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겨울 드라마 : 피노키오 [드라마]

글 입력 2021.11.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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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매우 즐겨 보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드라마가 주는 다양한 느낌을 좋아한다. 설레거나 감동하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주인공에 감정 이입해 한껏 몰입하여 다양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보고 어떠한 깊은 깨달음을 느낀 적은 드물었다. <피노키오>를 만나기 전까지는.

 

<피노키오>는 종영한 지 6년이 다 되어가지만, 매년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생각나고 찾게 되는 드라마이다. 소위 말하는 인생 드라마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드라마는 여전히 나의 드라마 순위에서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피노키오>는 희로애락은 물론이고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보는 이들과 함께 이 선물을 나누고 싶다.

 

 

*

해당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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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면 어느 쪽으로든 몸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코가 길어진다는 동화 속 피노키오 이야기, 만약 이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 <피노키오>는 이 흥미로운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드라마 속 세계관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자율 신경계 이상으로 딸국질 증세를 보이는 피노키오 증후군이 존재하는데, 치료가 불가능하고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난다는 이유로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피노키오>는 이러한 피노키오 증후군이 있거나 이에 얽힌 사람이 방송 기자가 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애청자였다면 알겠지만, 박혜련 작가는 매 회차마다 감탄이 나오는 대사와 장면들을 만들어 내기로 유명하다. <피노키오>도 그렇다. 명대사와 명장면이 매우 많은데, 드라마가 끝나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휘발성이 아니고 두고두고 남아서 생각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큰 특징이다. 특히, 나는 <피노키오>를 통해 '말의 무게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더 나아가 언론의 역할과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내가 그 때의 그 장면, 그 대사, 그 인물의 표정, 그 상황을 잊지 못해 다시 보기 위해 몇번이고 정주행을 하게 만든 <피노키오>의 명장면을 살펴보자.

 

 

 

그걸 왜 제가 증명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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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문이란 걸 증명할 수 있냐?"

"그걸 왜 제가 증명해야 합니까?"

"네가 증명해야지. 네가 소문의 당사자니까."

...

"전 지금 여기를 나가면 선생님과 여기 윤 선생님이 바람이 났다고 내가 직접 눈으로 봤다고 소문을 낼 겁니다. 어디 한번 사실이 아니란 걸 증명해 보시죠. 소문의 당사자이시잖아요. 그걸 못하면 선생님도 반성문, 아니 사직서를 쓰셔야 할 겁니다."

 

 

TV 퀴즈 프로그램에 출전할 한 명의 학생을 뽑기 위해 진행된 학교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하명(이종석). 그런 그가 전교 꼴찌였다는 이유로 커닝을 했거나 시험지를 훔쳤다는 소문이 퍼지는데, 선생님 역시 소문을 믿어 달포의 출전 자격을 박탈하고 그에게 반성문을 쓰라며 강요하는 장면이다.

  

학생들은 증거 없는 악의적인 소문에 신이 나서 떠들기 바쁜데, 종국에 그들은 하명이 사이코패스이고 그의 아버지는 전과자라는 인신공격과 가족을 비난하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말간 얼굴을 한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언어폭력은 어른들의 그것보다 더 공포로 다가온다.

 

극 중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다를 것 없이 너무나도 쉽게 소문이 사실이라 판단하고, 무논리를 펼치며 헛소문이라면 증명해내길 강요한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어린 시절 하명의 아버지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누명을 썼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기자는 아버지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하명과 형인 재명(윤균상)의 해명에 "증명할 수 있어요, 헛소문이란 거?"하며 물었고, 이에 대해 재명은 "그걸 왜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데."라고 울부짖으며 답했다.

 

"증명할 수 있어요, 헛소문이란 거?", "헛소문이란 걸 증명할 수 있겠냐?" <피노키오>는 이 질문에 대해 두 사람의 입을 통해 대답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뜻을 전한다. 작가는 그 증명을 왜 소문의 피해자가 해야 하냐고 역으로 묻는 듯하다.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과 제대로 된 사실 확인 조차 하지 않은채 주목 받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만 보도하는 기자는 따로 있는데, 그들은 오히려 그 책임을 소문의 당사자에게 떠넘긴다. 소문의 당사자이면 헛소문임을 증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인가. 그 의무는 대체 누가 지어주는 것인가. 감히 누가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놀랍게도 이 많은 생각을 드라마 첫 회를 보고 나서 하게 되었다. 최근에 이렇게 건설적인 생각과 고민을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피노키오>는 나를 깨어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만큼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는 무겁지만, 하루에 넘치도록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임은 분명하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죠. 그걸 모른 게 그들의 잘못입니다.


