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착과 발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영화]

글 입력 2021.12.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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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아 기억되는 예술가와 작품은 간혹 타인의 어떤 집념과 집착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와 작가 존 말루프(John Maloof, 1981-)가 바로 그 예이다.

 

비비안 이야기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겨울, 존 말루프는 역사책을 쓰며 시카고 풍경 사진이 필요했던 찰나에 경매장 매물로 나온 필름 상자를 380불 가격을 주고 낙찰하게 된다. 주최 측에서는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매물이라고 했지만, 당시 비비안 마이어는 인터넷에 검색해도 찾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존 말루프는 적절하게 사용할 사진이 없어 필름 상자를 창고에 보관했다가 이후 다시 꺼내 정리하면서 스캔을 시작하게 된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던 존 말루프는 박스에 한가득 담긴 필름의 가치를 알아보고 SNS에 스캔한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고 존 말루프는 점점 비비안이라는 인물에 궁금증을 가지며 추적을 시작했다. 존 말루프는 비비안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었으나 2009년 그녀의 부고 글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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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의 경우 매우 이례적이지만 사후에도 이렇게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녀의 수집과 온전한 보관 때문이다. 또한, 존 말루프가 경매장에서 구한 매물을 별 볼일 없다고 다시 버렸다면 우리는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없었을 것이다.

 

존 말루프는 유품을 남길 가족이 없어서 버려질 예정이었다는 비비안의 물건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비비안이 남긴 유품에는 쿠폰, 메모, 버스표, 기차표, 모자, 의류, 현금화하지 않은 수천 불의 수표 등과 현상된 필름 10만장, 미 현상 컬러 필름 700롤, 미 현상 흑백 필름 약 2,000롤, 8mm, 16mm 영상 150편가량이 있었다.

 

특히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을 손에 얻게 된 존 말루프는 이를 정리하고 스캔을 시도하며 집착을 넘어선 그의 광기가 시작되었다. 먼저, 존 말루프가 발자취를 따라가는 인물 비비안은 기사를 위해 현장을 담아내는 기자나 사진작가가 아니라 유모, 간병인, 가정교사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사진과 영상에는 주로 길거리의 사람들과 풍경, 유모였던 비비안이 돌보던 아이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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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루프의 길고 긴 추적 과정에서 비비안을 거쳐 갔던 주변 인물들은 그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비비안을 설명해주었다.

 

비비안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1920년대에 유행했을 차림의 의상, 큰 코트와 군화 부츠, 특이한 걸음걸이, 모터 자전거와 목에 매고 다니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 한편으로는 정이 많은 사람, 사랑스럽고 밝은 사람, 모험적인 사람, 당시 사회적 상황도 잘 알던 사람.

 

반면에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 자신을 빈민층이라 생각해 보험도 들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는 사람,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 모두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뉴욕 태생인 사람, 어두운 면을 가진 사람.

 

이들이 설명하는 모든 수식어는 비비안이 더 입체적인 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비안과 관련한 다양한 일화 가운데 지내던 방 문에 자물쇠를 달고 아래층 천장이 내려앉을 만큼 문서와 신문을 쌓아 보관했다는 내용은 비비안이 남긴 사진을 비롯해 그녀가 얼마나 광적으로 수집에 집착했는지를 보여준다.

 

존 말루프와 비비안을 거쳐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비안에 대해 공통된 의문을 가진다. 세상에 보여주지 않을 사진들을 왜 그렇게 열심히 촬영했는지. 사진작가도 아니면서 비비안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이 많은 사진을 남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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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존 말루프에 의해 비비안의 사진들이 세상에 공개되고 전시가 이루어졌다. 비비안이 남긴 사진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그 속에는 인간 본성과 거리에 대한 비비안의 깊은 조예가 담겨 있었다. 그저 아마추어 예술가라고 하기에 비비안의 작품들은 꽤 괜찮았고 많은 사람의 흥미를 자극했다.

 

존 말루프의 초기 비비안 발굴과정에서 이를 처음 접했던 주류 예술계는 비비안의 작품을 전시장에 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뉴욕 갤러리를 포함해 LA, 영국, 독일, 덴마크 등 전시가 줄이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비안이 만약 살아있었다면 본인의 작업이 이렇게 공개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오고 갔다.

 

그러나 존 말루프의 집요한 추적 끝에 그의 행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증거를 찾게 된다. 그 증거는 바로 비비안이 프랑스어로 쓴 편지였다. 비비안은 생 쥴리앙(Saint-Julien-en-Champsaur)이라는 프랑스 알프스 쪽 작은 마을에 잠시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동네 사진관에서 일하던 사이먼에게 쓴 편지에는 자신이 뉴욕에서 촬영한 꽤 괜찮은 사진들이 많으니 이를 인화해 작품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비비안은 자신이 좋은 사진작가임을 알고 있었고, 또 자신의 작업물이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의지 또한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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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ian Maier Self-Portraits〉

 

 

시대를 가감 없이 포착하고 보관하는 것에 집착한 비비안과 우연한 발견을 시작으로 집요한 발굴 끝에 비비안을 예술가로 만들고 싶었던 존 말루프의 이야기는 잊혀질 권리와 기록될 권리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한 인물의 허락 없이 소유물을 작품화시켜 세상에 알린 점이나 이를 통해 따라오는 수익이나 저작권 문제는 분명 고찰해볼 만한 문제이다. 그러나 땅속에 파묻혀 있다가 발굴된 물건들도 예술적인 가치의 잣대 속에서 판단되고 역사에 기록되는 것처럼 묻힐 뻔한 좋은 작품들을 공론화시킨 한 사람의 선택과 결정은 충분히 가치와 의미를 지닌 일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은 나를 어필해야 살아남는 시대에 가깝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매번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며 어느 분야이든 본인을 브랜드화하기 바쁘다. 멋진 작업을 사진으로 남겼지만, 생전에 자신과 작품을 세상에 알리지 못했던 비비안과 예술을 향한 집념으로 그저 유모의 인생을 살아간 한 인물을 예술가의 위치로 옮겨준 존 말루프. 영화 "비비안을 찾아서"와 비비안, 존 말루프의 개인사를 통해 역사와 예술을 위한 보존과 보관, 포착과 발굴의 과정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진출처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 웹사이트

비비안 마이어 웹사이트

 

 

[손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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