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러분에게 전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5.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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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에 원동력을 주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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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매번 새로운 날짜의 일주일이 시작되지만, 루틴은 늘 같다.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며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지만 막상 화요일이 되고 수요일이 되면 금세 적응해 착실히 눈뜨고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 목요일이 되면 ‘금요일 언제 오냐, 언제 오냐.’ 목 빠지게 기다리다 기다리던 금요일이 오면 신나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 집순이로 변신한다. 하지만 꿈같은 휴일은 언제나처럼 순삭 되고 새로운 월요일이 찾아오면서 반가운 병이 도지기 시작한다. ‘아.....음.. 그냥 연차 쓸까...’ 결국 쓰지도 못하고 5분 내에 일어설 거면서 매번 질리지도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이 일이 죽을 만큼 힘들고 싫은 건 아니다. 분명 뿌듯한 순간들도 있었고, 힘들었던 만큼 이 일을 함으로써 즐거웠던 순간들도 많았다. 그냥 시작이 힘들 뿐이다. 일을 했기에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는 내 소중한 휴일이 끝났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뿐이다. 그렇기에 늘 상 반복되는 나날 중 하루를 내가 좋아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면, 더욱 힘차게 그 다음주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난 전시가 참 좋다. 우선 새로운 무언가를 향유한다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지만, 전시를 보러 가겠다는 계획 실행의 시작부터 좋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결국엔 내 휴일을 투자해서 가는 것이기에 노는 날이라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오지만, 작품을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자극이 되어 내 마음에 특별하게 돌아온다는 느낌 자체가 좋다.  특히나 만족스러운 전시를 보게 되었다면 더더욱 내 몸에서 무언가 채워지고 샘솟는 느낌이 나기에 뿌듯함이 생긴다.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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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 근처 카페 Café des Musées

 
전시를 감상하는 부분에 있어 잘 맞는 누군가와 함께 보게 된다면 그 전시는 나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시를 볼 때면 나만의 공간이 생긴 듯 오직 작품과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감상에 집중하곤 한다. 작품을 하나하나 보면서 해설과 함께 작품의 의미나 의도를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읽기 전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접근해 작품과 관련된 요소들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것도 즐겁다.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작품을 홀로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물론 만족스럽지만, 그런 와중에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한다면 그 의미의 깊이는 더욱 진해진다고 생각한다. 같은 작품을 바라보아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부분에 시선이 가있거나 꽂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기에 서로가 바라본 부분에 대한 견해를 듣는 것도 신선하고, 생각을 전달할 때도 괜스레 열의에 차 말하게 된다. 무엇보다 한 작품을 보았지만 더 넓은 시야와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되는 것 같아 알찬 기분이다.
 
이 친구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제와 날짜를 정해 예술과 관련된 얘기를 자주 하곤 했는데, 이런 시간은 서로에게 도움도 되지만 또 다른 의미론 예술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이번에도 이 친구와 함께 전시를 향유하면서 중간중간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들로 길이 새어나가기도 했지만, 전시를 보고 나서 전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끝없이 얘기하다 보니 내가 놓쳤던 부분에 대해 세밀하게 접근하게 되기에 더 오래도록 내 마음에 울림이 되어 남게 되었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친구와 같이 나에게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시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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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 엘리자베스 1세

 

 
무심코 보고 싶었던 전시이긴 했지만 사실 초상화나 자화상에 대한 작품들은 20대 초반 유럽여행을 통해 많이 봐왔기에 기대가 없었다기보단 별다른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기대 이상의 꽉 찬 느낌을 받았던 전시였다.
 
물론 각 주제에 맞춰 공간을 잘 나눠 표현했기도 했지만, 보자마자 ‘와, 디테일 엄청나다.’라고 외칠 만큼 작품에 있어서 예술가의 섬세함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가득했다. 또한 보다보면 초상화만 모여 있기에 알 수 있는 초상화가 지닌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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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부에서부터 2부로 넘어가서까지는 아직 초반이기에 작가의 섬세함을 넘어서 실사의 느낌을 준 작품들로 그저 놀라울 뿐이었지만 그러다 ‘어떻게 인간이 이 정도까지 표현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작품 가까이 점차 다가가 보기도 하였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들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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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레이놀즈, 찰스 디킨스, 넬 귄

 

 

실제로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땐 그 사람의 눈빛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상이 달라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점점 인물들마다의 눈빛에 시선이 가게 되었다. 계속해서 그들을 보다 보니 나도 함께 그들이 응시하는 쪽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었을까 추측해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눈이라는 작은 요소에서 점점 그들의 입매와 표정, 주변의 분위기까지 전체를 바라보니 그들의 성격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넬 귄’에게선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찰스 디킨스’에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윌리엄 윌버포스’에게선 뭔지 모를 인자함과 따뜻함을, 조슈아 레이놀즈에게선 자신에게 취한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전부 나의 상상일 뿐이지만 인물마다 느껴지는 그 은은한 분위기가 내가 느낀 그대로의 인물일 것만 같았고 점점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언젠가 내 친구가 말하길, 많은 시간이 걸리는 초상화를 그리든, 짧은 시간이 걸리는 크로키를 그리든 그 사람을 그리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그 대상만을 바라보기에 나도 모르는 새 애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 사람을 점점 그려나가다 보면 그 사람만의 특징적인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하고 그조차 몰랐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기에, 특히나 오랜 시간 붙들게 되는 초상화라면 더욱이 큰 애정을 쏟게 되면서 그에게 흠뻑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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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윌버포스 - 노예제 폐지에 헌신한 인생
 
