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무도 보지 못하는 눈물을 닦는 자, 만신

글 입력 2021.07.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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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속신앙에 이전엔 느끼지 못한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이맘때 즈음이다. 논문으로 한국과 일본의 샤머니즘을 비교하며 그것이 각국의 여성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양상을 탐구한 적이 있다. 샤머니즘은 한국에서는 주로 무속신앙으로, 일본에서는 신도 신앙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여성의 피를 불결하게 여기며 여성은 제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 보수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신도 신앙과 달리 무속신앙은 오히려 여성의 주도하에 관습화되어 가부장적 사회 풍조에 균열을 가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분석이 뇌리에 박혀 시작한 연구였다. 단순히 비과학적이고 전근대적인 미신으로 치부되는 무속신앙이 사실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자들을 위한 문화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의 발견이었다.


무속신앙은 남성이 ‘바깥일’을 도맡으며 공적인 영역을 점유하던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도 마을과 이웃 단위의 커뮤니티를 결속할 수 있게 한 수단이 되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던 사회적 약자들은 굿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대자연과의 관계를 구축하며 예술 행위를 향유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담장 너머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 절대자가 되어 신도 신앙의 관습적인 여성 억압과 무관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 일본의 작가들과 달리, 한국의 작가들에게선 무속 신화를 재현하거나 직접 무당이 되어 굿과 비슷한 작업을 하는 등 무속신앙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빌려오는 경우를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속신앙에서 여성은 억압받지 않는 주체였다.


모두가 천시하고 하대하는 곳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이 단단한 결속이 일어났다는 것, 그 중심에는 신과 인간의 매개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은 점집에 한 번 들른 적 없을 정도로 무속에 무관심했던 나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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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개봉한 이 영화의 뒤늦은 관객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만신’은 여자 무당을 높여 부르는 이름으로, 이 영화는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이자 ‘나랏무당’인 김금화 만신의 삶을 배우들의 재연과 인터뷰 및 회고 등 실제 영상을 교차하며 다각적으로 제시한다. 파란만장한 한반도의 현대사를 거치며 이 땅의 넋을 위로했던 그의 일대기를 오로지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춰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마치 시대의 고통을 찬찬히 쓸어내리는 두 시간짜리의 굿처럼 진행된다. 오랜 역사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셀 수 없이 다양한 형태의 문화로 존재하고 있지만 언제나 베일에 감춰진 신비주의적 소재로 객체화되었던 무속신앙을, 그것도 단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다루는 이 영화가 궁금했다.

 

 

 

넘세에서 금화로


 

영화는 김금화 만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일대기를 그려나간다. 김금화 만신은 이 너머 아들이 태어나길 바란다는 의미로 ‘넘세’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그는 시가의 모진 대우 끝에 다시 친정집으로 돌아오고, 정체 모를 무병을 앓다가 만신인 외할머니로부터 내림굿을 받아 본격적으로 무속의 길에 들어선다. 태어남과 동시에 누군가의 탄생을 바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는 ‘비단꽃’이라는 의미의 ‘금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특별한 삶을 시작한다.


무당의 길은 운명론적이다. 되고 싶을 때 될 수 있는 것도, 피하고 싶을 때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의에 상관없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개척해나가는 김금화 만신의 이야기가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그가 낮고 천하게 여겨지는 곳을 향하는 데에 스스럼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의 거대한 힘을 모아 마을의 병들고 가난한 자들에 쏟아붓는다. 굿을 하는 도중 종교인들이 찾아와 물러가라고 기도하는 잡귀들을 오히려 배불리 먹이리라 선언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학자는 만신이 서 있는 작두가 바로 만신의 위치를 상징한다고 밝힌다. 모두를 대신해 홀로 아픈 곳을 디디고 서서 고통을 위로하는 그 길을, 김금화 만신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차가운 시선 속에서 꿋꿋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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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의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김금화 만신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태도의 변화 과정을 제시하며 시대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김금화 만신의 무속 활동은 한국 전쟁 당시에는 간첩이라는 오인 때문에, 이후 70년대에는 효율적이고 실리적인 가치를 추구한 새마을운동의 일환인 ‘미신타파 운동’으로 인해 탄압받는다.

 

굿은 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국풍 81’을 기점으로 민속 문화로서, 혹은 반독재 운동권의 문화로서 장려되다가 무속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해외와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다시 천시와 하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TV, PC 등 다양한 매체가 보급되고 굿을 하나의 콘텐츠로서 미디어에 투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부터 김금화 만신에 대한 대중의 주목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김금화 만신은 2019년 향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나랏무당’으로서 국가의 주요 행사와 매체 활동을 통해 무속을 알리고 굿을 펼치는 데 매진한다.


무속을 향한 시선은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그것이 경외심에 기인한 것이든 경멸과 공포에 기인한 것이든 두려움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속 신앙을 멸시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을 앞두면 사주를 보고 굿을 한다. 단순히 미신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김금화 만신이 인생을 통해 보여주었듯,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이 가장 외롭고 슬픈 곳으로 찾아가 칼날을 밟고 올라서는 숭고한 무속의 정신에는 누구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적인 재난과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김금화 만신은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위치에서 상처를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세상에 없는 영혼까지 정성스레 위로하는 그의 굿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좁은 시야 속에서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에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초월적인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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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다는 의미를 형상화한 ‘무당 무(巫)’자의 곧게 뻗은 중앙선처럼 김금화 만신은 지고하게 무속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산다. 8~90년대 이후 다양한 미디어에 모습을 내비친 그의 굿을 보고 혹자는 자연물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굿의 원형과 거리가 멀다며 비판한다. 그러나 김금화 만신은 무대 위에도 신은 있다고 답하며 무속의 본질이 문화·예술로서의 규격화된 정체성이나 표면적인 장치보다 보이지 않는 영혼을 위로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누군가는 전통성과 순수성을 의심했으나 김금화 만신은 그저 시대의 바람을 타며 그때 찾아오는 신을, 그때 필요한 사람과, 그때 서 있는 장소에서 이어줬을 뿐이다.


영화는 말한다. 미디어가 김금화를 이용한 것인지, 김금화가 미디어를 이용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확실한 것은, 카메라 역시 김금화의 무구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김금화 만신의 굿은 대다수가 세상의 진실이라고 믿으며 그 권력에 순응하는 미디어마저 자신의 것으로 포괄하여 수단으로 이용했을 정도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도 분명하여 지금까지도 바래지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다. 영화는 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새론 배우가 영화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쇠걸립(굿에 필요한 무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쇠나 쌀을 얻는 행위)을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총과 탄환부터 현대를 상징하는 카메라까지 역사를 상징하는 다양한 쇠가 모이는 장면은 만신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그의 다음 굿을 이어나가게 하리라는 소망을 품게 한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위로는 여전히 남아 산 자의 숨으로 내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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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보러 가자' 해서 갔더니 영화를 틀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며 나오는 천경자 선생의 말은 무속의 역할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무사한 영화 촬영을 위한 김금화 만신의 고사로 시작하여 쇠걸립으로 끝나는 영화는 정말 한 차례의 굿과 같았다. 영화 속의 굿에서 온 위로인지, 굿과 같은 영화에서 온 감동인지 몰라도 어딘가 답답한 부분이 씻겨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굿이 영화의 형태로 치러질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은 단단한 무언가를 발견한 쾌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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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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