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들 답답할 땐 어떻게 하세요? (내공100)

글 입력 2024.05.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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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대로 일이 끌어지지 않거나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춤을 추겠다. 나의 경우는 일단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리고 검색창에 아무 말이나 적곤 한다. 키워드도 참 다양하다. '....' '뭐더라' '우라라라라라라' '어쩌라구' '안녕하세요' 등등. 그러다 보면 하나씩 얻어걸리는 게 있다.

 

어떤 때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손가락이 몸보다 먼저 나섰던 적도 있었다. '답답ㅎ....' 아 아니다, 커서를 옮겨 적었던 말을 슥슥 지운다. '속이 답답해요'. 아 이것도 아닌데. 이번엔 모든 글자를 지운다. '답'. 정말 정답 같은 연관검색어들이 주르르 뜬다. 그 사이 분명 정답이겠거니, 싶은 키워드를 눌러 속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를테면 ‘오늘’이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어본다. 그러자 부채처럼 펼쳐지는 연관검색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날씨, 오늘의 운세, 오늘의 미세먼지, 오늘 주식시장 등. 이렇게나 오늘을 궁금해하고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정말 미래를 점쳐보기라도 하는듯, [오늘의 운세]를 살포시 눌러본다.

 

 

오늘의 운세 : 타산지석


 기분 전환을 하기에 적당한 날. 여유가 있다면 근교로 바람을 쐬러 나가라

 

 

어라?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한 기분을 느끼기가 쉬운 요즘이었기에 자기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생겼을 수도 있단다. 이것 봐, 진짜 오늘 기분이 조금 울적했는데.... 틀린 게 없네! 운세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간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명쾌함을 넌지시 알려준 것이 고마워 나도 모르게 한 번쯤 속는 셈 치고 의지하게 된다. 운세는 친한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수다로써 마음을 풀고 따듯한 차 한잔으로 여유를 즐기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큼은 운세대로 흘러가 보고 싶어 오랜만에 부모님과 근교 절에 가서 고즈넉함을 가득 느끼고 돌아왔다.

 

절에는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아름답게 수놓아진 연등들을 하나씩 세어봤다. 족히 100개는 훌쩍 넘길 듯한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곳에 다녀갔다가 하나씩 마음의 짐을 덜고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비슷한 질문을 절에도 던졌다. 답답할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나 명확한 답 없이 석가모니 상은 옅은 미소로 나를 반길 뿐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결국 다시 돌고 돌아 책상에 앉았다. 내 고민은 내가 답을 내려야 하는 것 같았다. 취업과 진로. 그리고 미래. 바쁘게 꼬이는 머릿속 이야기가 바쁘게 손가락으로 움직였다. ‘하….’ 일단 한숨부터 시작해 본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한숨은 쉬지 말자. 커서를 슥슥 지우며 내쉬었던 한숨을 도로 삼킨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답답할 때 이것저것 검색하던 버릇처럼, 막 검색해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길을 잃는 경우도 있다. 정처 없이 인터넷상을 떠돌기를 5분가량 반복했을 무렵, 뭘 위한 검색인지, 어떤 말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나도 모르게 다시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린다. ‘뭐 검색하려 했지’를 치기 위해 ‘뭐’까지 쳤더니 이미 연관검색어에 관련 키워드들이 주루룩 뜨는 게 아니겠는가? 그곳에는 내가 검색하려고 했던 키워드 [뭐 검색하려 했지]도 있다. 없는 길마저 찾아주는 포털사이트가 꽤 마음에 들었다.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 곳에서 유일하게 길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답을 찾았다. [뭐 검색하려 했지]를 꾸욱 클릭했다.

 

어떤 네티즌이 네이버 지식인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Q. 검색하고 싶은 키워드가 있었는데 검색하려니 새까맣게 까먹어 찾지 못하고 있어요. 어떡하죠? 도와주세요.

 

 

같은 검색어를 치고 접속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네이버 ‘지식in’에 많이도 남아있었다. 심지어 10년 전 질문도 있다. 10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과거부터 지금까지, 검색창을 스쳐 지나간 여기 네티즌들은 도대체 어떤 걸 검색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 질문을 남겼을까, 싶다가도 그래, 지금 나도 그런 상황이지. 생각하게 된다. 분명 어떤 주제를 검색해 봐야겠다, 생각하고 키보드 앞에 우뚝 서니 빈 백지장처럼 죄다 까먹어버리는 것이다.


끄덕이며 스크롤을 내리자 비슷한 경험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질문에 답변을 남겼다.

 


A. 맞아요, 저도 그랬던 적 있어요. 그럴 땐 잠시 꼬리 물던 생각을 멈추고 천천히 복기해보세요. 그러면 금방 생각날 거예요.

 

 

그때 마침 취침 시간이 가까워졌다. 나 오늘 뭐했지? 하루 종일 검색만 하다가 끝났네. 오늘처럼 노트북 앞으로 출근해서 검색만 하다가 침대로 퇴근하는 날도 있다. 열심히 답과 길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인터넷상에서 정처 없이 길을 잃다가, 또 막다른 길로 들었다가의 반복일 뿐이다. 그럴 때면 지나간 시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천천히 복기해보면 내가 뭘 했는지 금세 떠오르겠지. 그냥 네티즌들처럼 고민하다가 까먹다가 답답했던 시간이 전부였던 거겠지. 다들 답답할 땐 어떻게 하세요? 누군가 내게 [분명히 틀리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지식인 답변자처럼 말해줬으면 좋겠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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