 

 

 

<피노키오>의 명장면 중에 빠질 수 없는 장면으로, 방송국 기자 토론 면접에서 과거 잘못된 언론보도와 피노키오 증후군 목격자의 증언 때문에 가족을 잃게 된 자신의 이야기가 주제로 나오자 하명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낸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운이 나쁜 사고.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하고, 그 피해자는 여전히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은 저렇게 짧고 무서운 결론을 내려 버린다. 드라마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적은 없었나. 타인의 비극에 대해 성급히 단정 짓거나 그들의 고통을 쉽고 가볍게 여긴 적이 없었던가. 자신 있게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또 반성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피노키오 증후군이 있는 사람의 말을 신뢰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로 다 탄로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오류가 있다. 그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말할 뿐이다. '사실'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명백히 다르고, 그렇기에 내가 아는 사실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기 말이 다른 사람보다 무섭다는 걸 알았어야 합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무시하고 떠드는 사람이 기자가 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자기 말의 무게를 모른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어요." 말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거워야 한다. 특히 기자는 시국에 관한 보도와 논평을 해 세상에 알리는 사람으로서, 그 무게가 더 무거워야 함을 대사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나는 기자뿐 아니라 누구나 자기 입을 통해 나온 말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디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사람이 평생 뱉은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주 어딘가에 놓인 별에 차곡차곡 쌓인다. 언젠가 그 말을 뱉은 이의 숨이 다하는 날, 자. 이게 네 삶을 수식하던 말들이야. 보여주려고.'

 

 

 

보고 싶은 뉴스는 아니지만 봐야 할 뉴스입니다.


 

 

 

내가 <피노키오>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으로, 보던 당시 어떻게 이런 대사를 생각해 냈을까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장면만 보아도 <피노키오>는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시간을 앞지른 느낌이 든다.

 

올림픽 중계 소식과 공장 화재 사건, 이 두 가지 뉴스 중에 사람들은 어떤 뉴스를 더 보고 싶어 할까.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올림픽은 4년마다 개최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스포츠 축제여서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반면에 화재 사건은 무겁고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인하(박신혜)는 말한다. "보고 싶은 뉴스는 아니지만, 봐야 할 뉴스입니다."

 

보고 싶은 뉴스와 봐야 할 뉴스. 사실 나는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서 보는 편에 속했다. 정치, 사회 분야보다는 보기에 편하고 흥미로운 연예, 스포츠 분야의 뉴스를 더 자주 즐겨 보았다. 인하의 말은 이렇게 뉴스를 편식하는 나에게 경종을 울렸다. 기실, 봐야 할 뉴스는 대부분 정치, 사회면에 분포해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보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거나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때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었다.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뉴스를 무시하고 봐야 할 뉴스를 전하는 것은 기자가 아니라 선생이라는 송차옥(진경) 기자의 말을 듣고, 하명과 그의 선배가 나누는 대화도 인상 깊다. 하명이 겪은 비극 직후 세상의 분노는 너무 뜨거워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새로운 뉴스가 등장하면서 그 분노는 점점 사라져갔고 진짜 책임자가 등장했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소식은 더 이상 사람들이 보고싶어 하는 뉴스가 아니었으므로.

  

나 역시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초반에만 집중하고 후속 기사보다는 새로운 기사만 보던 적이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에 너무 빠르게 분노했다가 빠르게 식어버리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쯤에는 너무 쉽게 진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피노키오>를 통해 보고 싶은 뉴스와 봐야 할 뉴스 중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

   

 

"좋은 소식 하나, 나쁜 소식 하나 있는데 뭐부터 들으실래요?"

"이왕이면 좋은 소식부터."

"문화부 선배가 무슨 콘서트 표를 전해 달라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류스타 총출동 티켓이랍니다."

"와우 대박. 나 지금 뭘 해도 되는 때인가 봐. 나쁜 소식은?"

"선배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선배 췌장암이랍니다."

"뭐, 내가? 너 그거 알자마자 얘기했어야지."

"왜요. 췌장암 뉴스가 보고 싶은 뉴스는 아니잖아요. 

보고 싶은 뉴스는 콘서트 쪽 뉴스 아닌가요? 그럼 그게 먼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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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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