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인 땅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영화]

글 입력 2021.08.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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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영화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2017)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냈다. 필자가 비록 네모난 화면을 통해 확인한 지구 반대편의 소식에서는 총성과, 비명과, 눈물과, 선혈만이 가득했다. 요 며칠 사이 필자는 그들의 소식을 뉴스로, 그리고 소셜 미디어로 접하며 크게 분노했다가, 숙연해졌다가, 깊은 슬픔에 잠기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슬픔을 느끼는 것조차 미안한 슬픔이 있다. 평소처럼 글을 쓰려다가,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 사로잡혀 글을 계속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어떤 글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답이 없는 고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메아리쳤다. 벗어나고자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 봤지만, 왠지 모를 죄스러움에 이내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만난 영화가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2017)이다. 영문 제목으로는 'The Breadwinner'다. '브레드위너'는 빵을 마련하는 자, 즉 '가장'을 뜻한다. 아일랜드, 캐나다, 룩셈부르크가 공동 제작하였고 감독은 노라 투메이(Nora Twomey)이다. 캐나다의 작가 데보라 엘리스(Deborah Ellis)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국제 영화제를 비롯하여 해외의 많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관람 가능하다.

 

영화는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의 이야기를 10대 소녀 '파르바나'의 시선으로 다룬다. 영화 속 시기는 명시되지는 않으나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집권 시기인 2001년도로 추정된다. 작품에서는 여성이나 어린아이, 노인에게까지도 무차별하게 가해지는 탈레반의 무자비하고 가혹한 폭력을 담아냈다. 또한 오랜 전쟁으로 파괴된 아프간의 사회상과 억압적인 일상을 그려낸다.

 

더불어 영화에서는 아프간의 여성이 남성의 동행 없이는 홀로 밖을 돌아다닐 수 없거나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금지된 모습, 그리고 부르카*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모습이 나타난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고 있는 아프간 여성 인권에 대한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부르카(burka) 란?

: 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복식 중 하나로, 눈 부위의 망사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의상

(출처_네이버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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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카불에 위치한 어느 거리에서 시작한다. 파르바나는 전쟁에서 싸우다가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 남동생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10대 소녀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카불의 거리에서 돗자리에 물건들을 늘어놓고 팔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여성의 교육은 금지되었으나 교사였던 그녀의 아버지의 교육을 받은 덕에 아프간에서 통용되는 언어인 파슈툰어와 다리어를 읽고 쓸 줄 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왔던 이 다섯 식구의 집으로 어느 날 갑자기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닥친다. 그녀의 아버지의 과거 제자이기도 한 인물 이드리스가 탈레반 세력을 이끌고 그녀의 집을 방문해 그녀의 아버지를 감옥에 감금하려 끌고 간 것. 여성에게 금지된 교육을 시켰다는 것과 불온서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그 사건 이후 이 가족의 생계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탈레반의 통치로 인해 여성이 남성의 동행 없이는 외부 활동이 일체 금지되었는데, 아버지가 끌려감으로써 이 집안의 남자라곤 어린 남동생이 전부였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집 안의 식량은 떨어져 나가고, 파르바나는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지만 상인들은 탈레반의 눈치를 살피며 소녀인 파르바나에게 판매를 거부한다. 거리 곳곳에는 탈레반 세력들이 반대파와 여성들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식량을 구하는데 실패한 파르바나는 머리를 자르고 과거의 죽은 친오빠의 옷을 입으며 남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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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을 한 파르바나는 거리에서 식량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혹여나 들킬까 봐 처음 거리를 나설 땐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지만 그녀는 식량을 구하는 것에 성공한 이후로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끼며 크게 좋아한다.

 

그러던 중 본인처럼 남장을 하고 거리에서 돈을 벌며 가족을 부양하는 또래 친구인 샤우지아를 만나게 되고 둘은 우정을 쌓는다. 파르바나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감옥을 찾아가지만 쉽지 않다. 그녀는 한 번도 입지 않은 드레스를 팔아 돈을 마련하여 샤우지아의 조언에 따라 감옥을 지키는 탈레반 세력에게 뇌물로 건네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되찾으려면 더 큰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샤우지아의 조언에 둘은 함께 여러 일거리를 찾아 한다.

 

한편 파르바나 어머니의 사촌 도움을 받아 카불을 떠나 언니의 혼인이 진행되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놓고 이곳 카불을 떠날 수 없었던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만나고자 어머니와 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옥으로 향한다. 그 와중에 사촌이 보낸 청년은 파르바나의 집에 도착하고,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을 데리고 떠나고자 한다. 어머니와 언니는 청년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부재한 파르바나를 두고 갈 수 없다며 크게 저항하지만, 청년은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게 그들을 차에 태워 출발한다.

