로운 시선을 여전히 좋아한다.

 

정치적인 가수가 좋다. 약자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는 사람이 좋다. 정치를 비판한다는 건 그가 사회를 관찰하고 있다는 뜻이고, 사회를 관찰한다는 건 속한 집단에 애정을 가진다는 뜻이니까. 영블러드의 노래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때때론 대중이 거북해할 정도로 노골적이지만, 그렇기에 따듯하다. 그의 직설적인 비판과 투박한 응원엔 젊은 피를 향한 뜨거운 지지와 위로의 힘이 있다.

 

But I know I'll never be alone

하지만 난 절대 혼자가 아닐 걸 알아

It's alright, we'll survive

괜찮아, 우린 살아남을 거야

'Cause parents ain't always right

부모라고 항상 옳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무언가에 단단히 연결된 기분


 

거칠고 감정적인 음악은 라이브에서 가장 빛난다. 나와 노래만 공유하던 감정은 공간 속의 모든 사람이 함께 느끼는 정서가 되고, 그 순간 느껴지는 경험의 확장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콘서트에 한 번이라도 갔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콘서트장에서의 강렬한 감정은 쉽게 잊기 힘들다.

 

영블러드의 내한 공연, [YUNGBLUD live in Seoul]에서 느낀 감정도 그랬다. 오프닝 공연을 맡았던 제시 조 스타크(Jesse Jo Stark)의 열정적인 무대에서부터 신나게 끌어올려진 관객의 흥분감은 첫 곡인 21st Century Liability와 함께 말 그대로 분출됐다. 나 또한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날것의 함성이었다.

 

몇 년만의 스탠딩 관람이었던 탓에 뻣뻣하게 굳어있던 것도 잠시, ‘모싱 핏’을 연달아 외치는 가수에 뭣도 모른 채 어설프게 원을 만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찾아보니, 슬램 직전처럼 만들어진 원 안에서 사람들이 격한 춤을 추는 게 모싱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 구역에서는 모싱이 아니라 슬램을 했는데, 아마 나처럼 모싱이 무엇인지 모르는 관객이 많아서거나 몇몇 인터넷 반응처럼 좁은 공연장 상황을 걱정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슬램에 참여하는 것조차 처음이었기에 무엇이든 다 좋았다. 오랫동안 좋아해 온 노래의 후렴에 맞추어 신나게 슬램 원 중앙으로 뛰어가 깔깔 웃으며 사람들과 힘껏 부딪히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다시 원을 만드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신났다. 원을 만들려 뒤로 물러나는 과정에서 뒤로 넘어질 뻔했던 나를 빛의 속도로 잡아준 같은 관객분들에 감동도 받았다. 한 번은 본격적인 슬램 전에 몇몇 사람들이 원을 따라 돌며 다른 관객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기도 했는데, 나도 슬쩍 껴서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했다. 처음 접해보는 문화가 마냥 즐겁고 흥분됐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입꼬리가 실실 올라간다.

 

공연이 끝난 후, 퇴장하는 길에 옆에서 같이 나가는 사람들과 인사했다.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서로 끌어안으며 ‘덕분에 재미있었다’라고 말하고, ‘다음에 또 보자’라는 기약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친한 친구가 수백 명은 더 생긴, 굉장히 뜨겁고 묘한 기분이었다.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사랑을 해


 

그날 내가 느낀 모든 연대감은 아마, 우리가 ‘영블러드’의 아래 묶인 가족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연의 끝자락, Kill Somebody였다. 귀에 익은 기타 반주와 함께 영블러드가 말했다.

  

 

I cannot believe I found a fucking family in Korea. I could fucking cry now, mate.

내가 한국에서 가족을 만들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지금 울 수도 있을 것 같아.

 

Because I wrote this album when I was 18 years old, and I felt so lost.

I felt so irrelevant in this world.

난 이 앨범을 내가 18살일 때 썼고,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길을 잃은 기분이었거든.

이 세상은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았어.

 

I know a lot of you feel unimportant.

I know a lot of you feel silenced.

수많은 ‘네’가 스스로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걸 알아.

수만은 ‘네’가 억눌리고 있다 느끼는 걸 알아.

 

But I tell you fucking what.

근데 그거 알아?

 

In this family, in this community, in this fucking movement, you are loved, you are accepted, for your sexuality, your race, your identity, your (couldn’t hear him because of the noise).

이 가족, 이 공동체, 이 빌어먹을 운동 안에서, 네 성별, 네 인종, 네 정체성, 네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았음) 그 자체만으로 너는 사랑받고 있고, 받아들여지고 있어.

 

Fuck the rest of them! Fuck off!

나머지는 엿 먹으라고 해! 꺼져!

 

Love, love every day until you can't fucking love anymore.

사랑을 해, 매일매일 사랑을 외쳐서 네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까지.

 

This is what this community stands for.

그게 이 공동체가 지키는 가치야.

 

You are Yungblud, I am Yungblud, we are fucking Yungblud together.

너는 영블러드고, 나도 영블러드고, 우리 모두 함께 영블러드야.

 

출처: 트위터 @Zeading_n, 2023.10.30.

  

 

Kill Somebody의 후렴은 ‘All I wanna do is to kill somebody (누군갈 죽이고 싶은 게 내가 하고 싶은 전부야)’다. 여기서 죽이고 싶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이고, 이 곡이 [21st Century Liability], 즉 21세기의 골칫덩이의 수록곡이라는 점에서 그의 연설은 특별하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청소년이 만든 노래와 그 노래를 듣고 위로받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한 ‘가족’은 그 순간 그 무엇보다 강렬한 사랑이 되어 다가왔다.

   

공연이 끝나 공연장 바깥으로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나는 영블러드의 다음 공연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의 다음 내한 공연에 얼굴을 비칠 나의 ‘젊은 피 가족들’과, 그들과 함께할 또 다른 슬램과 떼창, 있는 힘껏 뛰어오르며 쏟아낼 영블러드의 젊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전까지는 올해의 기억으로 버텨야겠다. 마음껏 쏟아내어 기진맥진하게 될 때까지 사랑을 나누며, 추운 겨울을 지나야겠다.

 

 

 

[컬쳐리스트] 박주은.jpg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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