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별적인 영원의 순간 -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7.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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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2014년, 문학동네 출판

 



영원이라는 여정


 

영원은 '무한한 시간의 끝'이라는, 존재 자체로 모순의 의미를 담는다. 동시에 아득한 서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동시에 현실과 환상 속에서 서정으로 저장되어 기억된다. 순간의 생각, 대화, 그리고 감정은 기억 속에서 반복되며 개인에게 끝없는 '영원'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영원의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동시에 단수(單數)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현호의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는 이 '영원'에 주목한다.

 

각각의 시구절과 구절 사이에는 지난 과거의 계절과 미래의 별자리, 그리고 현재의 방이 함께 존재한다. 그 행간을 채우는 것은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보편타당하고도 애매한 이 시간 가운데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 말하자면 후회나 체념과 같은 복수(複數)의 시간이다.

 

 

이생은 전생의 숙취 같다. 술 취한 고아들은 잘 자고 있을까. 홀로인 사람에게선 때 이른 낙엽 냄새가 나서 돌아보게 된다.


인간의 마음으로 끝내 완성할 수 없는 영원이란 말을 나는 발음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시인의 말 中

 


이현호는 인간 개인이 영원의 말을 끝내 완성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의 영원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사소해서 정형화된 개념이나 지향점으로 통합해 말할 수 없는 시간들, 그렇지만 그 바깥에서는 도무지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설령, 영원을 약속하는 순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던 타인이라 해도, 본인의 영원을 전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된다. 이에 영원을 발음하고자 하는 각 개인은 각자의 철저하게 개별적인 영원 안에서 그를 채우는 모든 순간의 안팎을 헤맨다.

 

 

나를 치열하게 했던 착란들은 어디로 갔을까

창밖 가로등은 제시간에 불을 밝힌다, 여느 때처럼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 나는 저주하는 이유를 모르고 여전히 저주한다 / 불행하게 태어나는 건 없다는 당신의 말을

너 따위가 알까, 추락한다는 것

죽을힘으로 뿌리치면 죽을힘으로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은 / 인간을 향한 갈망을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맹목의 시간 속에

뜨내기 같은 마음의 바큇자국을 망망연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무서운 게 없어져버렸다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궤적사진 中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여러 갈래의 시간들 사이로, 이현호는 슬픔과 그리움을 거듭 그려 나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원은 어쩌면 맹목적인 착란이다. 산발적인 감정이 발산되는 공간 자체다.

 

 

시간들이 네 얼굴을 하고 눈앞을 스치는

뜬눈의 밤

매우 아름다운 한자를 보았다

영원이란 말을 헤아리려 옥편을 뒤적대다가


조용히 오는 비 령(零)


마침 너는 내 맘에 조용히 내리고 있었으므로 / 령, 령, 나의 零 / 나는 네 이름을 안았다 앓았다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령(零) 中

 

 

더불어 영원이라는 복수의 시간 안에서는 무수한 변화가 뒤따르기도 한다.

 

이현호의 령(零)에는 '떨어질 령(零)'의 뜻으로는 미처 표현되지 않는 새로운 의미를 가진 글자의 탄생과, '너'의 얼굴을 한 모든 시간들 속 고독과 사랑의 합주가 나타난다. 그를 거듭 헤아리는 과정에서 의미와 감정은 분산되어 끊임없이 재탄생되며, 영원이라는 여정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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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의 이면



지극히 개인적인 영원을 쫓는 일은 곧 삶의 목적을 탐구하는 일과 닮아 있다. 개인은 현실 속에서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스스로가 가진 무궁한 영원의 순간을 헤아린다.

 

그 과정은 개인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되며, 그 여정이 어떤 방식의 결론을 갖게 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어쩌면 자신조차) 모를 일이다.


삶의 목적을 찾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일관된 삶의 규정이나 목적은 존재하지 않으며,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삶의 목적을 가진 개인들조차 종종 그 불투명성에 혼란을 갖는다. 일상 속으로 불쑥  찾아오는 고통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의심케 한다. 삶의 목적은 곱씹을수록 깔깔한 모래처럼 입안을 메우고, 동시에 의식은 끝없는 물음표를 그린다.

 

이에 때로는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며, 스스로의 인생임에도 마치 '내'가 그를 거쳐 가는 타인처럼 느껴지는 순간 또한 발생한다.


 

(…) 이생의 제목은 전생의 죄목이었다는 농담을 알약처럼 삼키며 나는 내 그림자 속에 누워보네 그것은, 그림자의 그림자…… 거울 안의 겨울…… 단 한 번도 인생이 나의 소유권자인 적 없었다는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환희였네 이렇게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모든 익사체는 떠오르려고 한다-에밀 시오랑에게 中

 

 

이현호의 시에는 종종 이와 관련한 고뇌가 나타난다. 하지만 영원을 향한 여정, 그리고 삶의 목적에 대한 탐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좌절이나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정리된 한 문장'을 내보일 만한 생의 무의미함을 깨닫는 것은 삶에 또 다른 해방과 각성을 가져다준다.

 

 

나는 살고 있고, 내가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삶을 취미로 한 지 오래되었다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오래된 취미 中

 

 

삶의, 그리고 존재의 목적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이현호는 이 오래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않는다. 그는 에밀 시오랑이 그랬듯 그저 '나'를 '견디고', 개별적인 영원의 순간을 그리면서 그저 '존재한다'. 때문에 그의 시는 영원의 공간 안에서 부유하며 그 어떤 결과론적인 답을 내놓지 않는다.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는 '영원'과 '삶'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쉼 없는 사유와 이야기를 담았다. 이현호는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영원을 그리며 삶을 견딘다.

 

이현호의 시가 향하는 '불가능'의 이면에는 오히려 자유와 깨달음이 있다. 성공 혹은 실패로 매듭지어지지 않는 사고와 행동은 결국 불가능 안을 헤엄치는 삶 속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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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문학동네, 2014.

- 김나영, ˹라이터의 운명을 생각한다:이현호,『라이터 좀 빌립시다』(문학동네, 2014)˼, 『문학동네』21.3,문학동네, 2014.

-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 현암사, 2020.

 

 

[허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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