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집으로 온 미술관, 워치 앤 칠 Watch and Chill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9.1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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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이 구독형 아트 스트리밍 플랫폼 '워치 앤 칠 Watch and Chill'을 공개했다. 이름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에서 이들이 브랜딩 하려는 이미지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다. 넷플릭스를 보듯 집에서 아무 때나 접속하는 미술관. 그리고 언젠가는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하는 미술관이 되고자 하는. 코로나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더 가깝고 친밀한 온라인 미술관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지금 '워치 앤 칠'에서는 첫 번째 전시로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이 진행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홍콩 M+ 미술관, 태국 마이암현대미술관, 필리핀 현대미술디자인미술관이 협업하여 미디어 소장품을 선보인다. 오프라인 공간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6 전시실(2021.8.24. – 10.24.)에서도 같은 내용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데 서울전의 전시가 끝나면 다른 세 미술관에서 순회될 예정이라고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리고 아시아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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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에서 이와 같은 서비스를 선보이는 동안 대중들도 어느 정도 온라인 미술관에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제는 거대한 플랫폼이 되길 꿈꾸는 이 가상의 공간이 어땠는지 감상을 나눠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취향을 털어놓자면, 2년 새 보았던 온라인 미술관 관람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한 내 경험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금껏 본 전시는 VR로 실제 미술관 현장을 밀도 높게 구현하거나, 이번 '워치 앤 칠'처럼 미디어 작품을 중심으로 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자는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 마우스로 위치를 계속 조정해야 한다는 점이 불편했는데 그렇게 본 작품에서도 차가운 화면 위로 뭘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미디어를 다루는 후자의 경우, 영상 재생을 조정하며 여유롭게 작품을 훑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이것이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를 큐레이션 받는 것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기획에 맞추어 적절한 작품을 보여주는 일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언젠가 온라인 미술관이 유료가 된다면 이 정도 퀄리티로 마땅히 돈을 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전시관에서 작품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자체가 예술사적 흐름 어딘가에 있음과 동시에 조명과 다른 작품과의 거리,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이라는 맥락 사이에도 놓여있다. 공간과 맥락이 주는 경험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비록 그것이 화면 위를 흐르기만 하는 영상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떤 공간 속에서 어떻게 마주쳤으며 그 작품에 가기까지 어떤 것들을 지나쳤는지, 하다못해 작품 앞에 혼자 서있는지도 관람의 일부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온라인 미술관은 그런 것들을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걸까? 작품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 온라인 '공간'이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은 없을까? 메타버스가 유행하고 디지털 작품이 NFT화 되는 것을 보면서도 어려운 문제 같다. 공간 속 경험을 중시하는 나의 고리타분함이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온라인 미술관의 감상법은 오프라인과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온라인 미술관이 '공간'이 되려면 그 공간을 어떤 경험들로 채울 것인지 더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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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워치 앤 칠'이 첫 기획으로 잡은 [우리 집]이라는 키워드는 참 영리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어떤 집에 살고 있으니까. 플랫폼 자체가 특별한 경험을 주지는 않지만, 거기서부터 공간에 대한 맥락이 생긴다.


전시는 거실의 사물들을 다시 바라보고, 반려로서 내 곁에 있는 존재를 돌아보고,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초연결사회에서 여러 차원으로 확장되는 집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집은 어느새 예술적 자극으로 다채로워진다.


내 옆의 식물, 좁은 방, 욕조의 풍경, 평온한 일상. 우리 집 역시 작품에 나오는 사물들로 가득하기에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가장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발견하는—일종의 언캐니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예술로 확장된 '집'은 그렇게 미술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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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 <에이 비 에이 비디오>, 2016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달라진 점을 꼽자면 집의 풍경에 신경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똑같은 풍경이 지겨워 가구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때론 분위기를 전환해줄 귀여운 소품을 들여놓는다. 그 정도의 작은 변화도 단조로운 공간에 큰 활력을 준다.


오민의 <에이 비 에이 비디오>(2016)를 보고 있으면 정갈하게 청소되고 있는 거실이 떠오른다. 영상 속 퍼포머는 거실에 놓여 있을 법한 사물들을 옮기고, 열을 맞추고, 각을 세운다. 가끔은 탑처럼 쌓아 올리는데 아슬아슬하지만 멈칫하는 순간 완성되는 희열이 있다. 조심스럽고도 강박적인 행위 위로 퍼포머의 발걸음과 물건이 스치는 소리가 쌓인다. 사물로 빽빽한 화면은 움직임에 물결치는 그림자로 물들며 어느새 리듬감을 갖는다. 선율 없이도 그것은 음악처럼 들린다.


피아노를 전공한 오민은 음악의 형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에이 비 에이 비디오>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의 구조를 빌렸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제시부(A)-발전부(B)-재현부(A')로 전개되는데, 주제를 보여주고(A), 더 느리거나 빠르게 변주하고(B),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하지만 이전과 다른 A') 구조다.


