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좋음과 아쉬움이 명확했던 나의 첫 퓨전 사극 – 뮤지컬 '창업' [공연]

글 입력 2021.05.1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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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창업’은 광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작품으로, 해당 메인 포스터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사람의 내면을 동물로 담았다는데, 어두운 배경 속 반쪽은 사람의 눈을, 나머지 반쪽은 찢긴 페이지 안에 호랑이 눈을 묘사하였다. ‘창업’이라는 단어는 ‘나라를 처음으로 엶’이라는 뜻으로, 이미 제목에서부터 극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 사건을 암시할 수 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피 튀기는 경쟁.

 

썩어가는 나라를

새롭게 바꾸고자 하는

두 가치관의 대립이 시작된다!

 

 

‘창업’은 고려의 멸망과 조선 건국에 이르는 역동적인 시대를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정몽주의 반격과 피살, 조건 건국에 이르는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고려 말 조선 건국에 이르는 스토리는 드라마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와 같이 이미 대중매체 상에서도 자주 소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과연 뮤지컬에서는 해당 스토리를 어떻게 긴장감 있고 짜임새 있게 표현할지가 가장 기대됐다.

 

본격적으로 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해설자는 관객들에게 해당 작품의 장르가 ‘퓨전’임을 확실히 짚어준다. 그리고 퓨전이란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든 것’임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일반적인 사극 말투가 아닌 현대적인 말투, 영어, 농담 투의 가벼운 말들이 등장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당황할 수 있다 주의를 준다. 미리 당부하자면, 뮤지컬 ‘창업’은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에 차별성을 두고 있지만, 그래서 '퓨전'임을 감안하고 극을 관람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퓨전 뮤지컬은 처음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느꼈던 작품인 만큼, 본 리뷰는 필자의 시선에서 주목한 장면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솔직히 담았다.

 

 

 

뮤지컬 ‘창업’ 이런 부분이 좋았다



뮤지컬 창업을 보며 몇 가지 인상 깊었던 포인트들을 짚고자 한다.

 

 

1. 처음 극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등장인물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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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튜브 채널 요니파크 '뮤지컬 창업 쇼케이스'

 

 

어떤 공연이든 극의 포문을 여는 첫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뮤지컬 창업은 첫 장면부터 시선과 귀를 사로잡았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무대 위에 등장하여 한 마디씩 이어 부르더니 끝으로는 합창을 이루는데, 처음부터 극의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일반적으로는 스토리 전개대로 차례차례 등장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데, 첫 장면부터 모든 인물들이 나와 힘 있게 넘버를 부르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런 등장인물 소개도 나름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는 위엄 있고 힘 있는 합창이었다.

 

 

2. 화려하고 세심한 조명 효과

 

극 중반에는 정몽주와 정도전의 대립을 이루며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나라를 처음으로 여는 데 영향을 끼친 핵심적인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무대 연출에도 더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 무대 위 ‘조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한쪽은 빨간색 조명을 다른 한쪽은 파란색 조명을 주어 두 가치관의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대사를 전달하는 인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대사를 이어가는 인물에 번갈아 가며 노란빛 조명을 덧대는 등 세심한 조명 효과가 눈에 띄었다. 이러한 세심하고 화려한 조명 효과가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3. 무사 조영규의 뮤지컬 넘버

 

‘뮤지컬 넘버’는 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을 나타내는 말로, 다른 장르와 비교하였을 때 뮤지컬만의 ‘차별성’이라 할 수 있다. 각 인물의 심경을 보다 자세하게 대변하기 위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극 중 킬링 넘버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나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막을 내리기 직전 이방원 호위무사의 넘버였다. 그는 호위무사의 입장이자 관객의 입장에서 이방원이 왕이 되기까지의 고뇌를 넘버에 담았는데 연출이 참 좋았다. 잔잔한 무대 배경에 넘버의 애잔한 멜로디에 배우의 슬프고 처량한 목소리까지 얹어져 ‘분위기가 다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3박자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사실 무사 조영규 캐릭터를 연기하신 배우님의 목소리가 특히 한몫했다고 본다. 그날 본 공연에서는 임동주 배우님이 역할을 맡으셨는데, 대사를 할 때와 넘버를 부를 때의 목소리가 살짝 달랐다는 점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전 장면까지는 계속 인물 간 대사만 주고받다 갑자기 마지막 장면에서 단독으로 넘버를 부르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아직까지도 마지막 넘버 장면이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다.

