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적 증언의 영화, '스왈로우'와 '인비저블 맨' [영화]

여성영화의 다변화
글 입력 2021.03.0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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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작성하고자 노력했다. 두 영화 모두 각각의 이유로 끝까지 관람하는 것이 의미 있기에, 지면을 통해 접한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스왈로우>는 미장센이 강점인 영화로, 미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언어로 요약될 수 없는 영화적 행간을 품고 있기에 직접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충분하다. <인비저블 맨> 역시 서사의 진행을 따라가는 관객이 예상하는 다양한 갈래 자체가 영화를 공포 스릴러 장르로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직접 보고 다양한 추측을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여성적 증언의 영화, <스왈로우>와 <인비저블 맨>


 

<스왈로우>는 헤일리 베넷을 주연으로 한 드라마,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다. 그림 같은 집에서 완벽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헌터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자꾸만 집 안의 작은 물건들을 삼키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이 유리구슬이 압정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점점 더 날카로운 물건을 입속에 넣고 싶어 하는 헌터의 욕망은 제어가 불가해지고 그의 이식증은 결국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들키게 된다. 그들은 늘 그래왔듯 헌터를 통제하려 한다. 결혼 생활은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데, 영화는 그 과정에서 헌터의 욕망과 선택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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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맨>은 엘리자베스 모스 주연의 공포 영화이다. 주인공 세실리아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폭력적인 남자친구에게서 도망치는 것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탈출에 성공한 세실리아에게 이어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세실리아의 일상은 여전히 공포로 가득하다. 세실리아는 이유 모를 존재가 가하는 위협을 호소하며 남자친구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세실리아와 그 주변인들을 향한 위협은 점점 더 거세지는데, 영화는 특수한 방식으로 ‘투명인간’ 소재와 젠더 폭력을 융합한 독특한 연출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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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 모두 여성의 경험을 영화적인 장치를 통해 장르화하거나 중심적인 메타포로 삼았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스왈로우>에서 표면적으로는 주인공 헌터의 ‘이상한’ 욕망이 이 결혼 생활의 균열을 유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헌터의 이식증은 단순히 ‘이상 현상’이 아니다. 이는 선택에 관한 헌터의 감각과 연결된다.


