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로의 결핍을 보듬어주며 - 복서와 소년

상처와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어떻게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느냐가 중요하다.
글 입력 2021.12.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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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곽 허름한 요양원. 억울한 누명으로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어, 사회봉사 활동을 명 받은 고등학생 셔틀이 요양원 가장 안쪽 구석 독방에 페인트칠 봉사를 하러 온다. 독방에서 생활하는 이는 파킨슨 환자 행세를 하는 왕년의 복싱 세계 챔피언 붉은 사자. 서로의 존재가 불편하고 불쾌한 두 사람은 작은 일에도 사사건건 대립하며 날을 세운다. 어느 날, 붉은 사자가 복싱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셔틀은, 진짜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붉은 사자에게 복싱을 알려달라 부탁하고, 이에 붉은 사자는 셔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는데……

 

- 시놉시스
 

 

 

각자의 '인생'이라는 링 안으로 다시 한번


 

장례식장 바로 앞에 위치한 어느 한 요양원의 가장 구석진 끝 방에 머무는 할아버지와 한 고등학생 소년의 대면은, 귀에 거슬리는 소년의 욕설로 시작된다. 사다리를 지고 부서질 듯 문을 걷어차며 요란하게 등장하는 소년, 그런 소년의 등장과 동시에 멀쩡하던 팔 다리를 흔들며 파킨슨병인 척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지내는 동안 파킨슨 환자인 척 생활하고 있으며, 소년은 일명 학교의 ‘짱’이라 불리는 아이의 ‘셔틀’로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요양원 벽 페인트칠 봉사를 나온 셈이다.

 

소년은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줄 알고 첫 등장과 동시에 랩을 하며 할아버지를 조롱한다. 십 대 비행 청소년의 대표적인 모습처럼, 좋지 않아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좋아하는 누나에 대해 털어놓는 소년의 모습은 이전과는 상반되게 수줍기만 하다.

 

두 인물은 처음엔 서로의 존재를 불편해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로서 그 시대에 겪은 고립과 고독감이 고스란히 녹아있으며, 왕년에 ‘붉은 사자’라는 유명한 복서로 활동하며 겪은 좌절감 또한 남아있는 인물이다. 소년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학교에서는 ‘셔틀’이라는 조롱과 함께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는 학생이다.

 

지나온 시대도, 나이도, 환경도 너무 다른 둘이지만, 둘에게는 무언의 결핍과 마음 깊숙이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할아버지는 소년이 좋아하는 누나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며 용기를 심어주고, 소년은 할아버지가 옛 동료 ‘애꾸’를 만나러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순한 물리적 도움뿐만이 아닌, 서로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도전을 망설여하고 다시 고립 속에 스스로를 가두려 할 때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친구가 되어준다. 결국 외로움에 익숙했던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온기를 전하고, 따뜻한 연극 한 편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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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문제와 학교 폭력


 

이 연극은 재밌는 요소들과 무겁지 않은 연출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따라서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그럼에도 이 연극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이 연극이 우리에게 사회적 문제를 던져주면서,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계속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문제를 짚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한때 '붉은 사자'로서 큰 명성을 날리며 왕성한 사회적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사회에서 동떨어진 어두컴컴한 요양원 구석 방에서 남은 세월을 놓아버린 채 지내고 있었다. 이 부분은 사실 우리 현시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사례다.

 

공연을 보고 나서 노인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다가, 이전에 읽었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유품 정리사 김새별, 전애원 저자이며, 그들이 떠난 이들의 뒤를 정리하며 맞았던 상황들과 느낀 바를 솔직하게 드러낸 책이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고립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떠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어느 페이지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젊은 나이에 떠나는 경우도 많았지만,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노인분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경우, 이제 더는 세상에 자신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이른 포기와 좌절, 자식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방해될 것 같아서 선뜻 안부조차 건네지 못하고 결국 외로움으로 세상의 끝을 맞이한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기에 우리는 더욱더 잊지 않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오히려 노인 문제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여지는 무뎌진 인식이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소년'이라는 인물이 떠안은 학교 폭력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좀처럼 쉽게 잡히지 않는 심각한 문제다. 사실 이런 청소년들의 문제는 그들뿐만이 아닌, 그들의 문제를 한낱 '어쩔 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이 지닌 특성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어른들의 책임이 포함된 문제이기도 하다.

 

*

 

무겁게 풀어내지 않은 이 연극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할아버지와 소년의 모습을 보며 따뜻한 웃음을 짓게 한다. 극에서 그들이 서로의 문제와 결핍을 보듬었듯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되고 치유되기를 바라며, 희망을 품은 채 극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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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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