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람 구경 중 (Sightseeing)

글 입력 2021.07.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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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은 어딜 간대

뭐가 저리 바빠 꼭

혼이 빠진 것 마냥

고갤 푹 고갤 푹 또는 폰에

시선 고정

야 앞 좀 봐 위험 위험해

대낮 버스 정류장


앞에 우글우글 대는 게 막

징글징글해 꼭 찡그린 고양이 표정

다들 그리 어디로 간대

행선진 또 어딘데 궁금하잖아

넌 어딜 가는데

끌려가는 듯한 꼴이 칙칙해

얼굴이 두 다리 무거워 보여 Babe

 

 

저번 달 말부터 미술관에서 전시장 지킴이 봉사를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전시장을 지키며, 전시장 한편에 서서 관람객들이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작품을 만지거나 촬영이 금지된 작품을 찍을 때 그들을 제지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한 번 할 때 약 세 시간 반 동안 활동을 진행하는데, 정해진 구역에 계속 서 있어야 하기에 전시장 전체를 관람하거나 어떤 작품을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은 없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 공간만 미술관일 뿐(물론 이 자체도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하다), 크게 미술과 맞닿은 봉사활동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전시된 작품 마냥 멀뚱멀뚱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니 왠지 다리가 무척 아픈 기계가 된 것만 같아 나에게 주어진 세 시간 반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얻은 일이다. 이 이야기와 관련된 웃픈 일화도 하나 있다.


주말의 미술관은 가족 단위 관람객이 무척이나 많다. 그렇기에 활발한 아이들에 의해 작품이 변형되지 않도록 지켜야 할 임무를 받은 나는 열심히 내 앞의 한 작품을 감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그 작품만 뚫어져라 보고 있을 때 엄마의 손을 잡고 나타난 한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건 뭐야?” 아이의 손가락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나는 순간 당황하여 동공을 데굴데굴 굴리며 경직된 몸으로 작품인 척(?)을 했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로 괜히 혼자 '내가 그렇게 영혼이 없어 보였나?', '차마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루해 보였나?'라고 생각하며 반짝이는 눈을 장착한 뒤 미술관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고, 작품을 어떤 방법으로 관람하는지, 유독 어느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지 등 관람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구경 [구:경]

명사

1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봄.

영화 구경.

2 흥미나 관심을 일으키게 하는 대상.

무슨 좋은 구경이라도 벌어졌다는 듯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3 직접 당하거나 맛봄.

수영은 못 하더라도 물 구경이라도 한번 했으면 원이 없겠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단어 ‘구경’의 의미는 위와 같다. 이처럼 구경은 무언가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둘 때 많이 쓰이는 단어이기에, 평소 지겹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보는 사람을 ‘구경’한다는 말은 왠지 어색한 것도 같았다. 당장 집에만 있어도 나를 포함한 사람 여럿을 볼 수 있고, 문을 열고 나가면 더더욱 많은 사람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어디서나 늘 볼 수 있는 사람임에도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관심 한 꼬집씩을 주니 묘하게 새로운 기분이었다. 내 갈 길 가기만, 내 할 일 하기만 바빴던 삶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고, 그 속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는 나를 보자니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이 속에서 몽글몽글 생겨나는 듯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떠한 평가든 그들을 재단할 수 있는 생각은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다. 하나하나 의식하며 지내지는 않지만 나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사람이 나를 보고 어떤 평가를 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집중하다 보면 악동뮤지션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라는 곡의 가사처럼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팔다리가 앞뒤로 막 움직이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무런 기색 없이 그저 지나치는 사람들이지만 수많은 날과 시간, 장소 중에 하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딘가 인연 같다는 이상한 공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쓸데없는 상상이 가끔은 지루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안경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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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대와는 조금 달랐던 활동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하는 봉사라고 하더라도 자칫 기계적으로 봉사 시간만 채우고 말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방학이라고 집에서 가만히 전자파를 잔뜩 내뿜는 유리판만 보고 있었던 나에게 소소한 일상을 구경하는 재미를 주었다는 점에서 영 의미 없는 활동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전에 한 도서 리뷰를 작성하며 예술가는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들은 이야기이기에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그래도 이를 실천하기에는 몹시 어렵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면 애초에 일상이라는 것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사람 구경’을 하며 단순히 날 둘러싼 세상을 무던히 살피는 행위만으로 마법 가루라도 뿌린 듯 특별하지 않았던 것이 특별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 사람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전시를 다 보고 나면 다들 어디로 갈까?'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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