이는 사물을 원하는 모양으로 배치하고, 비틀어진 모양을 정돈해 완벽한 모습으로 구현해가는 퍼포머의 행위와 닮아있다. 단번에 놓이지 못하는 사물들이 계속 A-B-A(')의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그 율동감에 눈이 즐거운 한편, 강박적인 손길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숨이 막힌다. 한 치의 비틀어짐 없이 열을 세우는 사물들에서 완벽하게 보이도록 집착하는 인간의 모습이 조심스레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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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 광밍, <주거 Dwelling>, 2014,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nart TZ Gallery.


 

위안 광밍의 <주거>(2014)는 평화로운 한낮의 거실을 그린다. 반쯤 그림자가 드리운 거실에 친근한 생활감이 묻어난다. 새가 울고 개가 짖는 정겨운 소리를 두르고 있지만 집 안에서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조용히 울린다. 그 간극이 평화롭게 느껴지기에 환상적인 낮이 있다.


한순간,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다. 전조 없이 거실이 폭파되는 장면은 방금까지 보고 있던 모든 장면을 의심하게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정말 폭파된 것인지. 차분했던 시계 소리는 모든 것을 앗아가겠다는 타이머였던 것일까? 먼지처럼 기포가 피어오르고, 거실은 순식간에 혼돈에 빠진다. 잠시간의 소란 후 고요해지는 소리는 바닷속에 가라앉아있을 수많은 문명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우연 사이에서 평화롭게 이어지는 것이며 우리가 지금 살아간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우연이 중첩된 걸까.


다행스럽게도 영상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복구되어 다시금 평온을 찾는 거실의 모습으로 끝난다. 이 순간 그것은 하나의 예언처럼 느껴진다. 코로나로 한순간에 빼앗긴 우리의 일상도 언젠가 회복될 수 있다는 말을 전하는 예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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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앙 지, <날아, 날아 Fly, Fly>, 1997 © Jiang Zhi


 

TV 속 사람들은 항상 행복하다. 그들의 그린 듯한 미소에서는 가난의 그늘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카메라의 시야가 조금 넓어지면 보이는 것이 있다. 비좁은 아파트, 허름한 가구. 그리고 그 속에서 비상을 꿈꾸는 작은 날갯짓.


타이스의 명상곡을 벗 삼아, 손짓은 가냘픈 비행을 계속한다. 집안 곳곳을 날며 간혹 무언가를 마주친다. 그러나 신선이 살 법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장소는 그에게 허용되지 않고, 집으로 빼곡한 지도에서도 정착할 곳을 찾을 수 없다. 날갯짓은 그림자조차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집안을 맴돈다.


지앙 지는 가장 사적인 것으로부터 현대 중국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작가라고 한다. <날아, 날아>(1997)라는 이 작품에서도 은유적인 손길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도시화 속에 탄생한 문제들, 그 모든 것을 눈 감고 있는 미디어의 환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20여 년 전의 작품이지만 이것은 여전히, 앞으로도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약한 날갯짓이 숨 쉴 수 있는 곳은 좁은 아파트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베갯잇에 적힌 晚安(잘 자)라는 글자에서 조금의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그의 경건한 비행이 계속되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날개를 접어 퍼석한 잠을 맞이하지만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면 다시 눈을 뜰 것이므로. 더 높은 비상을 꿈꾸며 꺼질 듯 잠기는 날갯짓은 가냘프다는 이유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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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 앤 칠'은 구독형 플랫폼으로 매주 한 작품을 공개한다. 10일을 기준으로 각 섹션별 두 작품 정도가 공개되어 있는 상황이다. 모든 작품이 공개되기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아직 보지 못한 작품도 있었지만 짧은 설명만 읽어도 '집'이기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모두 어떤 집이 있으니까. 다시 반복하게 되는 이 문장은 작품을 볼수록 [어떤]이라는 열린 괄호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품게 한다. 누군가에게 집은 평화로운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집의 사물에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읽어낼 수도, 개발로 빈 집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도시개발의 폐해를 비판할 수도 있다. 미디어의 행복하게 연출된 집만이 전부가 아니다. 전시는 그 이면에 가려진 여러 집을 우리 집 위에 소환한다.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은 그렇게 미술관과 집의 완벽한 교집합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합집합을 꿈꾼다. 미술관은 집이 되길 열망하며 집은 미술관이 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 '워치 앤 칠'은 그 사이에서 각자 집들의 이야기를 이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 뿐이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사적이지만 모두의 문제이기도 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마음에 드는 전시였다.


전시 서문에 흥미로운 글귀가 하나 있다. "도시는 점차 침대로 오고 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꺼내 드는 순간 몰려드는 세상에서 고고한 미술관의 위엄은 어느새 사라진다. 흘러넘치는 콘텐츠의 홍수에서 흥미롭지 않으면 선택받을 수 없다. 앞으로 '워치 앤 칠'이 그 사이에서 다른 이들을 제치고 우리 집에 당당히 자리를 잡을지 궁금해진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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