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란하게, 흐릿하게, 희미하게 - 우리의 사람들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6.3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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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소설은 박솔뫼 작가의 단편소설 「우리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사람들」은 『문학과 사회』 2016년 여름호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올해 출간된 박솔뫼 작가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박솔뫼 작가는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으며, 최근에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나는 박솔뫼 작가의 대중적 인지가 특히 반가운데, 이는 아무래도 문단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은 사실 현대성, 시대성으로 특징지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출판계에는 반드시 오늘날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종류의 소설들이 있다. 현재 대중의 욕구를 발빠르게 파악하고 그것을 소설 속에 남들보다 빠르게 담아내는, “오늘날의 이야기”로 승부하는 작품들 말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나는 리얼리즘이라는 범주로 생각하는데,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으며 작품 속 의미를 찾는 것에 익숙해진 현대의 독자들에게 이들 작품은 큰 흥미로 다가온다. 문학은 사회와 분리되지 않으며 사회의 요구와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는다는 입장의 소설들이다.


그런데 모든 소설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단일한 하나의 예술로서, 지향성이 은폐된 서사로서 존재하는 작품들이 있다. 일종의 감각과 감정, 혹은 단순한 구조적인 배치로서 승부하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배수아 작가의 소설 『뱀과 물』과 같은 작품은 육체적이고 퇴폐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이미지를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것만으로 소설을 끌고 간다. 소설이라는 작품에 있어서 사회와 가까이 결부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예 반대로 사회에서 멀어져 오직 개인, 혹은 한낱 이미지만으로 전개되는 소설이 있고, 그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소설들이 있다.


박솔뫼의 소설이 오늘날 대중들의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양 극단 사이 가장 절묘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힐링에 대한 이야기, 지친 현대인의 마음속 결핍된 무언가를 채워주는 느낌, 더 나아가 연대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다만 인간의 인식과 사고와 모순에 대한 재치있는 접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사람들」에 나타나는 문장들은 섬세하고, 전위적이고, 그렇지만 가장 인간 본연에 가까운 느낌이다. 박솔뫼 식 서술 속에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날카로운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크기변환]우리의 사람들.jpg



「우리의 사람들」은 후지산의 주카이숲을 여행한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떠올리며 그 장면들을 상상하고 있는 한 여성 화자의 서술로 진행된다. 화자는 친구들이 주카이숲에서 벌이고 있는 사건들을 떠올리고, 또 자신이 매년 새해를 맞이했던 온양에서의 숙소를 떠올리고, 이제는 가정을 이루어 부산에 머물고 있는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한다. 주카이숲과 온양과 부산. 서술자는 세 장소에 대한 회상과 상상을 반복한다. 주카이숲은 후지산의 은근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한편 자살자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유명하다. 온양은 온천과 전통시장 투어를 할 수 있는 마음 편한 공간이고, 부산은 딸아이의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삶의 공간이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 세 공간은 서로 교차되며 낯선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작가의 이러한 혼란스러운 교차 서술은 이전의 다른 소설들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앞서 말했던 세 공간을 생각할 때, 주카이숲은 음습한 분위기와 자살자의 사연을 통해서 죽음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한편 부산에서의 딸아이와 유모차의 모습은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온양에서 경험하는 여행과 힐링의 과정은 재생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과 삶과 재생, 이 세 가지가 교차되면서 소설의 서사는 더욱 혼란스러워지지만 그 속에서 기존에 느낄 수 없었던 오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또한 주인공의 주변인물 역시 여러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떠안고 있어 특이하다. 특히 박솔뫼 작가는 특유의 문장과 단어 배치를 통해서 그 이질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테리야마는 아무래도 테라야마와 헷갈리지만 아무튼 테리야마라는 그런 호칭으로 불리지만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고 일본인과 한국인과 스위스인과 프랑스인 멕시코인 들과 가장 빠르게 친해졌다. 어떤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문제에 관해서는. 후지노에 모인 한국인 중국인 독일인 일본인은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말은 때로 너무나 중요한데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말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나는 말이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여 결국에는 어떤 일본어도 한국어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손으로 이건 스펀지고 이건 곤약이고 이건 오래된 종이라고 만져보고 손으로 말의 촉감과 크기를 가늠하기만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주변인물인 테리야마는 ➀테리야마와 테라야마라는 음소적 혼란 속에서 존재하고 있고, ➁일본 이름을 가졌지만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고, ➂일본인, 한국인, 스위스인, 프랑스인, 멕시코인 등 이채로운(?)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이어서는 갑자기 이야기의 초점이 테리야마에서 벗어나 아주 감각적인 촉각의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고, 일관되지 못한 장면들이 연이어 뒤에 이어진다.


작가가 이런 배치를 하고 있는 것은, 어떠한 사회적 의미나 가치를 떠나 우리에 삶에 있어서 매우 독특한 지점을 자극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공부를 해보아야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저 소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의 전환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 느껴진다. 작가의 파란만장한 서술 속에서 나는 서로 다른 분위기를 연속적으로 경험했는데, 그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박솔뫼 작가의 서술에는 혼란하고 흐릿하고 희미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삶에 가까운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현상들을 분리하여 분별하지만, 세상은 인간의 언어처럼 마냥 쉽게 분리되지만은 않는다. 우리의 기분이나 선택을 설명할 때, 우리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것을 구체화하여 명확하게 설명하곤 한다. 그렇지만 정말 우리의 감정이 그렇게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감각과 감정은 가장 모호한 서술 속에서만 최소한으로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다. 그 지점을 박솔뫼 작가가 섬세하게 짚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 박솔뫼 작가의 작품을 충분히 친절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는 나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생각 정리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인데, 더 오래 생각해보고 의미있는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일전에 박솔뫼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소개한 바 있다. 혹시 박솔뫼 작가에게 관심이 있다면 다른 글들을 함께 참고해주어도 좋을 것 같다.

 

 

박솔뫼.jpg
박솔뫼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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