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래, 그들의 역사와 그 속의 우리 - 고래가 가는 곳

글 입력 2021.09.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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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래를 아주 어릴 적부터 깊이 동경하고 있었다. 처음 고래를 마주한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큰 감명을 받을 만큼 거대한 고래를 마주한 것도 아니다. 무언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고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래를 찍은 다양한 사진 속의 웅장함과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런 동경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닐 것이다. 고래는 경이로움의 대명사 중 하나다. 수많은 매체에서 고래는 '위엄있고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한다. 호소다 마모루는 자주 자신의 메타버스에 '허공을 나는' 고래를 등장시키며 가상현실 세계의 특별함과 신비로움을 더했다. 에밀리 니콜라스라는 가수의 Pstereo에는 안개 속을 헤엄치는 고래가 등장하고, 그 장면은 오래도록 각종 커뮤니티에서 아름답다고 찬사받았다. K-POP 아이돌 엑소의 앨범 티저 속에서는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우주비행사와 혹등고래가 서로를 마주 보며 유영했고, 그 티저는 공개되자마자 열정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래는 그런 존재였다. 거대하고 위대한 자연 그 자체. 인간이 자연스럽게 감탄을 흘리게 하는 존재. 신비로움과 위엄, 압도감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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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래를 어떻게 찬양하는 것이 좋을까. 이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경이롭고 친밀한, 그러면서도 너무도 멀고 아득한 존재인 고래를 어떻게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이 좋을까?

 

'고래가 가는 곳'을 읽는 내내 저자 리베카 긱스가 이러한 고뇌 속에서 문장을 적어 내려갔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고래가 함께해왔는지, 그동안 고래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렇게 고래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되짚어보며 리베카 긱스는 고래를 향한 아름다운 묘사를 다채롭게 적어 내렸다.

 

하지만 리베카 긱스는 고래를 오직 '아름다운 존재'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리 치부하기에는 고래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갖고 있었고, 리베카 긱스는 그런 다양한 면에서도 집중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처음 책에 들어서는 1장, '천년의 암각화'에서는 우리의 깊은 역사 속 고래가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어떻게 고래가 활용되었는지, 어떻게 기록되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천년의 암각화'라는 제목에 걸맞게 암각화에 기록된 고래의 모습에 대해 묘사한다. 대한민국 울산에서 발견되어 8천 년 전, 신석기 후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반구대 암각화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고래잡이를 기록한 암각화에서 시작하여, 고래가 각국에서 주술적으로, 혹은 상업적으로, 그것도 아니면 문화적으로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되짚어본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되는 것은 고래의 경이로움보다는 대부분 고래잡이에 집중된, 고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인간의 모습들이었다. 되짚어볼수록 인간의 고래잡이는 얼마나 기이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고래 치료'라는 말도 안 되는 요법이 유행하며 고래를 잡아낸 뒤 그 사체 속에서 목욕하던 충격적인 과거와 더불어 해양에서 대규모로 고래를 남획한 것은 특정 지역에서 부분적 개체 수가 격감한 것의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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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잡이의 역사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어느새 고래를 향한 인간의 마음, 인간의 행동으로 들어간다. 고래잡이에 혈안이 되고, 지구온난화가 극심해지며 고래 자체가 멸종될 뻔했던 상황이었다. '비둘기만큼이나 많은 개체 수가 존재했다더라'고 전해 내려오는 멸종동물 도도새처럼, 고래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대로 사라질뻔했다. 하지만 극적으로 고래를 다시 지키게 되면서 어느새 고래를 향한 인간의 마음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를 드러내는 예시가 바로 고래 관광이다.

 

 

"고래 투어는 고래가 멸종할 뻔했기에 여행상품이 되었다. 유령이 되었을지도 모를 존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여행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지켜낸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 고래 한 마리 한 마리는 인간의 배려와 자연의 복원력을 둘 다 보여 주는 증거물이다. 고래를 포착하는 것은 복원의 서사를 상기 시켜 준다. 인간의 개과천선을 반추하게 한다.


(...)


그렇게 오랫동안 고래잡이에 열중했던 인간이 어떻게 고래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 사랑의 본질적인 요소가 보편성을 띠게 되었을까?"

 

 

고래는 결국 자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자연을 대하는 인간도 포함하여 의미를 갖고 있다. '고래가 가는 곳'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존재해왔던 고래의 모습은 어느새 고래 그 자체를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고래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만들어낸다.


파도에 떠밀려와 하루하루 느리게 죽어갔던 고래의 죽음을 묘사하는 것으로 프롤로그는 시작했다. 고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떻게 숨이 멎어가는지 읽어내리며 머릿속으로 가쁜 숨을 내쉬며 눈동자를 굴렸을 고래를 상상했다. 그의 죽음과 그가 남겼을 흔적들도. 고래가 죽고 난 후, 그 사체는 쓰레기더미 속에 섞여 버려진다고 한다.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더미 속에서 축 늘어져 최후를 맞이했을 고래의 모습을 천천히 읽어내리고 곱씹었다.

 

고래 고기가 몸에 좋다는 말에 무분별하게 포획하고 그 시체를 칼로 가르고 그 뱃속에 들어가 건강해지기를 기도했던 과거와, 고래가 파도에 떠밀려오자 그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 고래가 경이로움의 대명사가 되어있는 오늘날. 하지만 결국 쓰레기더미 속에서 부패해가는 고래의 사체와 그 속에서 존재해왔던 진짜 고래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찝찝하고 질긴 철학적 질문을 가슴 속에 남겨놓는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고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왔다. 고래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밀접하게 함께 곁을 지켜온 기록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러한 기록들 속에서 고래를 대해왔던 과정에서 자연을 대했던 인간의 태도는 어땠는가? 인간을 마주치고야 말았던 동물들은 인간들에게 과연 얼마나 많은 배려를 받았는가? 인간과 어떤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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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명확하게 답을 내리고 문제를 풀어내듯 흘러가는 일반적인 과학도서를 떠올리고 이 책을 읽는다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고래를 향한 찬양이고, 수많은 은유와 비유 속에서 고래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모습들을 반추한다. 저자의 경험을 주로 하여 이야기가 흘러가기에 명확하게 고래에 대한 해부학이나 생태학을 알고자 했다면 답답하게도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고래를 동경하는 나에게 이 책은 성경이었다. 고래의 대한 묘사를 이토록 생생히 읽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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