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은 서로의 어린이를 내보이는 것 [영화]

<매그놀리아> 폴 토마스 앤더슨의 구원
글 입력 2021.04.26 21: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_-lpK6q52ZQDUmtIp3-hwGA.png

 

 

복잡한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스무살에 들어서면서 철학적 함의가 있는 영화나 메타포가 많아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보단 생각 없이 봐도 되는 영화, 주제의식이 분명한 영화 혹은 출연진들이 화려한 영화만을 찾아보았다.

 

사실 찾아봤다기보다도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안 후부터는 넷플릭스가 추천해주는 인터페이스에 가장 크게 띄워져 있는, 예고편이 화려한 영화들을 손쉽게 클릭했다. 유명한 배우가 출현하는 유명한 감독이 만든 영화들이었다. 이런 기능들의 편리함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영화들을 선별하고 찾아보는 귀찮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나의 취향이 바뀐 걸까 아니면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에 이입을 하는 것에 지친 걸까. 그냥 단순히 생각이라는 걸 하는 게 귀찮아진 걸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나는 나의 '보고 싶어요 목록'에 들어있는 고전 명작들 혹은 아카데미 상을 받은 영화들을 언젠가 보리라는 기약 없는 다짐을 하고 , 넷플릭스를 켜 곤했다.


그중 하나가 매그놀리아였다. 러닝타임 3시간에 달하는 매그놀리아를 보기 전에 느꼈던 거부감이 아마 나의 이러한 기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나는 인물들의 행동 기저에 깔린 심층적인 감정들을 생각하는 게 귀찮고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어야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시 창작 수업의 과제가 이영화의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청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피한 이유를 나는 알고있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 나를  부지런하게 만드는 감정들을 나는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 쉬운 구원


 

29 (666).jpg

 

 

영화 속의 인물들은 불행하다. 제각기 이유로 다들 버티면서 살아간다.

 

어릴 적 천재라 불리며 퀴즈쇼에서 얼굴을 알렸던 도니 스미스는 커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타인들이 보기에 현실감각이 없는 괴짜다. 얼은 돈이 많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과거에 자신이 인생에 회한을 느끼고 있다. 그의 부인은 젊고 아름답다 하지만 돈을 노리고 얼을 만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퀴즈쇼의 신동은 아버지를 위해 퀴즈쇼에 나가지만 행복하지 않다. 클라우디아는 아버지에게 받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우연적인 사건들로 인해 서로 연관이 되어있다.


인간은 평생 얻지 못할 구원을 얻으려 한다. 돈, 종교 혹은 자식에게서 얼에게는 간병인 필에게 하는 고해성사와 버려진 아들과의 만남이었고 지미 게이트 에게는 부인에게 자신의 외도를 고백하는 것이었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인간이라는 동물만이 나타내는 죄책감과 구원받으려는 욕구와 욕망이 복잡하게 얽힌 지점을 잘 포착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 ‘데어 윌 비 블러드’ 나 ‘마스터’ 또한 이러한 지점들은 잘 보여준 작품들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몇몇 작품들은 너무 감정에 호소하거나 아니면 건조하게만 느껴져서 그걸 보는 사람들은 쉽게 피로해지거나 인물의 감정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하지만 매그놀리아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연관이 없는 듯 이어지는 듯 보이는 연출력과 뛰어난 각본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얼과 지미가 죽음을 앞두고 나약해진 마음에 쉽게 구원받으려고 하는 태도는 비겁하게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것이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이 가진 나약함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죽기 직전까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의 평안만을 생각하는 태도. 즉 자신의 짐을 덜고 구원받기 위한 호소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지만 용서하고, 뉘우침은 있지만 바뀌지 않는 행동이 그러하다. 그런 행동들은 대부분 진심이라기보다는 자기 위안이다.

 

 

AAAABfUz8ghWc-HC5QUbp6-n1X06lr4BT4qz3-gHW3B8wasGEO8QZVC6drfKqtd7eE2TQuF6YszPWl0Z6oQYXS9i.jpg


 

이런 메타포가 가득한 영화들을 보는 게 피로해진 이유는 아마 내 인생조차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데, 가혹한 운명에 이리저리 휘둘며 불행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이 꺼려졌던 것 같다. 반면에 자기의 의지로 역경을 해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통쾌한 상황을 보면서 어느 것 하나 통제되지 않는 현생의 피로함을 아주 잠깐 벗어나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런 피상적인 쾌감은 금방 휘발되어 버렸다.

 

우리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감독의 주제의식이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갖고있는 영화가 주는 의의가 있다. 이러한 가혹한 현실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며, 그럴 수 있다는 모종의 희망을 살며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혹은 끝끝내 해결되지 않는 그들의 현실에 우리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호기심을 얻게 된다. 그들의 고통 속에서 나의 고통을 보고 그들의 눈물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정의 웅덩이는 점점 커지며 결국에는 썩게 된다.

 

 

 

소통은 내면의 어린아이를 내보이는 것


 

14 (667).jpg

 

 

인간은 내면에 자신만의 지옥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심연을 외면하기 위해 위악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연기하고(톰 크루즈), 약물에 의존을 하기도 하며(클라우디아), 자신의 외면을 단련하며 아침마다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짐) 혹은 사회적인 지위와 사람들의 인정(지미) 속에서 안정을 얻는다.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사랑할 누군가, 혹은 사랑을 받을 누군가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청소년, 유아기의 기억에 얽매여 있다. 유아기의 결핍 상태가 고착된 그들은 몸만 큰 아이들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더는 물리적 상태가 아이가 아닌 그들은 막무가내로 애정을 갈구할 수 없고, 사회는 그들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어렸을 적 그들이 겪은 결핍과 폭력은 인생 내내 그들을 따라다니며 점점 그들을 고독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고독들은 이내 어떤 우연에 의해 모이고 연대를 이룬다. 고독은 모여서 서로의 마음에 있는 나약하고 항상 울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되고 서로가 서로의 아이를 어루만지며 결핍을 채워 나간다.

 

 

11 (667).jpg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안의 있는 ‘가장 여린, 아이의 나’를 내보이는 일. 이런 자신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가장 겁이 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연약한 면은 아주 작은 상처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쉬운 선택인 위악 또는 위선을 택함으로써 그 아이를 꽁꽁 가두는 것일 테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서로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보이는 것을 택할 용기이다. 왜냐면 진정한 나를 꺼내지 않고는 진정한 소통을 시작할 수 없다.

 


64 (491).jpg

 

 

매그놀리아는 그럼에도 계속 살아간다 라는 것을 무책임하게 해피엔딩으로만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그들의 감정 덩어리가 개구리의 비로 해소되면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폴 토마스 앤더슨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박정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