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박성빈] 오베이와 디스이즈네버댓

글 입력 2021.08.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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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오베이, 디스이즈네버댓 후드티와 컨버스 단화를 샀다. 30만원에 달했다. 옷값에 단번에 그 정도 금액을 쓴 적은 처음이었다. 손이 떨렸다.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를 누린 건지 자문했다. 형편을 일일이 의식하며 소비하면 평생 사지 못할 것들이 천지 삐깔이다, 나는 다달이 월급 받는 생활을 할 거니 괜찮다, 그런 문장을 마음에 아로새겼다.

 

이틀을 기다려서 택배를 받았다. 판매자에게 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바구니에 넣은 게 이미 몇 개월 전이었다. 사고 싶어 안달이 나 침을 흘리는 나날이었다. 일주일 동안 그 후드티를 돌려 입었다. 신발은 한 달 내내 매일 신었다. 취재원 인터뷰에도 후드티를 입고 가 국장에게 혼났다.

 

구매욕은 사고 나면 해소되고 만족감은 얼마가지 않는다. 오베이 후드티에 박힌 페인팅을 볼 때마다 스스로의 안목이 자랑스러웠던 나날은 길어야 한달이었다. 후드티와 컨버스 신발을 사고 싶었던 마음은 갤럭시 버즈로 이어졌다. 나는 갤럭시 버즈 광고를 볼 때마다 저걸 갖고 말겠다는 다짐을 되뇌다가,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뇌까렸다.

 

철 없던 날에 제일 갖고 싶었던 건 ‘바이오니클 레고’였다. 기존 레고와 달랐다. 네모블록을 쌓아 조립해서 나올 수 없는 모양이었다. TV광고를 보고 나서 그 마음은 정점이었다. 칼·총을 휘두르며 이 행성을 지켜줘 따위를 지껄이는 바이오니클을 봤을 때, 그래 나는 저 행성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여서 엄마에게 징징댔다. 저 행성을 지켜야 해. 광고 속 목소리는 진짜야. 엄마는 쟤들이 다 죽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넋 나간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돈이 없다고 말했다. 빼애액! 나는 지랄을 떨었다. 세탁기에 올라가서 바이오니클을 살려달라고 시위했다. 안사주면 밥도 안 먹겠다고 말했다. 안 통했다. 서러워서 울었다. 엄마는 행성의 안위 따윈 안중에도 없어. 바이오니클의 고통을 헤아려주지 않다니. 울었더니 배가고팠다. 집에서는 고기를 구웠다. 단식에 대한 결의는 6시간만에 끝났다.

 

스무 살 때 술집에서 서빙해 처음 번 돈은 24만원이었다. 그 돈으로 제일 먼저 산 건 디디치킨 세 가지 맛 세트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치킨집 프랜차이즈의 치킨을 먹고 싶었다. 우리 집은 음식 배달을 ‘먹고 살만한 이들의 배알 따신 소비’로 정의했다. 할머니가 가끔 포장해온 닭은 행상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이거나 분식집에서 튀긴 닭강정이었다. 나는 기름에 잘 튀겨진 닭의 맛이 궁금했다. 전기의 맛 말고, 뼈가 씹히지 않는 강정의 맛 말고 치킨이라고 호명되는 그 맛이 뭐 길래 사람들이 환장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맛있었다. 그 뿐이었다. 혓바닥이 트위스트를 춰서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에잉. 싱거웠다. 만오천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긴 아깝네. 이후엔 동기들과 같이 술안주 삼을게 필요할 때나 돈을 갹출해 치킨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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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무엇을 사든 비슷했던 것 같다. 어떤 것을 갖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은 막상 돈을 지불하면 금방 휘발됐다. 마찬가지로 대학교 1학년 때는 한솥도시락 내 제일 비싼 도시락(무슨 이름이었는지 기억도 안난다)과 리복 운동화를 사는 게 목표였다. 매일 2천원짜리 학식만 먹는 게 싫증나서였다. 두 달 신으면 밑창이 닳는 이름 모를 시장 운동화를 신는 게 싫어서였다. 그게 먹고 싶어서, 그걸 신고 싶어서 단기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울교대 기숙사를 뒤엎어 먼지 털고 닦는 일이었는데 이틀 동안 해서 10만원가량을 받았다. 곧바로 ABC마트에 들렀다가 도시락 점에 갔다. 좋았다가 허탈해졌다. 수중에 남은 건 2만원이었다.

