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누군가와 약속을 잡기 어려운 시기,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요즘, 나에겐 드라마 시청이 최고의 여가 활동이다. 또한, 그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드라마에 흥미를 느낀 것은 군대에 있을 때이다.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었던 때였으니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당시 드라마는 바깥 사회를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고, 그렇게 나의 무료한 시간을 채워주었다.
그런데 군 전역 이후에는 딱히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았다. 각 회차로 진행되는 드라마 특성상 다음 회차가 방영될 때까지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정주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군대에서는 TV의 다시 보기를 통해 쉴 때마다 이어서 볼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집에서 TV만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이유로 OTT는 정말 매력 있는 플랫폼이다. 작정하고 한 작품을 감상할 때 쭉 이어서 보는 것도 가능하며,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용자들은 자투리 시간을 여가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와 함께 왜 OTT 이용자가 상당수 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나 역시 얼마 전부터 OTT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작년 가을부터 시즌 1이 시작했으니 거의 1년여 만에 그 이야기가 종결되었다. 이 긴 시간 동안, 매 회차 큰 화제를 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극중 등장인물의 이름을 알 정도로, 올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펜트하우스 3 배우들이 뽑은 명장면
(유튜브 'SBS Drama')
그렇기에 나는 OTT 서비스에 가입하자마자 펜트하우스를 보기 시작했다. 나를 다시 드라마의 늪에 빠지게 해준 드라마이기 때문에 종영이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아쉽기 따름이다.
사람마다 드라마를 감상하는 포인트는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몰입’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극중 등장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하거나, 배경에서 공감을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펜트하우스는 이와 거리가 먼 드라마였다. 극 중 ‘펜트 키즈’라 불리는 인물들이 음악을 한다는 점은 나와 비슷한 배경이지만, 나는 최상류층도 아닐뿐더러 누군가와 극심한 경쟁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또한 대다수의 주요 등장인물이 내로라하는 악역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한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나 청춘 드라마를 즐겨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공감이 쉽게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는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펜트하우스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와 같은 휴먼 드라마가 나에게는 가장 몰입하기 좋은 배경을 제공하지만, 요즘처럼 무료할 때에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여행으로 비유하자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호캉스 (호텔 + 바캉스), ‘펜트하우스’는 액티비티의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 어떠한 공감의 여지를 만들 수 없었던 펜트하우스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길었던 방영 회차 때문이다. 이전까지 봤던 대부분의 드라마는 16부작이 일반적이어서 한창 몰입이 되어 스토리에 재미를 느낄 때쯤 이야기가 끝나 항상 아쉬웠던 것에 비해, 펜트하우스는 총 세 시즌을 합쳐 48부작으로 구성되어 드라마 속의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펜트하우스가 큰 화제를 일으킨 만큼, 이에 따른 비판적인 여론도 존재했다.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막장’이라는 단어, 대표적 사례로는 등장인물들이 수차례 죽음과 부활을 반복한 것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점이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를 위한 것이 아닌, 시청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펜트하우스 캐릭터별 최후 엔딩 (유튜브 'SBS Catch')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등장인물들이 수도 없이 했던 말이다. 이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언정 무엇이든 했다. 그래서 결말은?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했던 어른들은 대부분 죽게 되었고, 자식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극 중 선역으로 등장했던 심수련(배우 이지아)이 악역들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 역시 어른들과 같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함이었고, 모든 복수가 끝났음에도 이 과정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길었던 서사에서 결국은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아이들은 그녀의 바람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떳떳한 어른이 되었다.
이처럼 자극적인 전개에 가려져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묻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존재한다. 이에 따라 이 드라마가 방송계에 ‘시청률 만능주의’를 불러일으켰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적나라한 스토리와 화면 연출, 그리고 주연과 조연을 구분 짓기 어려울 정도로 펼친 모든 배우들의 명연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갈등의 예술’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드라마로서는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악역에 대한 선역의 승리로 결말짓는 해피엔딩이 아니었기에 그 여운이 조금 더 오래갈 것 같다. 굿바이, 펜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