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너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 도희야 [영화]

글 입력 2021.05.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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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야>라는 제목


 

도희야1.jpg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의 제목은 영화의 안에서 정해진다.

 

<베를린>처럼 영화의 배경이 곧 제목이 되기도 하고, <암살>처럼 서사를 추동하는 핵심 행위가 제목이 되기도 하며, <박열>이나 <동주>처럼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이 되기도 한다. 왜 하필이면 배경인가, 행위인가, 이름인가. 디테일한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다. 결국 영화 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니 제목은 그 영화의 요점이 무엇인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화살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제목들이 단어형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어만큼, 보기에도 듣기에도 구체적이면서 완결성이 느껴지는 명명의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 <도희야>의 제목은 묘하다.

 

이 영화는 얼핏 지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도희’(김새론)라는 소녀의 불우한 삶을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지 그런 의도였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도희>가 되는 것이 좀 더 정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도희’라는 명칭(名稱)이 아니라, “도희야.”라는 호명(呼名)을 제목으로 삼았다. 이 제목은 읊조리는 순간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도희라는 이름의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이름을 불러주는 또 다른 한 사람. <도희야>의 요점은 이 둘 사이에 있다.

 

 

 

너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도희야2.jpg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자, 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시작 정도는 어렵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양아버지인 용하(송새벽)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는 도희를 처음 목격했을 때, 새로 부임한 파출소장으로서 영남(배두나)이 폭행 피해자인 소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파출소장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을 제지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 이름을 계속 불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영남은 용하로부터 도희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내기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희의 애정결핍적인 모습과 그로부터 비롯된 집착과 자해의 증상까지 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영남은(그녀가 시골 파출소로 좌천된 이유이기도 했던)레즈비언이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하필 용하에게 들켜버리기까지 한다. 가정폭력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자 했던 선의마저 이상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성추행으로 왜곡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영남은 좌절하고, 도희는 술 취한 용하가 있는 녹슨 문 너머로 다시 내던져진다.


다행히 도희가 발휘한 기지 덕분에 오해는 해소되고 영남은 풀려난다. 하지만 악당의 퇴장이 곧장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용하는 비록 구제불능의 난봉꾼이었으나,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도희를 보살펴주는 보호자였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용하가 체포되자 도희는 혼자 남게 된다.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한 영남은 홀로 살아가게 될 도희를 돌아본다. 그녀는 망설인다. 그 자리에서 도희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는 순간, 이전과 같은 고난이 다시금 반복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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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는 연결이지만,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영남은 피해자마저 의심하고, 선의마저 자격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버겁다.

 

하지만 영남은 도희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나랑 같이 갈래?”라고 묻는다. 도희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영남의 세계는 더욱 무거워지고, 먹구름 낀 하늘은 비를 쏟기 시작한다. 그들의 순탄치 않을 내일을 암시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희의 이름을 불렀고, 앞으로도 부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요점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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