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은 어렵다? 오히려 좋아! - 2편 [미술/전시]

미술, 어떻게 감상할까?
글 입력 2021.09.1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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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는 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세가지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미술을 '덜'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이번 글에서는 이 어려운 미술에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쉽게 다가가는 팁을 소개하려고 한다. 예술 작품 앞에서 눈에 초점이 흐려지고 머리가 하얘지고 감정이 메말라버리는 이들을 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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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이는 것에 집중해보자


 

미술에도 언어가 있다는데, 그렇다면 미술 언어는 어떻게 습득할까?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조형 언어는 말과 글처럼 무언가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미술에서는 명사, 형용사가 아닌 형태, 질감, 색 등으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한다. 화가는 자신이 원하는 물감의 종류와 색, 캔버스의 크기 등을 정하고, 조각가는 조각의 재료, 질감과 무게감의 표현 방식 등을 결정해 생각과 감정을 작품에 녹여낸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이해와 작품과의 소통을 위해서 미술 언어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미술에서 쓰이는 언어에 익숙해진다는 건 뭘까? 미술 언어에 익숙한 사람은 어떤 작품 앞에서든 그것의 조형 요소들을 관찰하고 이들이 무엇을 의미할지 생각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나만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험과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한 훈련의 첫 단계로 우선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해보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의식적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관찰해야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첫 작품을 마주했을 때, 내 눈이 작품을 향해 있긴 한데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 작품의 형태, 질감, 색, 재료, 구도에 집중하면서 차근차근 훑어나가보자.

 

사진 찍는 일이 취미를 넘어 일상이 되면서 일반 사람들의 ‘구도’에 대한 감각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인물은 어떻게 찍어야 다리가 길어 보이는지, 음식은 어떻게 찍으면 더 맛있어 보이는지 전문가 못지않게 빠삭하다. 그런 감각으로 회화나 사진 작품 앞에 서서 내가 작가라고 상상해보자. 내가 어떤 풍경이나 대상을 카메라로 찍는다면 어떤 장면을 어떤 구도로 담아냈을지, 이 작품의 작가는 왜 이런 장면과 구도를 택했을지 궁금해하는 걸 시작으로 작품의 구성 요소들에 질문을 던져보자.

 

이렇게 작품을 눈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방식을 영어로 ‘visual analysis(비주얼 아날리시스)’라고 부르는데 ‘시각적 분석’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 기본 중의 기본이다. 관찰하는 데서 작품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고, 특징을 발견하는 데서 작품의 의미, 의의, 가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른 분석 방법에는 작가의 정신 상태나 심리를 통해 이해하는 정신분석학적 접근과 심리학적 접근이 있고, 작가의 생애를 바탕으로 작업 활동을 연구하는 전기(傳記) 적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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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오크 화판에 유화

미스테리해서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거울 속에는 화가와 또 한명의 인물이 있다. 그림의 구도도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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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갤러리 <아이콘> 전시(2021.06.23 - 2021.07.18)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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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구, 산은 무너지느라 돌을 떨어뜨린다, 2021, 종이에 흑연, 혼합매체

 

 

여기서 또 하나 간단한 팁이 있다면 작품을 보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관람하는 것. 누군가와 함께 하는 전시 관람은 장단점이 있지만 혼자일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대화 속에서 창의적인 스토리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갤러리에서 전시를 관람할 때 조금 어색하고 민망해 작품을 꼼꼼히 보지 못하고 빠르게 지나쳤다면 누군가와 함께하는 걸 추천한다.

 

 

 

2. 첫인상과 느낌을 끌고 나가보자


 

많은 이들이 예술 작품을 보고 어떤 인상이나 느낌을 받더라도 거기서 멈춰버린다. 그 인상과 느낌을 끌고 나가면 조금 더 깊은 감상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면, 어떤 그림이 “그냥 예쁘다"라고 지나치지 말고, “내가 이 그림의 어느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지?” 한 번 질문해보자. 색이 잘 어우러져서? 구도가 안정적이어서? 곡선의 형태가 우아해서? 가슴에 오는 느낌에서 멈추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 머리로 생각해 보면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논리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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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배헤윰, 아쿠마 aquma, 2019, 캔버스에 아크릴

(오) 호안 미로, 하늘빛의 골드 The Gold of Azure, 1967, 캔버스에 유화

 

 

자신의 느낌을 끌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경우 ‘관객의 느낌’과 ‘작가의 의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한마디로 “네(관객) 맘 내(작가) 맘”인 것이다.

 

배헤윰 작가의 ‘아쿠마’를 보면 전체적으로 평면적인데 반해 가운데 네 개의 사각기둥들은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주어 재미있다. 배경에 놓인 도형들은 하늘과 산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파랑, 빨강, 연두, 노랑의 색깔들은 강렬하고 인공적인 것 같지만 또 자연을 닮은 것 같다.

