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것에 빛을 비추고 생명을 불어넣다.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展

빛과 그림자, 후지시로 세이지의 판타지
글 입력 2021.08.2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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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展, 설렘 보다 긴장


 

전시를 보러 다녀온 오늘 하루가 롤러코스터 같았다고 느껴진다. 크게 극적인 상황을 마주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감정은 극도의 긴장과 흥분 상태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와 버렸다.

 

전시회를 다녀오는데 무슨 이런 감상을 하게 된 건지, 나조차도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기 전에 사람들의 후기를 본다. 평점이라든가, 감상평과 같은 짧은 글을 읽게 된다. 홍보와 설득이 목표인 몇몇 서평들보단 정제되어있지 않은 날 것의 글들이 가끔은 반갑고 흥미롭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오늘도 전시를 다녀오기 전에 한가람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후기를 찾아봤다. 네이버 블로그에 수많은 후기 글들이 있었던 반면, 홈페이지에는 단 두 개의 리뷰만 남겨져 있었다. 분명 정식 홈페이지인데 2개의 후기라니 실망을 한 건 아니었지만 김 샌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2개가 어딘가라는 생각으로 첫 번째 후기를 눌러보았다.

 

후기 글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전쟁을 일으킨 것조차 인정하지 않아 피해자인 척하는 일본인의 전시를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공연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였다.

 

조금은 아찔했다. 설마 내가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예술가의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인가. 역사의 왜곡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혐오감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정치적 성향과 예술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일반적으로 예술이 정치와 관련이 없다고도 하기 힘들기에 저 문장이 담겨 있는 후기 글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전시를 미룰 수는 없었기에 미술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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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케이아트 커뮤니케이션)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그리고 진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왔었고 규모 또한 예상했던 것보다 거대했다.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작품들은 독특했고 동화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심오하게 느껴졌지만, 생각보다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복잡한 표현 방법이 아닌 직관적인 색의 조화는 반갑게마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카게에라는 그림자 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이 데생처럼 느껴지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전시를 보는 동안 사라지지 않은 궁금증은, 과연 후기 글의 표적이 된 작품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였다. 그리고 전시의 끝자락에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눈이 가게 된 작품이 있었다. 작품의 이름은 ‘슬퍼도 아름다운 평화로의 유산’ 그리고 작품 설명이 적혀있었다.

 

‘20만 명 이상의 행복이 희생된 이 흔적은 미래의 평화를 가져왔다. 전쟁을 체험했던 소수의 사람으로서 고통과 비참한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작품의 색감도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작품 설명의 담겨 있는 작가의 마음이 더욱 공감되는 작품이었다. 히로시마 원폭의 흔적을 담은 그림에는 전쟁의 패배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닌, 전쟁 자체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행복이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의 소지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지지만, 만약 내가 오늘 아침에 후기 글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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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후지시로 세이지)


 

내가 생각했을 때 전시는 소통의 현장이고,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다.

 

작가는 일부러 뜻을 숨기려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우리들은 우리들, 각자의 세계에 그들의 작품을 잠시 빌려와 감상하면 된다. 그 모든 방식에 정답은 없겠지만, 전시를 향유하는 시간의 가치 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의 경험은 꽤나 흥미로웠다. 타인의 이야기로 나의 세계가 변화했고 내 세계로 들어오는 '후지시로 세이지'라는 작가의 작품에 자체적인 검열을 걸어버렸다. 소통을 즐기기보단 경계를 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작품과 순수한 마음을 옅보면서 감탄보다는 참회를 하게 되었다. 타인의 열정과 노력의 산물을 직접 확인하지도 않은채 편견을 가져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직접 초래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오전의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문제의 작품이, 전시를 보고 나온 지금의 나에겐 최고의 작품으로 남겨졌다는 것이다. 각자의 감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타인과 감상을 공유하며 생각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라 느껴지지만, 오늘 만큼은 온전한 감사보단 충돌이고 하나의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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