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각이 무뎌져가는 우리에게 [전시]

2021 뉴미디어 아트 공모 선정작가 12인 특별전 <내일의 예술>
글 입력 2021.04.1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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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월 31일부터 4월 18일까지 예술의전당과 한국 전력이 함께하는 뉴미디어 아트 공모 선정작가 12인 특별전<내일의 예술>전시에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전시 관람도 자제해왔었지만, 이번 미디어 아트 전시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으로 표현력과 '메시지 전달 방법'을 획득한 열두 작품이 관객 참여형이기에, 궁금함에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2개의 작품들은 감각의 확장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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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동지(冬至)

 

 

그 중 황주리의 <동지(冬至)>는 소리의 진동과 다채널의 음파를 이용하여 한지의 표면에서 울려 퍼지는 섬세한 바람의 소리를 듣고 느끼며 몰입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설치 작품이다. 일렬로 매달려있는 흰색 종이들의 군집이 멀리서 볼 땐 약간의 경외감을 일 게 하나, 다가가 귀를 기울이면 익숙하고도 차가운 자연의 바람 소리에 낯선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고향인 남해안 도서 지방에 부는 한 겨울날의 실제 바람 소리의 음파, 그리고 기류가 건물이나 나무 등의 물체와 부딪히며 내는 바람 소리의 물리학적 상황들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72채널로 실시간 재현(simulation)했다.

 

그래서인지 가로선 종이들 사이에서 실제로 경험해본 적 없는 한겨울 엄동설한 흰 눈이 쌓인 담장 너머로 바라보는 바다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러한 공간 재현 감에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한지에 귀를 대고 바람 소리를 듣는 순간, 이 모든 행위와 결과가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인위적인 과정일지라도, 귀와 손과 촉각이 마치 어린아이가 낯선 재미를 발견할 때처럼 감동을 느꼈다. 감상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작품을 체험하는 순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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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재&김지수, 소리 심기

 

 

신승재와 김지수의 <소리 심기>는 식물과 인간의 접촉으로 생성되는 입체적 사운드인 '씨앗'을 매개로, 물리적 접촉이 줄어드는 오늘날의 사회적 이슈를 통찰하는 인터랙티브 오디오 비주얼 작품이다.

 

홈 가드닝의 확산과 동시에 비대면이 정점에 도달한 우리 삶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임에, 처음 작품을 마주한 순간부터 어떤 인터렉션이 이어질지 궁금했다.

 

낯선 호기심으로 식물을 만지는 순간 들리는 식물의 소리가 상상해본 적 없는 소리임에 신기하면서도, 큰 프레임 속 진열된 식물들의 모습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와 닮아있음에, 그럼에도 가만히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식물들의 모습에 양가감정이 들었다.

 

또한, 식물의 줄기와 잎사귀 곳곳에 붙여진 센서들을 만지며 '이래도 되나?' 싶은 감정들은, 풀뿌리 하나 발로 밟아선 안 된다는 도덕성과, 그럼에도 말하지 못하는 생명체와 소통하는 발전된 기술이란 인식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킨 결과였다.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매체'이자 '수단'이 될 때, 그 존재에 대한 존엄을 고민하면서도, 매일 식사에 고기를 먹는 아이러니함에, 작품 소재 선정에 대한 가치판단은 멈추기로 했다.

 

이외에도, <내일의 예술>전에는 사람들의 감정(뇌파)과 색상(시신경)의 반응관계를 분석하여 보이지 않는 개인의 감정과 기억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색으로 실체화하는 천영환<이모션 백신 팩토리>, <내일의 예술>전에는 음악을 듣는 관객의 뇌파 데이터를 LED 입자로 구현함으로써 음악과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신명 풀이를 연결해 풀림과 맺음, 지금 우리에게 도래한 꽉 막힌 답답함, 지친 마음이 뒤섞인 파란 정서를 풀림과 맺음으로 표현해낸 작품 <신명: 풀림과 맺음>을 비롯해 센서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흥미로운 인터렉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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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욱, 휴머노이드 오브젝트

 

 

그래서 유독 본래의 자연적 감각을 비롯해 오히려 역으로 발전하는 로보틱스와 기술에 대한 조합이 기술 융합의 확장성에 대한 경의의 감각, 잊고 있던 자연의 감각 등을 유발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감각들이 단절된 시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작품 구성이었다고 느낀다.

 

이번 전시가 좋았다고 느낀 또 다른 이유는 관객의 참여가 쉬웠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경험의 플로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쉽다', '어렵다' 등의 정도는 주관적인 부분이 크지만, 관객이 작품과 만나는 그 접점의 방식이 어렵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며, 관객과의 인터렉션이 주가 되는 작품일 경우, 작품 참여를 쉽게 유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아트의 영역일수록, 작가의 주관성이 더욱더 짙어지기에, 다양한 관객의 보편적 맥락을 함께 고민해야 하며, 작가의 주관과 보편의 접점이 항상 매끄럽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작품들은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크며, 관객이 각자의 해석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과거 다른 인터렉티브 전시 중에선, 인터렉션의 방식이 어렵거나, 관객이 해석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 여지를 남기는 것 역시 작가가 정하는 부분이나, 그 과정이 어려운 작품들이 좋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긴 어려울 것이다. 뉴 미디어 아트를 말하면 보통 어렵고 난해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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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환, 이모션 백신 팩토리

 

 

지난 1년간, 코로나로 오프라인 전시를 거의 삼가다, 답답함을 느끼며 찾은 전시였다. 체험형인 인터렉션 전시에 기대하면서도, 조금의 죄책감을 느끼며 보고 온 전시는 큰 환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비대면의 시기, 오프라인상에서 그 어떤 때보다도 촉각을 비롯한 인간의 감각기능이 제한된 지금, 감각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전시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감각의 무뎌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인공적으로 제작한 감각에 점점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 막연한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복합적으로 이는 양가감정까지도 이 전시의 기획 의도일지 모르겠으나, 코로나 시기로 복잡함과 혼란 속에 감각이 점점 무뎌지는 우리에게, 각자의 기억 속에 있던 자연과 일상 속 감각들을 환기하고 싶다면,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내일의 예술>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2021.03.31 (수) - 04.18 (일)


 

내일의예술전_포스터.jpg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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