 

파르바나는 선의의 탈레반 세력 인물인 라자크의 도움을 받아 결국 아버지를 감옥에서 빼내는 데 간신히 성공하고, 그녀의 가족들 또한 우여곡절 끝에 청년에게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총성음이 멀리서 들리기 시작하며 미국 공습을 알리는 전조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파르바나의 가족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집으로 향하고, 수레에 아버지를 태운 파르바나도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

 

영화는 파르바나를 중심으로 위와 같은 장면들이 진행되면서, 소년 술레이만의 모험 이야기가 동시에 서브플롯*으로 진행된다. 술레이만 이야기는 가족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전해진다. 환상적인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술레이만 이야기는 괴수가 뺏어간 작물 포대를 찾아 엘레펀트 킹에게 향하는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동화 속 이야기가 가족의 상황과 교차되어 진행되고 영화 막바지에 이를수록 점차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이야기의 흐름에 흥미를 불어넣고 숨겨진 가정사에 대해 밝힌다. 술레이만이 과거 파르바나의 죽은 오빠였던 사실과 죽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 대사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서브플롯(subplot) 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중심 플롯과 병행하거나 엇갈리며

흥미를 더해 주어 작품의 전체적인 효과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출처_네이버 국어사전)


 

내 이름은 술레이만.

우리 엄마는 작가, 아빠는 선생님.

내 누이들은 늘 서로 다투지.

하루는 길거리에서 장난감을 발견하고 주웠어.

근데 터져버렸지.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나. 그게 끝이었거든.

 

영화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2017) 中

 

 
이 대사를 들으며 필자는 고개를 파묻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성이 그대로 아이의 입으로 발화되는 순간이었다.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 지끈지끈 달아오르는 머리를 붙잡고 계속해서 영화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영화에선 또 한 가지 아이러니하고 마음 아픈 장면이 등장한다. 파르바나와 샤우지아의 이별 장면이었다. 영화 막바지에서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구하고 카불을 떠나기 위해 자신처럼 남장을 했던 친구인 샤우지아에게 이별을 고한다. 다음 만남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둘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뒤돌아서는데 그 순간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뤄진다.


 

네가 말했던 해변에서 만나. 달이 바다를 끌어당기는 곳.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

-

그때는 널 못 알아볼 텐데, 오테시.

-

그럼 좋은 가격에 예쁜 청석을 팔면 되지.

-

그럼 그때까지 안녕.

-

그때까지 안녕.

 

영화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2017)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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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바다를 끌어당기는 곳. 너무나도 일찍 아픔을 깨달아버린 아이들은 땅에는 지뢰가 묻히고 하늘에는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곳이 아니라 그저 에메랄드빛의 물이 넘실대는 해변을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별 전 20년 뒤에 그 해변에서 만나자며 약속을 한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시기인 2001년도에서 20년이 흐른 2021년도인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세력의 재집권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도 가혹하기만 한 현실에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번이고 불편한 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공감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이야기도 잠깐 곁들이지만 역사와 종교,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영화에서 많이 삽입되지 않았으니 어렵고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다. 그저 10대 소녀인 파르바나의 시선에 녹아들어 90분 동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러면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이기도 한 '브레드위너(Breadwinner)' 즉,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10대 소녀의 이야기가 당신 마음을 파고들 것이다. 더불어 아픈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뜨거운 염원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영화 결말에서 파르바나의 마지막 대사는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우리는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인 땅이다.

우리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들 사이에 있다.

우린 힌두쿠시산맥 기슭 안 균열된 땅이다.

북부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그을린 땅,

얼음 산봉우리와 대조되는 검은 돌무더기 토양.

우리는 오리아나, 고귀한 이들의 땅.

목소리가 아닌 말의 가치를 높여라.

꽃을 피우는 것은 비다.

천둥이 아니다.

 

영화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2017) 中

 

 

결코 이 땅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국기를 짊어지고 시위를 벌였던 최근의 뉴스 장면이 떠올랐던 대사였다.

 

목소리가 아닌 말의 가치를 높이는 것.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정신이 담기기도 한 이 대사를 통해 껍데기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말 그 자체에 담고 있는 가치를 높이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이라는 정신을 다시금 그 땅에 노래할 수 있는 날들이 하루빨리 되찾아 오기를. 꾸준한 관심은 물론이고 현재 필자 본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행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끝으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감히 그들의 평화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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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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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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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다영
    • 본 글의 필자입니다. 본문에 첨부되지 않은 정보가 있어 댓글 남깁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영화의 원작자 데보라 엘리스는 실제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수개월간 파키스칸 국경의 아프간 난민촌에서 난민들과 함께 지내며 방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다수의 평론가로부터 '아프간의 현실을 이야기의 형태로 날카롭고 담대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영화, 필자가 강력 추천합니다! (넷플릭스에서 관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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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 영화를 보며 놓쳤던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하고 담아둘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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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 좋은 리뷰 덕에 영화를 더 오래, 마음 깊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고 있을 수많은 파르바나들이 하루빨리 희망을 찾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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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방향키
    • 연극  "그을린 사랑"이 생각 나면서 눈물이 납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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