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리 치이고 저리 채여 상처받은 - 고래가 가는 곳 [도서]

우리 맑은 별에서 다시 만나요
글 입력 2021.10.06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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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돌고 도는 소용돌이 고함 소리

이리 치이고 저리 채여 상처받은 널 닮았던

바다 친구들 모두 함께 빛나는 눈물 남겨두고 잘 있어요

고래가 하늘로 올라가네

...(중략)...

안녕 고래야 어디 가니 친구들과 즐거웁게

고래야 안녕 어디 가니 우리 맑은 별에서 다시 만나요

 

- 크라잉넛, ‘안녕 고래’ 中

 

 

크라잉넛이 2007년에 발표한 이 노래를 들어봤는가? ‘어려운 현실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을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도록 위로하는’ 곡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들어보면 가만히 앉아서 절대 들을 수 없는 노래다. 무대를 꽉 채우는 기타 소리와 빠른 박자는 우리에게 얼른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이 노래는 어느 날 아침 고래들이 해안으로 올라와 사망한 뉴스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동물이 떼를 이뤄 자살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과연 고래는 그것 때문에 연안으로 올라왔을까? 일부러? 아니면 실수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물이라서 고래의 죽음이 낯설다면, 누가 봐도 기름기 많고 오염된 물을 가득 뒤덮은 채 떠 있는 고기 떼가 뉴스에 등장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는가? 아마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아닐지라도, 이 또한 생명의 상실이니까. 분명 마음 한구석이 아릴 것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채여 상처받은


 

 

고래가 잡혔다는 소식이 오면, 환자들이 줄지어 보트를 타고 경유 정제소로 간다. 고래잡이들이 고래 몸뚱이 여기저기에 무덤 파듯 구덩이를 파면, 환자들이 거기에 들어가 증기탕에서처럼 두 시간 정도를 보낸다. 부패하는 고래의 블러버가 환자의 몸을 에워싸면서 거대한 습포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고래잡이들은 몸을 데우는 것에 대한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그들은 환자가 블러버에 몸을 담그고 있는 동안 고래 몸뚱이의 다른 부분으로 가서 자신의 할 일을 한다.

 

 

역사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일찌감치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진 소나 돼지와는 달리, 고래는 인간의 힘이 미미하던 때에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성공적으로 포획하면 마을 하나가 풍요로워지지만, 그만큼 배가 통째로 뒤집힐 가능성도 농후했다. 무사히 고래를 잡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옛날 사람들은 바위에 고래를 새겼다.


무서움과 신비로움의 상징이었던 고래는, 몇천 년 만에 인간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동물이 되어 버린다. 오늘날에는 다른 원료로 만들어지는 물건들이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고래에서 얻어진 추출물로 만들어졌다. 세계 대전을 치르는 데 필요한 폭발물의 원료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은 고래기름으로부터 나왔다. 인류의 위생 수준을 진일보시킨 비누를 만드는 데에도 고래기름이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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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해안가에 죽어 있는 고래의 몸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목욕까지 했다. 1900년대 초반의 사람들은 고래가 부패하면서 생기는 기름과 어마어마한 양의 열과 가스가 피로와 류머티즘, 정신적 질병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었다. ‘고래 열탕’에서 나온 이후에도 일주일 동안이나 악취가 몸에 배어 있어 빠지지 않았지만, 죽은 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호주의 한 지역에 우후죽순 관광호텔이 세워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 고래가 이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쓸모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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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다에서 죽은 고래가 바람과 조류에 밀려 뭍으로 오지 않는다면, 그 거대한 몸은 마침내 가라앉을 것이다, 그리고 가라앉는 도중에 부패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고래 낙하라 부른다. 처음에는 둥둥 떠다니던 사체 냄새를 맡고 찾아온 바닷새, 물고기, 꽃게, 그리고 상어가 쪼고 씹고 할퀴고 뜯어 먹는다.

 

심해의 바닥에 남은 고래의 뼈는 뜯기고 뚫린다. (중략)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미생물이 조금씩 갉아먹는다. 수십 년이 흐르고, 심지어 백 년이 흐르기도 한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 오직 주변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움푹한 흔적만 남는다.

 


그렇다면 고래는 인류에 의해서만 제 가치를 발할 수 있을까? 책 ‘고래가 가는 곳’에 등장하는 ‘고래의 쓸모’ 중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고래의 몸 그 자체에 관한 묘사다.


사람과 육상 동물이 죽는 문제는 민감하게 반응하던 나도 바다 생물이 죽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과정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고래는 죽지만, 고래의 몸은 다시 수많은 바다 생물이 약동하는 삶의 터전이 된다. 몸이 거대한 만큼 고래에 기대어 사는 개체도 많다. 죽은 고래를 야금야금 먹은 플랑크톤 무리는 대기 중 탄소를 끌고 들어가 바닥에 가라앉는데, 약 40t의 고래 사체 하나는 평균적으로 2t 정도의 탄소를 해저로 옮긴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의 동물 종에 불과한 줄 알았던 고래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책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실로 엄청나다. 비단 고래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각자 일임하고 있는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닐까? 10월이 된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반소매 옷을 옷장 속에 넣지 못하는 올해와 같은 상황은 다른 생명체로부터 ‘쓸모’를 뺏은 인간이 자초한 일은 아닐지.

 

 

 

우리 맑은 별에서 다시 만나요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고래는 아쿠아리움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위 ‘씨가 마를 정도로’ 남획되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현재는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의 적극적인 행동 덕에 연구도 진척되었고 무분별한 포경도 거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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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딘가에는 아직,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코뿔소의 뿔은 잘려 나가야 한다. 언제쯤 동물이 본성을 잃지 않고 ‘기를 펴고’ 살까? 끈질기고 치열한 고민이 이어져, 우리 모두 맑은 별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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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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