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은 그대에게 : Eric Satie [음악]

글 입력 2021.11.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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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나 클래식 음악 좋아하네.

  

 

클래식 음악은 진입장벽이 높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어렸을 때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도 피아노 연주는 재밌었지만, 클래식 음악에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평범한 내 나이 또래처럼 유행하는 대중음악을 즐겨 들었고, 은연중 클래식은 학문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즐겨 듣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하면, 모름지기 그 시대와 음악가, 명곡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우습게도 나는 어떤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어려웠고 때로는 지루했으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곤 했다. 그때의 나는 음악을 귀와 마음으로 듣기보다 머리로 이해하고 공부하려고만 했었는데, 에릭 사티의 음악이 그 수면 아래에서 나를 끌어 올렸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쇼팽, 슈베르트만 알던 나의 최애 클래식 작곡가는 에릭 사티가 되고 클래식 음악을 K-POP만큼 즐겨 듣게 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그의 음악을 듣는 누구든 이렇게 느낄 수 있다. 몰랐는데, 나 클래식 음악 좋아하네.

 

 

 

Eric Alfred Leslie Satie (1866 ~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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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어서 왔다."

 

프랑스 근대의 작곡가 에릭 사티는 생전에 자신의 음악이 어떠한 시선을 받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카데미즘과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고 고정관념과 허식에서 벗어나 당대의 전통에 반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악을 추구했다. 그래서 사티의 음악은 반복, 나란히 이어지는 선율,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이 특징인데, 당시 대중과 평론가들은 이러한 그의 음악이 익숙하지 않고 비주류라는 이유로 외면하며 그를 이상한 괴짜로 평가했다.

 

천재는 항상 시대를 앞서간다는 말처럼, 19세기 후반에는 인정받지 못하던 그의 음악은 20세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사티의 음악은 CF,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 삽입되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릭 사티의 음악은 동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되어서, 처음 듣는 순간 그가 남긴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1880년대에 창조되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 우리의 정서와 매우 잘 어울린다. 그가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곡 스타일을 고수했기에 당시에 혹평받았지만, 또 그랬기에 21세기인 지금 우리가 그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고 이는 큰 행복과 축복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에릭 사티와 그의 음악을 만나보자.

 

 

 

Gymnopedie No. 1


 

에릭 사티의 음악 중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곡으로, 나도 이 곡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총 세 편의 피아노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제1번이 가장 사랑받고 있고 개인적으로 하루에 한 번은 들을 정도로 좋아하는 곡이다. 다양한 곳에서 OST로 쓰인 적이 있어서 듣자마자 '아,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제1번은 느리고 비통하게, 제2번은 느리고 슬프게, 제3번은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세 작품 모두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이 있고 독창적이다. 에릭 사티가 군 생활 중 읽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와 라투르의 시 오래된 것들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음악 중 이 곡이 가장 좋은 이유는 재미와 흥미로움에 있다. 먼저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 청년들이 나체 상태로 합창과 군무를 통해 신을 찬양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제목과 느리고 비통하게라는 연주법은 묘하게 상충하는 느낌을 준다. 사티는 왜 축제를 뜻하는 짐노페디와 비통하고 슬픈 연주의 곡을 붙인 것일까. 짐노페디를 감상하면서 그의 의도를 상상해보고 추측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이다.

 

짐노페디는 감상자의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들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어떤 때는 매우 평화롭고 포근하게 들려서 드넓고 푸른 초원에 누워 있거나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사색에 잠기는 상상을 하게 된다.

 

반면에 다른 때는 무서울 정도로 깊고 캄캄한 바다에서 외롭고 쓸쓸한 기분에 취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새롭고, 그날의 기분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이처럼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그의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

 

 

 

Je te veux (당신을 원해요)



 

 

처음 쥬뜨브를 들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나는 그의 짐노페디와 그노시엔느 같은 잔잔한 음악에 익숙해 있었기에 그가 이렇게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음악을 작곡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제목만큼 로맨틱하고 달콤한 선율은 마치 내가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 좋은 설렘을 가져온다. 그와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찬란하고 빛났을지, 그리고 그가 그녀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했는지 눈앞에서 그려지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간질간질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을 자아내는 곡이어서 멜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OST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쥬뜨브가 사랑스러운 만큼 슬프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열렬하고 순애보적인 사랑과 쓸쓸하고 고독한 이별이 복합적으로 떠올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들곤 한다.


 

 

가구 음악


 

에릭 사티는 자신의 음악을 '가구 음악'이라 불렀다. 가구는 우리 삶에서 배경처럼 존재하지만, 각자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것이다. 그는 가구처럼 자신의 음악이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기능하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온 신경을 다해 집중해서 듣기보다는 배경으로 두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지향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BGM과 OST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곡은 유명한 침대 브랜드의 CF에서 배경 음악으로 쓰였고, 심리 치료나 명상 음악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의 음악은 강렬하거나 화려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고 편안하고 조용한 편이어서, 나 역시 책을 읽을 때 많이 듣곤 한다. 오늘도 에릭 사티의 바람이 이 글을 보는 이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란다.

 


[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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