 

이제 배헤윰 작가를 소개한 전시 브로슈어를 보자.

 

“고도의 재현이 가능한 미디어로 인해 인간의 특정 지각 능력은 퇴화하거나 인지적 호기심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에 작가는 자유로운 이미지의 조합으로 가득한 회화를 통해 함축된 서사를 독해하려는 관객의 의지를 자극하고 이들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길 기대한다.”

 

쉽게 말하자면 배헤윰 작가의 회화는 한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림 속 대상과 스토리를 읽어내려는 관객의 시도를 유도하고 여러 자극으로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냥 보이는 대로 묘사한 위의 감상에서 그림이 재현한 대상을 읽어내려는 시도와 형태와 색의 조화에 집중하며 일깨워진 감각을 발견할 수 있고, 이는 작가의 의도와 맞물린다.

 

이런 감상법은 단지 아름다운 그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 보기 거북하고 불편한 작품들도 한발 더 들어가보면 어떤 요소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고 이는 작가가 왜 이런 장치들을 통해 관객을 불편하게 하려는지 말해준다.

 

 

 

3. 나는 예술을 “즐기러” 왔다는 것을 잊지 말자 - 가벼운 마음가짐


 

1편에서 언급했던 “옳은 해석에 대한 강박과 틀린 해석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야 미술이 덜 어려워지고 미술관이 더 즐거워진다.

 

동시대 예술은 단번에 이해가 안 되는 작업들 투성이고, 그게 요즘 미술이다. 평론가조차도 설명 없이 작품만 봤을 때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로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작품을 설명 없이 이해하고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 요즘 작업의 추세라고 말했으니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동시대 미술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그래서 전시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가벼운 마음가짐, “나는 이곳에 즐기러 왔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미술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미술 감상이 그 자체로 유용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전시 리뷰를 써달라고 부탁했거나, 먹고 살기 위해 평론을 써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술 감상은 무언가를 생산해 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이들 외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미술관과 갤러리를 방문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즐기기 위함이다. 모든 작품이 즐거움을 준다는 말이 아니다. 어쨌든 방문 자체는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가 시간에 취미로 가는 미술관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명확한 무언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자.

 

 

 

4. 주의 - “잘” 만든 작품인지 판단하려 하지 말자


 

우리는 어린아이의 그림을 보고 감동하고,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88세 할머니의 천진한 그림을 보고 미소 짓는다. 뛰어난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한 표현이 마음에 더 와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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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와일리(b.1934), Six Hullo Girls, ⓒ The Korea Herald

로즈 와일리는 45세가 되던 1979년 영국왕립예술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큰 명성을 얻지 못하다 2013년부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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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東闕圖), 1824-1830 무렵

조선 후기 순조 연간에 도화서 화원들이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과 궁궐 전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또한 동양화가 서양의 선 원근법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보다 뒤떨어진 것이 아니다. 대상을 대하는 태도와 그림의 목적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뿐 무엇이 우월하고 열등한지 비교할 수 없다. 조감도식으로 묘사한 ‘동궐도’는 지금 보면 오히려 일러스트처럼 현대적이다.

 

물론 예술 작품도 ‘잘과 못’의 기준이 나름대로 존재한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작품에서 전혀 구현되지 않았다면(그 판단 자체도 모호하지만) ‘잘’된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러 미술상들이 있고, 수상자가 가려지는 이유도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논란이 존재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제안하는 건 작품 앞에서 심사위원처럼 팔짱을 끼고 안경을 한 번 올려준 뒤 눈을 치켜뜨며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지는 말자는 것이다. 남의 것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남의 것을 깎아내리는 것에서 재미를 찾지는 말자.

 

우리는 쉽게 선입견을 가진다. 국공립미술관에 걸린 그림은 위대하고 문화센터에 전시된 그림은 열등하다고 단정 짓는다. 이런 틀에 스스로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일상에서도 예술을 발견할 수 있고, 일상 속 예술에서 재미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과의 만남이 기다려지기를


 

이 글에서 필자가 전하고 싶었던 건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읽는 이에 따라 특별할 것 없는 조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은 누구나, 어떤 작품을, 어디에서 마주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전시를 보는 와중에도 관심 있는 작가나 모르는 미술 사조를 그 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 과정이 더 중요해졌고, 그 과정을 돕고 싶었다.

 

다음번 전시 관람은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보이는 것에 집중해보고, 내 느낌을 믿고 그 느낌을 바탕으로 머리를 조금만 굴려보자. 한번 두번 작품에 대고 질문을 이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작품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모든 걸 털어 놓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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