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자를 말하다, 그림자로 말하다. - 후지시로 세이지: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展

글 입력 2021.08.1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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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로 세이지: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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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카게에(그림자 회화)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그는 ‘동양의 디즈니’라고 불리기도 하며, 작품의 주제 역시 희망, 사랑, 공생과 같이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점은 그는 보통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징하는 ‘그림자’를 통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다. 이에 기인하여 필자는 세이지의 작품을 노장사상의 실천적 행위로 해석해보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세이지의 회화는 다양한 사조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물 표현에서는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영향을 받은 피카소가, 색종이(셀로판지)를 오려내는 기법에서는 마티스가, 깔끔한 그래픽 아트에서는 로트렉이 떠올랐다. 그가 전달하는 긍정적인 분위기에서는 데이비드 자민의 작품관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편 세이지는 단순히 긍정적인 주제만을 표현하는 데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그는 성경이나 라마야나(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와 같은 신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하고, 원전 사고나 전쟁 피해 등 문명비판적 소재를 주제로 작품을 창작하기도 한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계속된다. 시각 예술에서 ‘시각적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기분 좋게 관람하고 올 수 있는 전시일 것이니, 꼭 한 번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Positive Vibes!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은 문자 그대로 ‘아름답다.’ 당신이 파블로 피카소와 같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필자에게도 그러하였듯 본 전시는 당신에게 아주 큰 시각적 만족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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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아기토끼와 고양이1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그는 ‘카게에’, 즉 ‘그림자 회화’를 창작한다. 우선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오려내어 셀로판지를 붙인다. 그러고 나서 그 종이 앞(감상자에게 보이는 곳)에는 스크린을 설치하고, 그 뒤(감상자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는 백색광을 비춘다. 그럼 셀로판지의 색과 모양에 따라 스크린에 그림자가 진다. 이것이 대략적인 카게에 제작 방식이다.


작가는 처음에는 흑백 그림자만을 이용하여 ‘모노크롬’ 카게에를 제작하였으나 점차 작품은 다채로워져 갔다. 화려하고 거대한데 세부 묘사까지 살아 있는 그의 표현력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러나 본 기고문에서 필자가 우선적으로 집중해볼 것은 그가 전달 매체로 ‘그림자’를 선택했다는 점 자체이다.


*조원재, 『방구석미술관』, 블랙피쉬, 2018, 255쪽

*에 대한 덧붙임: 그러나 세이지의 카게에는 충분히 실험적이라는 점에서 피카소 역시 ‘아름다운’ 세이지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장사상과 카게에: 음양상생과 소요유



‘빛의 화가’라는 수식어는 많이 들어 보았어도 ‘그림자의 화가’라는 말은 생소할 것이다. 렘브란트, 베르메르, 루벤스와 같이 빛을 잘 묘사했던 화가들뿐만 아니라, 빛을 잘 활용했던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의 화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젠 ‘빛의 화가’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빛’을 잘 표현하거나 활용했다는 것은 ‘그림자’를 잘 표현하거나 활용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렘브란트를 ‘그림자의 화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실 렘브란트 그림은 ‘빛’ 부분보다 ‘그림자’ 부분이 더 많은데도 말이다. 왜일까? 우리는 ‘빛’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림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 짓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이지는 ‘그림자의 화가’이다. 그는 사람들이 ‘빛’ 부분이 아니라 ‘그림자’ 부분에 집중하게 한다. 그렇게 그는 감상자에게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주목받지 못했던 부분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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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의 꿈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이 말을 할 때 우리는 흔히 빛을 성공이나 주인공에 대입하고, 그림자를 실패나 주변인에 대입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노자와 장자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세이지는 그의 작품을 통해 그것이 적절하지 않은 인식임을 증명한다.


