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기억을 저장하는 특별한 방법 - 랜덤 다이버시티 [미술/전시]

나의 기억을 하나의 색으로 추출하다.
글 입력 2021.08.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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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평생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오래 마음에 담아두는 각자만의 방식도 있을 것이다. 나는 주로 사진들과 함께 블로그에 일기를 쓰면서 기억을 기록한다.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 사진과 함께 짧게 쓰여 있는 글들을 보면 그 순간이 바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여러 사진을 찍는 것도, SNS라는 장치 덕에 하루하루 매 순간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간편해져, 요즘은 기억을 남기고 저장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색다른 방법으로 각자 마음속 깊이 묻어져 있던 기억을 꺼내 저장해보는 것은 어떨까.

 

안국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송원아트센터에서 <랜덤 다이버시티> 체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잊고 있던 기억이더라도, 사진을 보면 어렴풋이 그때의 순간과 내 감정이 떠오르는 점을 핵심으로 삼았던 이 전시는 특정 사진을 봤을 때의 나의 뇌파를 감지하여 기억과 감정을 '디코드' 한 뒤 "색으로 추출"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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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편에 비치되어 있던 색 추출 결과물들]

 

 

어떤 사진을 가져가서 어떤 기억을 추출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 넘쳐나는 휴대폰 앨범들과 SNS 기록들, 그리고 블로그 일기까지.. 어딘가 흐릿한 기억이나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다소 회의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2년 전 겨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가수 김동률 콘서트가 생각났다. 코로나19로 인해 큰 공연장의 객석을 가득 채운 모습, 공연의 설렘을 가득 안은 사람들이 근처 카페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모습들과 함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김동률 콘서트 특성상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정말 그 공연을 떠올릴 방법은 가끔 라이브 앨범을 들으면서 눈을 감고 그때의 조명, 김동률의 목소리,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중심으로 한 세션의 연주, 기립박수를 보내던 나의 모습을 최대한 생각해내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한번 '추출'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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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2일부터 12월 1일까지 (월,화,수 제외) 진행되었던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는 김동률이 오랜 기간 꿈꿔오고 준비했던 공연장에서 긴 기간 동안 평소 잘 부르지 않은 곡들로 꽉 채운 공연이었다.

 

김동률의 '찐팬'이라면 "이 노래를 라이브로!"라는 생각에 공연 내내 황홀했을 것이다. 더하여, 정말 꼼꼼히 준비한 것이 느껴질 정도로 음향과 조명의 조화가 완벽했던 공연이었기에 여태까지 수많은 콘서트를 다녀봤지만 그때 그 공연은 내 인생 공연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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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담당자에게 콘서트 포스터 사진을 전송해드리고, VR 기기를 머리에 쓴 뒤, (처음 써봤다!) 우주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이미지들과 콘서트 포스터 사진을 함께 보면서 혼자 노래 들으면서 추억했을 때처럼 그때 그 순간을 최대한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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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칸으로 넘어가면 VR 기기를 쓰고 있는 동안의 내 뇌파를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색 추출이 시작되었다. 내 뇌파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4가지 색깔이 다양하게 섞여 아주 귀여운 주황 계열의 색이 나왔다.


공연을 보던 때가 겨울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외롭게 공연장에 방문해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시간인지라 어두운 계열의 색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밝고 통통 튀는 색이 나와서 신기했다. 공연을 가기 전엔 힘들었지만, 그 공연 덕에 힘을 낼 수 있었고, 밝은 나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추출된 색의 이름은 콘서트 이름이었던 '오래된 노래'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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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VR 기기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 기억을 떠올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간 친구는 사진을 보는 동안 별생각 없이 있었더니 한가지 색깔만 100% 가까이 나오고, 나머지 색은 거의 섞이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극적인 (?) 뇌파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회상하고 다시 스스로 새롭게 발견하고 읽는 '마음 백신'을 제공(전시 설명 참고) 하고자 했던 전시여서 그런지 추출된 색이 담긴 용기가 마치 약 병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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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층에서 이루어진 색 추출이 이루어지고 한층 위에선 다양한 색 추출 결과물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또 뇌파가 전송되는 과정을 표현한 전시물도 확인할 수 있다. 색이 추출되는 건 봐도 전송되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는데, 이곳에서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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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체험이 이루어지던 층보다 한층 아래에서는 반대로 아무 색이 없는 '버블 다이버시티'를 볼 수 있다. 아무 색이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무수한 색이 존재하는 버블들은 마치 이 전시를 방문한 사람들의 기억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잃어버린 기억을 시각적으로 꺼내본 것과 달리, 후각적으로 꺼내볼 수 있는 체험은 다른 전시관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짧은 안내문과 함께 예시도 전시되어 있었다. 색이 아닌 향으로 기억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랜덤다이버시티 - 프래그넌스> 실험으로 예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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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홀로 외로이 키를 잡고 

바다의 노랠 부르며

끝없이 멀어지는 수평선

그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단 마음으로

 

- 김동률, <고독한 항해>

 

 

콘서트 곡들 중 가장 큰 위로를 주었던 이 곡을 가장 많이 떠올리면서 체험을 했는데, 아기자기한 용기에 담긴 밝은 기억색을 보고 있으니, 그때의 기억을 잠시 잊고 지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좋은 에너지가 되고 있었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2019년 11월 28일, 어두운 객석에서 숨죽이고 음악을 표현하는 아티스트와 연출자의 공연에 내 모든 걸 맡겼던 날, 기립박수와 함께 그간 삼켜두었던 눈물을 흘려 보냈던 그 순간을 자주 꺼내보며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잊고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내 안에서 좋은 작용을 하고 있던 행복한 기억들을 추출해서 나만의 '마음 백신' 통에 한번 보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전시는 오는 10월 3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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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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