 
그렇게 그리는 사람의 애정이 특히나 전해졌던 작품이 바로 ‘윌리엄 윌버포스’의 초상화였다. 이 작품은 친구였던 존 하퍼드가 노예무역과 노예제 폐지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윌버포스를 그린 작품인데, 윌버포스가 당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만 채색된 그의 얼굴에서 상냥함의 깊이가 고스란히 보이는 듯했고, 오히려 다른 부분이 채색되지 않았기에 그의 따뜻함이 더 크게 전해진 듯했다.
 
 
 
가끔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우리의 편견을 깨주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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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 - 영원히 변화하는 초상화


 

'시대의 얼굴' 전시를 보다 보면 LCD 화면을 캔버스로 삼아 소프트웨어의 무작위 선택으로 색채가 끝없이 변하는 ‘자하 하디드’라는 작품과 만 개 이상의 이미지를 촬영해 3차원 초상으로 구현해냈기에 다양한 각도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볼 수 있는 최초의 홀로그램 초상화가 있다.

 

이렇듯 유화를 사용해 채색한 작품만이 아닌, 사진, 홀로그램, 청동, 영상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초상화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초상화는 아무래도 ‘시간의 지도’였다.

 
‘시간의 지도’ 작품을 보면 분명 자화상이지만 어디에서도 화가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자신의 얼굴을 그려낸 것이 자화상이라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겪은 각종 사건과 경험, 감정을 상징하는 성벽 안팎의 구역들로 자신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지도 안에서 작가의 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이야기들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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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슨 페리의 '시간의 지도'
 
 
여태껏 작품 속 인물의 얼굴, 표정, 자세, 분위기를 보며 그들을 이해해나가다 마지막에 지도가 나오자 ‘뭘까?’ 궁금했는데, 해설을 읽고 나서야 ‘마지막 피날레는 이 그림만 한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이걸 봤을 때는 ‘신선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느꼈고 그렇기에 인상적이었다.
 
내가 예술가가 아니라면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함께 예술가가 느낀 나의 인상을 하나로 모아 초상화를 남기고 싶지만, 반대로 내가 예술가라면 내 기억의 파편들을 한 군데에 모아 캔버스 위에 가득 묘사해 자화상으로 완성시키고 싶다. 저 방식이 다른 이가 보기엔 해석하는 부분에 있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자세한 묘사가 아닐까 싶다.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의도가 잘 전달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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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 마거릿 대처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진 자화상과 초상화는 다른 작품에 비해선 조금 딱딱하게 다가왔었다. 특별한 자세를 취하거나 남다르게 표현된 작품들을 많이 보지 못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초상화는 어떤 것이다.’라는 기준 혹은 편견이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초상화는 그 어느 작업보다 작가와 그 대상과의 호흡이 중요하고 순간들을 잘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진도 대상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서 담아내는 것이기에 굉장하지만, 유화 작품은 작가가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그려가면서 느낀 감정과 애정이 색채든, 표정이든, 전체의 분위기든 어느 부분에서건 그 인물 위에 더해지기에 더 풍요로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초상화란 그 어느 작품보다 사적인 느낌과 공적인 느낌이 다채롭게 혼합된 흥미로운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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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얼굴' 전시는 초상화와 자화상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을 깨게 해준 전시였지만, 더욱이 그 당시의 자화상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도록 함께 제시된 초상화의 숨은 이야기나 작가가 쓴 작품, 노래들이 한 군데에 어우러진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니 그 어느 전시보다 알찼다.
 
 

 

뼈를 간 듯한 디지털 영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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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담은 서재, 책가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의 장점을 더해보자면 전시를 보고 난 후 옆 전시실로 빠지면 바로 디지털 실감 영상관에 들어설 수 있는데, 그곳에선 태블릿 PC로 책장을 골라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가득 넣어 곧바로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끔 재미를 주는 ‘꿈을 담은 서재, 책가도’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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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실감 영상관

 

 
또한 폭 60m, 높이 5m의 3면 파노라마 스크린을 통해 ‘금강산에 오르다,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 영혼의 여정 아득한 윤회의 길을 걷다, 신선들의 잔치’라는 총 4종의 콘텐츠 영상을 볼 수 있을 텐데, 10분 남짓의 시간동안 어둠 속에서 정말이지 넋 놓고 보게 된 영상이었고 지금까지 본 디지털 영상 중 가장 커다란 몰입감과 감동을 준 영상이라 생각된다.
 
하루에 이 모든 것들을 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고, 전시를 향한 내 욕구를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채웠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날 하루를 통해  다음 날 회사 갈 용기가 샘솟는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서의 작은 기억이 내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았기에 일주일을 또다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즐기기를 추천한다. 분명 누구에게든 그동안의 허전함을 잠시나마 달래줄 충분한 전시가 되어 여러분을 생기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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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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