노자는 ‘음양상생(陰陽相生)’ 즉, 음과 양은 그중 한쪽이 ‘더 좋은 것’이나 ‘더 나쁜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며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양에서 보통 음은 부정적인 기운으로 여겨지며, 양은 긍정적인 기운으로 여겨진다. ‘음(陰)’은 그 한자 뜻에서부터 ‘그림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양(陽)’은 그 한자 뜻에서부터 ‘(태양)빛’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두 ‘대립적’인 요소들은 사실 ‘하나의 점에서 비롯된 두 가지 다른 이름(此兩者同出而異名)’이라고 말한다. 한 점에서 나온 다른 두 성질에 우열을 매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자는 ‘음’과 ‘양’의 동등한 지위를 역설하기 위해 ‘음’을 강조한다. ‘양’ 역시 중요하지만, ‘양’만을 떠받드는 사회에서는 ‘음’을 부각해야 두 성질의 지위가 동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사상이 페미니즘이나 노동운동과 같은 약자/소수자 권리 옹호 사상과 연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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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부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세이지가 자신의 예술 매체로서 ‘그림자’를 선택한 것은, 빛과 그림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는 노자가 그랬듯, ‘빛’만을 떠받드는 미술사조 분위기 속에서 ‘그림자’의 지위를 ‘빛’과 동등한 것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듯하다. 설령 그에게 그러한 인식이나 의도가 없었다고 하여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세이지의 작품은 존재 사이에 우열을 매기지 않는 태도 즉 장자가 이야기한 ‘소요유(逍遙遊)’의 실천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빛과 그림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우열을 가리려는 사고’에서 벗어나 ‘소요유’를 실천하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음을 입증한다. 98세의 후지시로 세이지는 세계에서 유일한 카게에 거장이니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어쩌면 안일하고 제한된 편견에서 벗어나, ‘그게 진짜 좋은 걸까?’하는 질문을 던질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다양한 기법의 혼합



그것을 통해 ‘그림자’에 집중한다는 것은 세이지만의 독창적인 양식이지만, 그의 작품은 ‘종이를 오려내는’ 표현 기법이 사용되었기에 마티스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많은 부분을 생략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는 그의 표현 방식에서는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영향을 받은 피카소의 화법이 떠올랐다. 전시실에도 그가 마티스,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에 영향을 받았음이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나아가 그의 작품은 평면 위에 도형을 만드는 그래픽 아트였다는 점에서 로트렉의 작품이 떠올랐다. 로트렉 작품을 세이지와 같은 카게에로 표현한다면 얼마나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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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로용 유토피아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한편 그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는 점에서는 데이비드 자민의 작품관이 떠올랐다. 세이지의 희망찬 그림을 보며 필자는 자민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살이에서 불행, 절망, 우울, 냉소, 부정의 미학을 그리기는 오히려 쉽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반대를 그리는 일이다.


- 데이비드 자민 ([데이비드 자민: New Journey] 전시 中)

 


세이지와 자민은 모두 행복, 희망, 활기, 웃음, 긍정의 미학을 그린다.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살이에서 말이다.

 

 

 

재미있는 신화 이야기



이번 전시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를 작품의 주제로 다룬다는 것이었다.

 

이미 있었던 동화의 재해석이나 세이지의 창작 동화, 그리고 서유기까지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그리고 ‘아담과 하와’ 이야기, ‘예수의 생애’와 같은 성경 속 일화를 다루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라마야나’를 주제로 한 작품을 꼭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필자는 해당 이야기의 내용은 잘 알지 못하여 서사에 공감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힌두교 문화권 특유의 화려하고 섬세한 기하학적 문양을 잘 살려내었기에 아름다움이 탁월한 작품이었다.


한편 성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의 내용은 ‘아담과 이브’, ‘바벨탑’, ‘노아의 방주’ 등 아는 부분이 많았기에, ‘이걸 이렇게 표현했다니!’ 하는 반가움도 많이 일었다.


다만 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재해석한 것에서는 조금의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은 밝은 피부색으로 표현한 반면, 갸롯 유다(예수의 12제자 중 예수를 배신한 제자)에 해당하는 인물의 피부색은 검은색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색채 간 우열을 보이려 했던 것으로 해석되는 듯하여 아쉬웠다.


또한, 그는 후쿠시마 원전 피해지와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지의 초상을 담는다. 그러한 작품은 그저 황폐하기만 한 것이기보다 평화롭고 희망적인 분위기를 담는다. 이를 통해 그는 문명 비판적 소재를 사용함과 동시에 그의 희망에의 소망을 보여준다. 애초에 그가 카게에를 제작하기 시작한 계기 역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황폐화한 일본에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함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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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사랑의 기적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시간 내어 관람하고 올 가치가 충분한 전시이니 꼭 한 번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10월 12일까지 진행되고 입장료는 일반 18,000원, 청소년 14,000원, 어린이 10,000원이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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