 

저것을 갖고 말겠다는 마음은 순전히 소유욕일까. 호기심일까. 그냥 이끌려서? 세 개 다 해당될 수도 있다. 다만 그 마음의 저변에는 내 값어치를 따지는 잣대가 작동했다. 열등감도 있다. 가격표를 확인하고 그 비용조차 지불하지 못하는 내가 싫어서인 마음이었다. 너라는 인간의 가격은 이 정도도 안돼. 그런 문장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스무 살 때까지 치킨 한 마리 먹어보지 못한 내가 초라해보였다. 동기들이 신는 신발 브랜드를 일일이 확인하는 내가 구차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게 치킨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동기들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고작 치킨이고 신발이었는데 나는 왜 그 ‘고작’을 이렇게까지 해야 획득할 수 있는 건지 자문하는 순간이 가끔 있었다. 써놓고 보니 자문이 아니라 청승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내가 느꼈던 청승이나 열등감은 금방 공기 중에 섞이는 우스운 감정이어서 ‘갖고 싶다’는 마음이 빠르게 증발했던 거 아닐까. 그러니까 실은 거기 깔린 생각이 별 것도 아니었다는 맥락이다. 진짜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 물건을 사면 타인들이 누리는 일반적인 대열에 합류 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원한 거였다. 나중에 생각하면 철 없다고 픽 웃어버릴 공허한 생각이었다. 왜 그렇게 혈안이었던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바이오니클을 사달라고 세탁기에 올라갔던 때가 훨씬 건강했다. 지금의 나는 그 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스무살 때보다 낫다고 자부했다. 오베이, 디스이즈네버댓 후드티를 살 때는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았다.

 

아기부비새 형이 차를 샀다고 했다. 사회로 진출한지 얼마 안됐다고 들었는데 벌써 차를 샀다니 쾌 큰 금액이 통장에 찍히나 보다 싶었다. 별안간 박탈감이 들었다. 박성빈은 졸업도 못한 개백수인데... 요즘 차 값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싶어 사이트를 뒤적였다. 눈이 뒤집혔다. 나는 몇천만원은커녕 몇백만원 모으는 것도 힘이 부친데 이걸 샀다니. 나는 언제쯤 차를 살 수 있을까. 차를 살만한 경제능력을 갖추기는 할까. 그런 생각에 매장됐다.

 

x발.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나는 결국 스무 살 때 보다 나아진 게 없었다. 치킨과 리복 운동화가 액수를 불리고 규모가 커져 차가 됐다. 여전히 나는 어떤 ‘대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특정한 사물을 소유했냐로 내가 어떤 대열에 들어섰는지 아닌지를 점검하는 기제가 밑바닥에 남아있는 거였다.

 

철이 든 게 아니었다. 징징대던 7살 때가 제일 철든 시기인 셈이었고 나는 점점 가볍고 공허한 인간이 돼 가고 있었다. 남들과 비교해 차를 산 다음엔 집이고 집을 산 다음엔 또 그 다음의 자산을 원하는 마음이 생길 게 뻔했다. 치킨이든 리복 운동화든 차든 집이든 나는 평생 같은 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거 아닐까. 문득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나는 갤럭시 버즈를 사고 말았다. 하하하...

         

 


 

 

* 던말릭의 '얼마냐'를 듣고 쓴 글 입니다. '얼마냐'는 던말릭의 첫번째 정규 '선인장화'에 수록된 2번 곡입니다. 힙합 노래입니다. 돈에 얽힌 일화를 풀어나가다가 돈이 우리를 포획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일갈하는 노래입니다.

 

어디가서 힙합 좋아한다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힙합은 자기 서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 취향을 강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필청하세요. 두번 들으세요. 세번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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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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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 리원
    •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 것 같아요..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위저
    • 2021.08.22 00:07:30
    • |
    • 신고
    • 리원점점 속물이 돼 가는 것 같아요...
    • 0 0
  •  
  • 히히
    • 그렇게 갖고 싶던 물건들 막상 가지면 원할 때 만큼의 설렘을 주진 못하는 것 같아요. 산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주는건지.  남이 어떤 걸 사든 나와 상관은 없는데 괜히 박탈감 들고 가격 찾아보고,,ㅋㅋㅋㅋ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작가님도 그렇다니 위안이 되네여~
    • 0 0
  •  
  • 대대
    • 제가 물건을 사는게 아니라 물건이 저를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물건이 제 가치를 매기는 느낌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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