헌터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에 천착하는 것이다. 삼키고 배출하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다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의 감각을  헌터가 느끼는 욕망은 사랑에 대한 허기인 동시에 선택을 향한 갈구이다. 결국 영화는 여성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과 통제를 다루고자 한다. 심하지 않은 수준이라면 억압이 아닌 것일까? 영화는 미미한 수준의 통제와 물화를 겹겹이 쌓아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는 강렬한 서스펜스 없이도 시종일관 불안감을 유발한다. 관객들은 헌터가 느끼는 자잘한 불편, 미세한 통제와 미묘한 무시를 조용하게 목도한다. 관객들이 기대했을 폭발적인 감정의 분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스왈로우>는 아주 작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작은 것들이 절대 하찮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이 억압이든, 욕망이든, 선택이든, 일상이든. 여성의 생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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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맨>의 경우 공포 스릴러 장르 영화가 필요로 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전통적인 설정을 유지한다. 주인공 세실리아에게만 보이고 느껴지는 위협이라는 장르적 전통이 피해생존자 여성이 느끼는 정동을 통해 설정된다. 이를 통해 형성된 서사적 설득력은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영화의 서사 전개 면에 있어서 다양한 예측이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여성의 현실적인 경험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가해자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추리 스릴러를, 죽은 가해자가 유령으로 나타났을 것이란 추측은 호러 오컬트 장르를, 피해 생존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정신 병리적인 현상으로 예상한다면 심리 드라마를 이 영화의 장르로 추측하게 한다. 감상의 다변화는 곧 감상의 다채로움으로 연결된다. “이 공포의 근원이 실존하는 것일까?” 등과 같은 의심은 사람의 생활을 뒤흔든다. 동시에 관객들을 세실리아라는 피해생존자에게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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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스왈로우와 인비저블맨이 공통으로 주지하는 것은, 여성의 경험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여성의 선택과 주장을 예민함이 만들어낸 허상, 불신의 대상 등으로 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인비저블맨>의 세실리아는 분명하게 주장한다. 가해자의 수법과 방식에 대해, 나아가 그의 존재 자체와 위협에 대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폭력에 둔감한 여성 혐오적 사회는 여성의 증언을 사소한 것을 치부하거나 때로는 의도된 거짓이라 호도하기도 한다.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고발에 대해 나타나는 인색한 반응은 여성 혐오적인 사회 문화의 산물이며 이는 여성이 겪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를 엄살로 취급하며 주요한 안전 문제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적인 문제와도 맥을 같이 한다. 영화 <인비저블맨>은 그러한 여성의 공포가 실존하는 일임을 여러 대사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다. 세실리아를 위협하는 존재가 설사 세실리아의 피해 경험이 만들어낸 환각이라고 할지라도, 세실리아의 말이 무용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왈로우>는 헌터가 가진 트라우마 적인 기억을 조명하며 낙태와 선택을 중심으로 한 여성적 경험을 확대한다. 헌터의 울타리는 매우 좁은 공간만을 허락했다. 작은 것들의 세계 안에 헌터가 갇힌 것만 같아 보였으나 영화는 여성적 경험의 레이어를 덧씌우며 이 작은 세계 안에서만 조그마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한 작은 것들의 세계는 공통적인 여성 경험이라는 지점을 통해 무한히 연결되어 확장한다. 결국 헌터를 가둔 좁은 공간의 울타리가 ‘여성 서사’로 공통화되며 더 넓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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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영화 모두 아쉬운 점이 존재하기도 하며 완성도 면에 있어서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인비저블 맨>의 경우 고조되던 서스펜스를 무너뜨리는 서사 진행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세실리아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비밀이 풀리는 과정에서 공포 연출의 특색이 무뎌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스왈로우>의 경우 캐릭터의 입체성을 소거하며 만든 연극적인 분위기가 되려 양날의 검이 되어 평면적인 캐릭터들로 구성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두 영화를 여성 서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담론이 확대되어가는 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시도들로 볼 수도 있다. 여성 서사의 불분명한 정의는 엘렌 식수(Hélène Cixous)가 여성적 글쓰기를 이야기하면서도 간편하게 정의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여성 서사 영화의 범주는 무엇일까? 여성 캐릭터가 페미니스트로 등장하는 영화? 여성 출연진이 다수인 영화? 여성 감독의 영화? 현장 스태프 중 여성 노동자가 많은 영화? 여성 캐릭터가 현실적으로 구성된 영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지만 영화의 서사가 복합적인 맥락을 취합하며 구성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완전무결한 페미니스트 여성 캐릭터의 서사만이 여성 서사가 아니듯이, 완벽한 여성 서사의 도식이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적인 행위를 하는 여성이 나올지라도 여성적 경험을 풍부하게 서사화하는 경우라면 여성 서사 영화일 수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여성 서사의 범주를 한정하고 줄여나가는 것보다, 이러한 복합적인 맥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폭넓은 장르적 도전으로 여성적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열심히 ‘발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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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 있어서 <스왈로우>와 <인비저블 맨>은 장르 영화로서의 특성을 여성 캐릭터의 서사와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여성 서사의 외연을 확장한 시도로 볼 수 있다. 플롯과 캐릭터만이 여성서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외재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여성의 정동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서사 영화의 다변화된 접근을 알게 하는 좋은 예의 영화들이다.


<인비저블 맨>은 수많은 여성이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싸우고 있음을 전달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피해의 기억일 수도 있고, 가해자의 지속되는 폭력일 수도 있으며 사회의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다. <스왈로우>는 여자 화장실을 엔딩크레딧의 배경으로 설정하여 헌터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시사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비친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일들, 화장실에 숨어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하는 '사소화'된 경험의 같고 다름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그를 통해 여성 억압이라는 권력의 효과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고자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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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두 여성의 인생에 대해 영화가 통쾌하지 않다고 평가하는 글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매일의 삶을 지속되는 것이다. 통쾌함 이상의 가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으로의 복귀에 있는 것이라고 두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또한 여성적 재현이 부족하다고 여겨져 왔던 스릴러 및 공포 장르를 여성적 서사를 통해 다변화하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게 평가될 수 있다.

 

 

[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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