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글 기고 노하우
글 입력 2024.02.1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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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동시에 경외해야 할 일도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글 쓰는 일도 그렇다. 그 정도는 나도 쓰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반대로, 자신은 글 같은 건 절대 못 쓴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서운하다. 마찬가지로,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글 기고 노하우’라는 주제를 처음 제공받았을 때 내가 뭐라고 글을 기고하는 노하우씩이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의구심을 그대로 품고 있지만 그래도 쓰는 이유는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안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글 기고 노하우’라는 주제로 시작했지만 노하우라기보다는 그냥 글을 쓰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짜증과 절망과 포기와 자연스레 뒤따라올 리 없는 성공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며,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괴로움을 나도 함께하고 있음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신도 우리의 괴로움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사악한 욕심을 전하는 글이다.


덧붙여 이 글은 특히 아트인사이트의 기고 글, 그중에서도 문화콘텐츠 작품을 다루는 칼럼과 오피니언을 쓴 경험을 중심으로 함을 미리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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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글쓰기의 첫 단계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글감을 찾는 일이다. 아트인사이트의 기고 활동은 아무런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좋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로 어렵다. 마감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동안 내가 즐긴 문화생활, 또는 깊이 한 생각이 무엇이 있는지 곱씹는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아주 보잘것없기 때문에 이때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핸드폰 메모장, 노션 페이지, 노트북의 스티커 메모, 가방에 넣어 다니는 스케줄 노트, 책상 위의 필사 노트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메모를 살펴보며 또 곱씹는다. 그러면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둔 조각을 긁어모을 수 있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핸드폰 갤러리도 포함될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블로그다. 나는 블로그를 꽤 오래, 꽤 자주 이용해 왔다. 보는 사람을 위한 완성도 있는 콘텐츠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 자신을 위한 아카이빙으로서는 완벽하게 작동한다. 감상한 책과 영화, 노래를 중심으로 채워진 내 블로그는 의식의 흐름으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면 이해를 못 할 가능성이 높지만 나에게는 당시 내 생각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려주는 지도와 같다. 맥락이라고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 난장판을 읽고 있으면 지난 감상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기서 소재를 발굴했다면 글의 절반은 이미 완성된 셈이다.

 

 

 

75%



글감을 정했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무작위로 늘어놓는다. 기존의 메모에서 그대로 발췌해 오기도 하고 작품의 본문에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을 꺼내오기도 한다. 그렇게 툭툭 던져진 문장들이 모두 비슷한 색일 때는 편하다. 그대로 쓰면 된다.


그러나 문장들이 각기 다른 색을 가졌다면, 심지어는 서로 정반대의 빛깔을 가진-그러니까 상반된 결론으로 향하는-두 문장이 동시에 나온다면 좀 복잡해진다. 이런 경우에는 순서를 요리조리 뒤바꾸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글의 흐름이 잘 잡히면 알아서 주제가 나온다. 이는 진열과 전시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진열은 무색무취의 나열일 뿐이지만 전시에는 의도가 들어가 있다. 같은 문장들도 어떻게 전시하는지에 따라 전체 결과물이 달라지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진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토막 난 문장의 순서를 맞춰본다. 아무리 용을 써도 영 틀이 잡히지 않는다면, 할 말이 많은 주제만 추리고 나머지 문장은 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들어낸 문장은 그새 정이 들었기 때문에 바로 지우지는 못하고, 메모장에 다시 넣어둔다. 피난 가듯 떠난 문장들을 언젠가 다시 새로운 집에 입주시키리라 믿지만 실제로 그런 적은 별로 없다.


여기까지 했으면 글의 절반에 더해 절반의 절반까지 완성되었다.

 

 

 

90% 혹은 다시 50%



이제는 앞서 만들어진 흐름을 유지하며 부연 설명을 하듯 살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빈칸 채우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뒷받침할 예시나 비유를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동어반복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지만, 가끔 뜻은 같아도 표현은 다른 두 문장이 모두 맘에 든다면 그대로 넣기도 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흐름을 갈아엎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아예 이 글을 시작했던 소재 자체가 쓸모없어지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럴 때마다 원래 쓰려던 글을 완성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요즘은 시원하게 포기한다. 포기하고 곧장 새로운 글로 갈아탄다. 좋은 이야기는 작가가 아니라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며 직접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데, 문학뿐만 아니라 비문학에도 해당하는 말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내 계획과는 다르더라도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쓴다. 처음부터 다시 쓰면 시간이 두 배로 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엎어진 계획을 붙들고 늘어지다간 낭비하는 시간이 기약 없이 늘어난다.


소제목 또한 유용한 도구다. 소제목은 분위기를 환기하며 다용도로 쓰인다. 너무 긴 글을 쓸 때 읽는 사람에게 한 박자 쉴 시간을 줄 수도 있고, 여러 주제를 한 번에 다룰 때도 유용하다.


하지만 소제목을 남발하다가는 유기성이 떨어지는 글을 쓰게 된다. 어차피 소제목으로 연결하리란 생각에 다음 주제로 홀라당 넘어가 버린다거나, 소제목의 틀에 생각이 맞춰져 매번 비슷한 흐름의 글을 쓰게 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최근 내 글에서 그런 문제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아직 이 문제의 타개책은 찾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홀라당 넘어갈 것이다.

 

 

 

95%



마지막은 퇴고다. 퇴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고 나서 하루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글 안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괴상한 문장을 써놓고도 모를 때가 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아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이 이론이 문장에도 적용되는지, 괴상한 문장은 저마다의 이유로 괴상하다. 비문이라서 괴상하기도 하지만 논리 비약을 할 때도 있고, 극단적으로 논리를 따르더니 비상식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문장을 써놓았을 때도 있다. 나중에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글을 쓰고 있을 때는 그게 이상한 줄 절대 모른다.


그래서 글에서 빠져나올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넉넉하면 좋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딴짓은 자극적일수록 좋다. 그래야 내가 방금 쓴 글을 빨리 잊어버리니까.


또 눈으로 읽는 것보다 입으로 읽어야 무의식중에 뛰어넘는 구간이 생기지 않고, 과도하게 반복되는 단어나 어미를 골라내기 쉽다. 다만 구어와 문어가 분명 다르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말할 때 쉬어가는 구간을 모두 문자로 표현했다가는 쉼표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쉼표의 남용 또한 내 글의 문제점이다.


예상했겠지만 이것의 타개책 또한 모른다.

 

 

 

100%...?



퇴고를 끝내며 글도 완성되었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다. 완성된 글도 잊지 않고 읽어줘야 한다. 학창 시절에도 질리도록 들었을 말이지만, 필기를 아무리 기깔나게 해도 그 뒤로 다시 펼쳐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읽는 것.


오래전의 글을 읽고 있자면 흑역사를 읽는 것이라 스스로 고문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의 내 생각이나 글쓰기 습관을 알아볼 수 있다. 내 변화를 깨닫기도 하고, 의외로 한결같던 특징을 찾아내기도 한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생각의 가지를 더 뻗어나가거나 아예 새로운 나무를 키우기 시작한다. 이 과정까지가 정말 글의 완성도, 글 쓰는 사람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00%를 달성하지는 못하겠지만서도 계속해서 100%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0%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일이다.

 

 

 

김지수_아트인사이트컬쳐리스트.jpg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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