 

그 밖에도 세부적으로 연출에 신경을 쓴 장면들이 있다. 요컨대, 정몽주는 단심가를, 이방원은 하여가를 주고받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데, 뮤지컬이기 때문에 인물의 심경을 보다 생생하고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색적이었다. 또한, 극 중반에는 해설자가 넌지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방원이 명나라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을까?” 질문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잠깐 주면서 자연스럽게 장면이 전환되는데, 한 번쯤 정말 그랬다면 어땠을까 상상력을 이어나가 보는 시점이 좋았다.

 

 

 

뮤지컬 ‘창업’ 이런 부분이 아쉬웠다



뮤지컬 ‘창업’에서는 세부적인 연출이 눈에 띄는 한편,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아쉬운 점이 더 부각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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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를 위한 퓨전극인가?

 

극을 끝까지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이었다. 이유는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 때문이었다. 툭툭 던지는 여흥구나 가벼운 말투와 농담들이 어느 포인트에서 반응해야 할지 애매했다. 요컨대, 대사를 들어보면 옛날 세대를 저격한 걸까 싶었다가 다른 대사를 들어보면 지금 세대에서 쓰이는 말도 섞어서 사용한다. 그래서 각 세대마다 통했던 가벼운 농담과 여흥구들을 한데 모아 섞어 놓은 느낌이 강했다. 때문에 극의 대사만 놓고 봤을 때 과연 누구를 저격하기 위해 쓰인 극일까 의문이 든다. 공연장을 둘러보면 관객들의 연령층은 어린아이들부터 나이 드신 분들까지 다양했지만, 반응도 제각각이었던 것으로 보아 모두를 저격하기엔 힘든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이성계 캐릭터 변주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이성계 장군의 캐릭터에 변주를 준 부분이었다. 해당 극에서 이성계는 장군으로서 위엄 있는 말투와 행동보다는 농담투의 가벼운 느낌으로 말한다. 그래서 처음 이성계 장군의 등장부터 ‘내가 알고 있던 이성계 장군은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캐릭터에 변주를 준 것도 퓨전의 한 부분이고 일종의 재미 요소를 불어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이라 해도, 이성계가 우리나라 역사 속의 실존 인물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에 기반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면 더욱 조심히 캐릭터 설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자칫하면 ‘역사 왜곡’의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성계 캐릭터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지 다른 관객의 시선과 후기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3. 애매한 스토리 전개

 

사실 극은 고려 말기부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이어 이방원이 왕이 되기까지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역사상 가장 격동이 많은 시기를 다루는 것이며, 그만큼 풀어내야 할 내용도 많은 셈이다. 그래서 뮤지컬의 특성상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 해당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전달하려면 쉽지만은 않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극의 구성을 생각했을 때 기승전결을 이루다 만 듯한 느낌에 아쉬웠다. 요컨대, 중간에 극이 절정에 달하기도 전에 이미 이야기가 끝이 나거나, 인물 간의 관계성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고 급하게 스토리가 전개되는 구간이 많이 등장하는 등 스토리 전개 상 빈약한 부분들이 많았다.

 

 

 

좋음과 아쉬움이 명확했던 첫 퓨전 사극, 뮤지컬 창업



퓨전이라고 하면, 어떤 요소들을 적절하게 섞어서 새로운 것이 탄생했을까 기대감을 갖기 마련이다. 이번 극도 그랬다. 퓨전 뮤지컬은 어떤 점이 다른 걸까 기대감을 갖고 관람했다.

 

해당 극에서 ‘퓨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있다. 요컨대, 신덕왕후는 명나라를 언급하면서 “참 이상해. 이것들이 우리가 지들 부하인 줄 아나. 맨날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달라는 게 뭐가 그렇게 많아. 아주 이러다가 나중에 한복 내놔라, 김치 내놔라 난리가 나겠네. 아 짜증 나”라는 대사를 한다. 또, 날씨를 묻는 정도전의 물음에 정몽주는 “미세먼지 아주 나쁨”이라고 답한다. 그런 대사를 들을 때면 그 시대에 생각지도 못한 현실 대화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런 장치야말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서 자칫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를 톡톡 튀게 만드는 좋은 퓨전 요소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극 소재에 일상 소재를 덧대어 표현할 때 더욱 그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난다. 마치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현재 시점에서 자유롭게 극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런 포인트는 퓨전 사극으로서의 특징들을 나름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저것 섞다 보니 대사 곳곳에 나타나는 가벼운 말투나 여흥구 같은 것들이 ‘퓨전’의 밸런스를 제대로 잡지 못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스토리 라인, 캐릭터 간 개연성과 같은 작품의 아주 기본적인 틀이 많이 빈약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만약, 전체적으로 스토리 라인을 탄탄하게 갖춘 상태에서 ‘퓨전’의 요소를 곁들인다면 원작을 뛰어넘는 훨씬 더 무한한 상상이 가능한 멋진 퓨전 사극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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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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